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스포라 신세
유대인은 또다시 자기 고향을 잃고 이역의 다이애스포라(Diaspora)에 살아야만 되는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이 ‘떠돌이 신세’는 자그마치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국가(the State of Israel)가 공표되기까지 1800여년 동안 계속되었던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김춘추가 당(唐)이라는 대국의 힘을 빌어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되, 통일의 주체라는 신라까지 말아멕혔다면 어찌 되었을까? 지금도 예산에 가면 임존성(任存城)의 잔해가 남아있어 백제인들의 마지막 항쟁의 치열했던 함성이 메아리 친다. 당장(唐將) 소정방(蘇定方)은 의자왕을 비롯 수없는 왕족ㆍ대신ㆍ장사(將士)들을 포로로 하여 당으로 돌아갔고, 이세적(李世勣)은 보장왕을 비롯 다수의 귀족과 20여만 명의 고구려인을 포로로 잡아갔다. 무열왕 김춘추마저 같은 신세가 되었더라면? 우리 한민족은 일본으로 만주로, 대륙 각지로 흩어져 다이애스포라의 생활을 계속 했을 것이지만 과연 1,300년 후에 이 조선반도에 다시 한민족의 국가를 수립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을까? 만주의 여진이나 북방의 흉노만큼도 역사의 풍진에 이름 올리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예수가 독사의 자식들이라 혹평한(마 3:7, 12:34, 23:33) 바리새인들이야말로, 성전 중심의 유대교를 커뮤니티 센터인 시나고그 중심의 유대교로 민주화시키고, 율법의 보편주의와 신축성 있는 해석을 용인하고, 천국의 도래에 대한 확고한 종말론적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성문법적 율법이 아닌 구전의 토라 전통을 인정하여, 구전에 기초한 새로운 미쉬나를 성립시키고 그 해석으로서의 탈무드를 형성시켰다. 이 미쉬나와 탈무드 전통이 랍비유대교와 모든 정통유대교(Orthodox Judaism)운동의 기초가 되었으며 예루살렘 성전 파괴 후에도 유대민족이 시나고그와 랍비체제 중심으로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유지해갈 수 있는 경건하고도 강력한 힘이 되었던 것이다. 인류역사에서 미국이라는 뉴 월드(New World)의 출현이야말로 유대인들이 다이애스포라를 벗어나서 일반시민으로서 동화되어 모든 의무와 권익을 누릴 수 있는 최초의 장이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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