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와 복음서
판소리사설은 그냥 사설로만 읽으면 매우 현학적이고 어렵고 지루하다. 그러나 그것을 발림이나 아니리, 그리고 북 반주를 수반하는 소리꾼의 창(唱) 이야기로 들을 때는 무슨 이야기인지 세부적인 것까지는 다 모른다 해도 대충 재미있게 알아듣는다. 『춘향전』이나 『심청전』의 사설을 뜯어보면 매우 현학적인 한문투가 많다. 즉 그것을 쓴 사람은 조선조 문화의 아주 고도의 문헌적 지식의 소유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을 듣고 그 재미를 향유한 사람들은 식자층이 아닌 조선왕조의 일반서민들이었다. 소리꾼의 판이 벌어진 곳은 양반집 사랑채의 대청이었지만 그 앞마당을 가득 메운 것은 농촌의 뭇백성이었다.
시각적 문헌과 청각적 문헌은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시각적 문헌은 그 자체로 그것을 읽는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논리적인 분석의 대상이 되고, 지식과 정보의 교환을 주목적으로 하게 된다. 그러나 청각적 문헌은 시각보다는 청각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의식의 흐름의 시간성을 중시하는 많은 장치가 생겨나게 되고, 또 논리적인 것보다는 느낌이나 상상력 그리고 재미, 그리고 의미의 청각적 유발을 보다 주안점으로 삼게 된다.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감동’을 최우선시하게 된다. 그 감동이란 나의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이다. 이 감동을 전하기 위한 장치로써 어떠한 논리적 혹은 비논리적, 감각적 혹은 초감각적 이야기가 동원되어도 듣는 사람들은 그 세부적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문제는 나의 삶에 의미를 던져주는 감동일 뿐이다. 감동(感動)이란 케릭스(창자)의 발설에 감(感)하여 동(動)하는 청자의 감성(感性)의 체계이다. 『별주부전』에서 자라가 토끼를 꾀어서 용궁으로 데리고 내려갈 때, 뭍의 생물이 어떻게 물 속으로 들어갈까? 숨이 차서 금방 죽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청전』에서도 심청이는 분명히 임당수에 빠져 죽었는데 어떻게 용궁에 가서 엄마를 만났으며 또 연꽃을 타고 부활했을까? 그리고 아름다운 대궐에서 살게 되었을까?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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