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플라토니즘
궁극적 유일자(to hen, the One)만이 모든 대립과 차별을 초월한 유일절대의 실재이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만물의 세계는 이 유일자로부터 유출(emanatio)되어 나오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유출된다 해도 대립과 차별을 초월한 유일자 그 자체는 증감이나 변화가 없다. 유일자는 우리의 사유나 언어가 단절되는, 규정불가능한, 기술 불가능한 ‘불가사의’(不可思議)의 절대자이다. 유출에는 단계가 있으며, 그 유출의 단계는 ‘타락’(Fall)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그 3단계는 이성(nous), 영혼(psyche), 물질(physis)이다. 유일자로부터 가장 멀리 유출된 물질은 죄악의 정도가 가장 높다. 물질은 물리적인 3차원적 공간의 세계이며 우리의 몸을 구성한다. 이성이 영혼으로 타락하고(떨어지고), 영혼이 물질 속으로 떨어져서 물질세계 속에 갇혀버렸다는 것이 곧 죄악의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이 3차원적 공간세계 이 자체가 유일자의 끊임없는 창조적 유출이기 때문에 그것을 전적으로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그것 역시 모든 진·선·미의 가능성을 구유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인간은 이성·영혼·물질의 모든 계기를 다 구유하고 있는 소우주적 존재(micro-cosmos)이며, 당연히 유일자로부터 유출된 존재이며, 궁극적으로는 그 유출을 소급하여 유일자와 다시 합일이 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소유한 존재이다. 인간의 정신활동은 직관적 이성(intuitive reason), 논리적 이성(discursive reason), 감각(perception)의 3단계로 등급 매겨질 수 있는데, 궁극적으로 직관적 이성을 잘 활용하면 유일자와 합일될 수도 있다. 금욕주의적 삶을 통해 고귀한 덕성(the highest virtues)을 축적한 사람은 어느 순간에 신비적 황홀경을 통해 유일자와 합일이 되는 체험을 할 수가 있다. 영혼이 육체의 감옥을 벗어나 유일자에게로 소급하여 합일되는 신비적 체험인 것이다. 그러한 경지를 엑스타시스(ekstasis, 脫自)라고 불렀다.
플로티누스(Plotinus, AD 204~270)는 또 우주의 이성적 원리를 로고스(Logos)라고 부르고 그것을 빛(Light)이라 규정하고, 암흑(Darkness)인 물질세계와 대비시키기도 했는데 이런 언어는 요한복음의 세계관이나 영지주의의 일반적 어휘와 상통하는 것이다(나의 『요한복음강해』 제1장 해석을 보라. 101~110). 플로티누스는 신비주의적 종교사상가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종교적 요소를 철저히 논리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철학자로서 다룬다. 그러한 향후의 모든 기독교적 신비주의자들의 사유체계는 이 플로티누스의 사상구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4세기초의 신비주의 사상가 마이스터 엑카르트(Meister Eckhard, c. 1260~1328)의 신비주의철학도 네오플라토니즘과의 관계를 떠나 이야기하기 힘들다【엑카르트의 사상에 관해서는 최근 길희성 교수가 깊게 천착한 역작이 있다.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영성사상』, 서울: 분도출판사, 2003.】.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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