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앙겔리온의 전성시대
마가복음은 빅 히트였다. 그 감동은 여기저기 교회마다 소문으로 퍼져나갔고, 낭송자는 유랑극단처럼 여기저기로 순회공연을 다녔다. 반주자도 없는 1인공연이니 간편하게 다녔을 것이고, 가는 곳마다 한번에 다 읽었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연속극처럼 몇 회에 나누어 낭송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여튼 인기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 대본을 카피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사본을 가지고 또 새 팀들이 유랑의 길, 전도의 길을 떠났다. 그런데 그러한 복음을 듣는 사람마다 감동 끝에 자기가 이전에 들어왔던 이야기를 첨가해서 전하는 사람도 생겨나게 되고, 또 관련된 설화들을 창작하여 덧붙이는 사람도 생겨난다. 옛날에 할머니들이 들려주던 이야기들은 누대를 거쳐 전승이 달라지기 때문에 해주는 사람마다 스토리의 길이와 구성과 분위기,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변화가 있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그러나 원형의 딥 스트럭쳐는 항상 살아있다.
70년에서 100년 사이는 유앙겔리온의 전성시대였다. 그리고 복음과 동시에 기독교가 놀라웁게 팽창했다. 그래서 복음에도 서편제와 동편제가 생겨나게 된다. 이 시기에 쓰여진 복음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매우 많다. 다양한 복음서의 전승이 있었지만 초대교회의 정통주의는 마가복음이라는 최초의 복음서를 원자료로서 승계하지 않는 새로운 스타일의 복음서는 받아들이지를 않았다. 그만큼 마가는 역사적 예수의 사역에 충실했다. 마가는 예수의 사역의 중심을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 두었다. 그리고 예수를 항상 갈릴리의 민중 속에서 그렸다. 그가 그린 민중은 라오스(laos)가 아닌 옥클로스(ochlos)였다. ‘라오스'는 국가주의적 함의가 있는 말이며 ‘국민’으로 번역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옥클로스’는 이스라엘민족을 하나의 통일체로서 표현하는 일체의 맥락과 무관한 그냥 군중이다. 예수는 항상 우호적인 민중에게 둘러싸여 있으며, 예수는 민중을 불쌍히 여기고 친절히 가르치며 그들 속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발견한다. 누가 과연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란 말인가?
둘러앉은 자들을 둘러 보시며 가라사대 바로 여기 앉아있는 이들이 내 모친이요 내 동생들이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막 3:34~35)
적의감 없이 그를 이해하고 따라주는 무명의 군중이야말로 그의 혈육이요 동포(同胞, 같은 탯줄에서 태어난 사람들)였던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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