예수는 신인가? 인간인가?
예수는 사람일까 하나님일까? 우선 이런 질문에 우리가 논리적으로 맞부닥뜨리면 매우 당황케 되고 부수될 수밖에 없는 많은 논리적 문제가 부담스러워진다. 우선 예수를 완전히 하나의 사람으로만 간주해버리면, 우리와 완전히 똑같은 하나의 인간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그의 모든 특별한 규정이 의미를 상실하고 ‘역사적 예수’라고 하는 시공 속의 합리적ㆍ과학적ㆍ상식적 추론체계만 적나라하게 드러나버린다. 그렇게 되면 예수는 단순한 세속의 역사적 사건이 되어버리고 구속사적인 종교적 의미가 증발되어 버린다. 그리고 평범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인간 위인을 그렇게 우리가 예배하고 신앙하고 따라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진다. 복음서는 평범한 위인전기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결론은 바람직하지 못할 것이 뻔하다.
그렇다고 예수를 신이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까? 논리적으로 예수를 완전히 신과 동일시해버리면 복음서의 이야기는 신의 이야기가 될 것이므로 그것은 희랍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어진다. 즉 복음서는 단순한 신화가 되어버린다. 예수를 신이라고 존숭하는 것은 좋지만 결과적으로 예수는 우리와 동떨어진 존재가 되어버릴 것이며 인간으로서의 수난(Passion)과 부활(Resurrection)은 우리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 헤라클레스의 수난의 역사 이야기를 읽는 것보다도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헤라클레스의 투쟁이야기를 읽으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다. 우리가 예수의 수난이야기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감동을 받는 것은 오직 인간 예수로서의 수난과 부활이다. 최소한 복음서 저자들은 그러한 감동을 전하도록 우리에게 예수 이야기를 기술해주었다.
그리고 예수를 하나님과 완전히 동일시할 때, 그리고 동시에 예수에게 수육(受肉, the Incarnation)의 인성을 완벽하게 인정할 때, 인간인 예수는 곧 신이 되어버릴 것이다. 이것은 모든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결과를 논리적으로 초래할 수밖에 없다. 불교에서 불타는 완전한 각자(覺者)이며 따라서 윤회의 굴레를 완벽하게 벗어나 열반(涅槃, nirvāṇa)에 들어가는 존재이다. 그런데 불교의 특징은 역사적 인간 싯달타에게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성불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데에 있다. 기독교 초기에도 신인(神人)으로서의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야기는 모든 인간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함으로써 예수와 똑같이 신이 된다고 하는 합일 즉 엑스타시스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이야기로 해석되는 경향이 짙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0~11).
이러한 바울의 이야기도 그 추상적인 성격을 극단화시켜 이해한다면 우리 인간이 예수를 매개로 하여 육신을 벗어나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 그 자체가 된다고 하는 불교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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