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과 황제
아직도 가톨릭 교황청이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콘스탄티누스 이래로 축적된 로마 황제의 권위가 교황의 이미지와 오버랩되어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러한 이미지는 우리 한민족에게 더욱 리얼하다. 불과 왕정에서 벗어난 것이 1세기도 안 되는 일천한 체험의 구조 속에서는 그러한 구속적 황제의 이미지에 대한 아이러니칼한 향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매우 급속히 민주화되고 개인주의화되고 자본주의화되고 강력한 지배자에 대한 향수가 근원적으로 붕괴되어가게 되면, 더구나 정보사회화의 급격한 진전이 수직적 사유를 근원적으로 해체시키는 경향성을 보이게 되면, 자연히 조선 왕조말기와 일제식민지하의 절박한 상황에서 요청되었던 하나님에 대한 헌신의 정서가 같이 해체되는 위기상황이 초래될 것은 너무도 뻔한 이치이다.
그럴수록 종교의 역할이 증대될 수도 있다는 모든 역설적 논리는 자기위안의 마스터베이션밖에는 되지 않는다. 끓는 물 속에서 해체되어가는 얼음덩어리가 자신을 추스리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다. 21세기에는, 인류의 불행한 과거 때문에 거저 먹었던 교황청의 수직적 하이어라키(Hierachy, 계층)의 권위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권위를 스스로 모색하지 않는 한, 급속히 해체되어갈 것이다. 21세기말의 바티칸이 현 영국왕실의 느낌 정도라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프로테스탄트의 지도자들은 그러한 경향성에서 면제된다고 안도의 숨을 내쉴지 모르지만 기독교의 대세를 운운하자면 신교의 성세는 아직도 구교의 백본(backbone)에 의존하고 있다. 구교의 권위가 해체되면 신교도 오늘날의 성세를 유지하기 어렵다. 벌써 우리나라의 신교의 경우 그 숫자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물리적 팽창이 과도했던 20세기에 비추어볼 때, 21세기의 전망은 결코 밝지만은 않다. 신ㆍ구를 막론하고 기독교가 21세기에 이 땅에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복음의 본래적 지평으로 회귀하는 것이며, 교회사의 모든 권위로부터 성서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누가 해방시키고 안 시키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진행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 대세일 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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