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속의 예수
나사렛의 예수는 물론 유대인이었다. 예수는 안식일을 지켰고, 유대의 율법과 관습을 잘 알았다. 그의 제자도 모두 유대인이었고, 그를 따르던 군중도 모두 유대인이었다. 그의 선교활동 전체가 팔레스타인 내에서만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예수는 유대인의 민족적 메시아는 될 수 없었다. 요한복음 속의 예수는 그를 심문하는 빌라도 총독에게 이와 같이 반문한다.
빌라도 총독: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죄인 예수: “나를 ‘왕’이라니, 그건 네 자신의 말이냐? 그렇지 않으면 딴 사람들이 들려준 말을 네 입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냐?”
빌라도 총독: “네가 날 유대인으로 알고 그따위 질문을 하는 거냐? 너를 왕이라고 고소한 놈들은 바로 네 동족들이다. 넌 도대체 그들에게 뭔 짓을 했느냐?”
죄인 예수: “네가 왕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그러한 맥락대로 내가 왕이라고 한다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인들 손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도대체 싸워보지도 않고 포로가 되는 왕이 어디 있단 말이냐? 나의 왕국은 그 따위 것이 아니다. 나의 왕국은 결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빌라도 총독: “으흠~ 결국 넌 왕이라는 것을 암암리 과시하고 있군.”
죄인 예수: “‘왕’이라는 것은 네 말이지 내 말이 아니다! 나는 오로지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 진리의 편에 선 사람들은 내 소리를 알아들을 귀가 있다. 그들이야말로 나의 백성들이다.”
빌라도 총독: (비웃으며) “진리라니! 진리가 도대체 뭐냐?”(요 18:33~38; 다드의 의역 참고, C. H. Dodd, About the Gospels 33; 『요한복음강해』 436~7).
복음서 저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기독교는 매우 급속히 성장하였고, 빠른 속도로 유대교로부터 이탈하여갔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탈유대교의 트랙 위에 올려놓은 것은 사도 바울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하지만, 기독교를 유대교로부터 분리시킨 것은 예수 자신이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는 어디까지나 율법적 전통 속에서의 메시아였다. 그러나 예수는 유대교의 율법전통과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조금이라도 타협한다면 예수의 모든 메시지는 힘을 잃는다. 그리고 그의 새로운 천국론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Stegemann, Library 231).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성장하면서 박해 속에서 성공의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그것은 역설적으로 유대교의 쇠락과 쇠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기독교가 그토록 처참하게 유대인을 박멸하던 로마제국의 국교로서 자리잡게 되면 유대교의 운명은 풍전등화와도 같은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유대교는 기독교를 저주한 종교로서 저주와 경멸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기독교는 유대교의 전통을 구약으로서 활용했지만, 유대민족의 신앙체계로서의 유대교에 관해서는 무관심했다. 아니, 이방인화 되어버린 기독교는 유대인과 유대교에 관하여 경멸감을 표시했다. 기독교는 이미 유대교의 성취로서 인식되었기 때문에, 성취의 전단계에 머물러 있는 유대교는 전혀 경배의 대상이 아니었다.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양반 밑에 있던 쌍놈이 더 쎈 양반이 되고 나면 원래 양반은 맥을 출 수가 없다. 그리고 로마세계에서 예수를 박해한 사람들로서, 기독교의 탄압자로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탄압의 대상이 되면 될수록 유대인의 심정 속에 기독교에 대한 원망은 깊어만 갔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속에 그려지고 있는 유대인들의 모습은 위대한 문학가의 저속한 편견(Anti-Semitism)이라기보다는 당대 유대인에 대한 통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누항(陋巷)에서 침 뱉고 따귀를 때려도 그들은 항변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반유대인 감정은 히틀러의 유대인학살에서 극치에 달했다. 『쉰들러 리스트』에 나오는 반인륜적 야만행동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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