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아누스의 인생역전
그의 형 갈루스가 부제로 임명되어 떠나자, 그는 이오니아의 에베소로 가서 자유로운 삶을 만끽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친형 갈루스 부제는 콘스탄티우스에게 손을 뒤로 결박당하고 무릅 꿇은 자세로 목이 잘렸다. 정제 콘스탄티우스를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다. 그의 모가지는 무죄를 항변하지도 못하고 입을 다문 채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율리아누스는 콘스탄티우스에 의해 밀라노로 호출되었다. 율리아누스는 콘스탄티우스에게 살살 빌었다. 자기는 오직 철학공부하는 것만이 삶의 기쁨이며 정치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살살 빌었다. 그리고 아테네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래서 그는 아테네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철학의 본고장의 유적들을 바라보며 탈레스로부터 소크라테스를 거쳐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는 보이지 않는 지적 유산의 향기를 흠뻑 만끽했다. 그러나 반 년 후(355년 11월) 콘스탄티우스는 그를 다시 밀라노로 불러 ‘카이사르’에 임명한다. 부제가 된 것이다. 그리고 24세의 그를 골(Gaul) 지방의 전쟁사령관으로 보낸다. 그를 제거시키기 위한 심산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전쟁경험이 하나도 없었던, 칼자루 한번 손에 전 적이 없었던 철학도 율리아누스는 탁월한 전략가로서 변모하면서 모든 전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스트라스부르 전투’에서 대승하여 라인강 유역을 완전히 장악한다. 역사가들은 설명키 어려운 변신이라고 말하지만 전쟁도 결국 인술(人術)이며 인술(仁術)이다. 용인(用人)의 지혜와 부하를 아끼는 인(仁)한 마음이 있으면 나머지는 베테랑들이 다 해결한다. 더구나 율리아누스는 냉철한 철학적 이성의 소유자였다. 율리아누스는 결국 병사들에 의하여 ‘정제’로 옹립되었고 사촌형 콘스탄티우스와의 대결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다행히 콘스탄티우스가 병사한다. 그래서 반복되는 근친살해의 비극을 거치지 않고 그는 황제가 된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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