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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8장 복음서의 출현 - 바르 코크바와 랍비 아키바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8장 복음서의 출현 - 바르 코크바와 랍비 아키바

건방진방랑자 2022. 3. 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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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 코크바와 랍비 아키바

 

 

AD 70년의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에도 로칼한 시나고그들은 유대교의 구심체로서 기능했고, 기독교 교회들도 특히 갈릴리지역에서는 번창해나갔다. 로마인들은 정치적 저항에는 가혹했지만 원칙적으로 유대인들이 유대교에 귀속되는 권리까지 침해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AD 66~73년 사이의 제1차 독립전쟁시기에서 사두개인들은 많이 죽임을 당하였지만 바리새인들은 내면적으로 결속하여 유대인 공동체의 정신적 토대를 오히려 공고히 다져나갔다. 미쉬나(Mishnah)와 탈무드(Talmud)를 중심으로 한 랍비 유대교(Rabbinic Judaism)형성의 주축세력이 되었던 것이다.

 

AD 132하드리안 황제(Hadrian, AD 76~138, 재위 117~138)는 유대인의 할례와 일체의 거세를 금지시키고, 예루살렘 성전의 폐허 위에 쥬피터신전을 세우도록 명하였다. 그가 특별히 유대인을 자극시키려고 내린 명령은 아니었다. 그는 신체의 부위에 대한 손상이 죄악이라고 생각했고 신전건립도 도시재건의 한 프로젝트였을 뿐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격분했고 그 격분의 열기를 휘몰아 바르코크바(Simon Bar Kokhba, 또는 Bar Koziba)라는 지도자는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바르 코크바는 메시아로 자처했고 당대의 가장 존경받던 율법학자 랍비 아키바(Aqiba)도 그의 메시아됨을 인정했다. 민수기 24:17에 약속된 별의 아들이라고 환영했다. 기독교도들은 그가 메시아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바르 코크바의 추종자들로부터 잔학한 박해를 받았다. 이 바르 코크바의 반란도 무시무시한 투쟁이었다. 결국 만 2년을 지속한 전쟁 동안 50개의 요새가 파괴되었고, 985개나 되는 마을이 잿더미가 되었고 50만이나 되는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다.

 

바르 코크바는 전사하였고 랍비 아키바는 끔찍한 고문 속에 죽어 갔다. 그의 육신은 쇠빗으로 빗질을 당했다. 그는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태연하게 신명기에 쓰인 모세의 말씀을 기도하듯 암송했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나님은 야훼이시다. 야훼 한 분뿐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희 하나님 야훼를 사랑하여라”(6:4~5), 마지막 순간에 오직 한 분이라는 말을 길게 내뿜으며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고통당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이 율법에 대하여 취했던 이러한 확고한 태도는 사람들의 마음을 벅차게 만들었으며 율법을 중심으로 다시 모이게 만드는 내면적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하드리안 황제는 예루살렘에서 유대교도를 모조리 추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원로원 의결을 거쳐 135년부터 공식발효되었다. 예루살렘은 그 이름조차 사라지고 콜로니아 아엘리아 카피톨리나(Colonia Aelia Capitolina)라는 식민도시로 바뀌게 된다.

 

 

 

 

인용

목차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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