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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5장 삼위일체 논쟁 - 동방교회의 일반적 정서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5장 삼위일체 논쟁 - 동방교회의 일반적 정서

건방진방랑자 2022. 2. 2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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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교회의 일반적 정서

 

 

니케아 종교회의(325)에서 비록 동체(homoousios)론 조항을 집어 넣은 신경(creed)이 반포되기는 했지만, 니케아종교회의에 참석한 주교들 가운데서 서방주교는 단지 6명일 뿐이었고, 300여 명의 동방 주교의 대부분은 아리우스를 지지했다. 막강한 니코메디아(Nicomedia)의 주교 유세비우스의 열렬한 위호(衛護)가 있었고 그 회의를 실제적으로 주도해간 팔레스타인의 대도시 카이사레아의 주교 유세비우스(동명이인이므로 주의할 것), 최초의 초대기독교역사인 교회사콘스탄티누스의 생애를 저술한 그 유세비우스도 중도적 입장을 취하긴 했지만 아리우스의 논의의 합당함에 기울어져 있었다. 동방교회의 일반적 사상분위기는 다원론(pluralism)이었고 종속론(subordinationism)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알렉산더의 동체론ㆍ일체론을 강행하였던 것이다. 아리우스와 그에게 동조한 두 명의 성직자는 끝내 공동코뮤니케인 니케아 신경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들 세 명을 동방에서 멀리 떨어진 북방의 라인강변으로 추방해버렸다. 이로써 아리우스가 패배한 것 같지만 이후 전개된 역사의 실제상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추방령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여동생 콘스탄티아가 아리우스를 옹호했기 때문에 콘스탄티아의 노력으로 3년 뒤에는 해제되었다. 아리우스의 진짜 적수는 알렉산더 주교가 아닌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 293~373)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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