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디아테사론과 몬타니즘
콘스탄티누스 이후와 한 무제 이후
문명의 여로에 동ㆍ서를 막론하고 항상 종교는 있어 왔다. 그러나 나는 예수를 말하는 데 있어서 최소한 콘스탄티누스 이후의 예수를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공자(孔子)를 말하는 데 있어서도 우리는 한 무제 이후의 공자를 말해서는 아니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도 콘스탄티누스 이후의 예수나 한 무제 이후의 공자에 집착한다. 사실 콘스탄티누스 이후의 예수는 예수가 아닌 로마 황제의 변형태다. 콘스탄티누스 이후의 하나님 또한 하나님이 아닌 로마 황제의 변형태인 것이다. 화이트헤드의 말대로, 콘스탄티누스 이후의 하나님은 갈릴리지평을 완전히 상실하고 세 가지 이미지로 발전해나갔던 것이다.
그 첫째는 제국의 통치자로서의 이미지(God in the image of an imperial ruler)이며, 그 둘째는 도덕적 에너지의 구현체로서의 이미지(God in the image of a personification of moral energy)이며, 그 셋째는 궁극적 철학원리의 이미지(God in the image of an ultimate philosophical principle)이다. 첫째는 로마의 가이사이며, 둘째는 잔인한 도덕주의자이며, 셋째는 사동(使動)의 부동자(不動者)이다. 우리가 지금 논구하려는 하나님 예수의 갈릴리 지평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갈릴리 지평의 하나님을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일까? 그것을 나는 사랑(Love)이라 부른다. 이 사랑이라는 주제는 본서의 자매편인 『요한복음강해』에서 자세히 설파될 것이다.
콘스탄틴 이후 발전해나간 예수의 이미지 | 제국의 통치자로서의 이미지(God in the image of an imperial ruler) | 로마의 가이사 |
도덕적 에너지의 구현체로서의 이미지(God in the image of a personification of moral energy) | 잔인한 도덕주의자 | |
궁극적 철학원리의 이미지(God in the image of an ultimate philosophical principle) | 사동(使動)의 부동자(不動者) |
단지 내가 오늘날의 기독교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기독교신학의 성과가 일반신도들의 상식으로서 공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기독교교계는 황제적인 하나님-예수님의 권위에 의존하여 절대복종을 강요하거나, 성령을 빙자하여 일체의 건강한 합리적 사유를 차단시키는 졸렬한 행태에 의존하는 경향성이 있다. 그러한 성령은 이단의 발호만을 조장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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