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견 전날밤의 풍경
우리는 수자타 집터가 있었다는 동산에서 아주 영어를 썩 잘하는 귀여운 꼬마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아눕 꾸마르(Anup Kumar)라는 이 소년의 별명을 ‘수자타동생’이라고 지었다. 나는 이 날 오후 늦게라도 법륜 스님이 계신 수자타 아카데미(Sujata Academy)를 들려올 생각이었다. 수자타동생이 마침 수자타 아카데미 가는 길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운전사 고삐는 매우 신중한 사람이었다. 밤이 늦어지면 이 지역에서 산길을 다닌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우리 차가 토요타이기 때문에 눈에 잘 띄고 외국인이라는 것이 완연해서 곧 낙살리떼(naxalite, 산적)의 공격타게트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는 비하르(Bihar)다. 우리는 밴디트 퀸(Bandit Queen) 푸란 데비(Phoolan Devi)의 고향에 와있는 것이다. 이러한 처지는 혜초스님의 여로에도 동일한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도로에는 도적이 많다. 물건을 빼앗고는 곧 놓아주며 다치거나 죽이지는 않는다. 만약 물건을 아끼다가는 다치는 수도 있다.
道路雖卽足賊, 取物卽放, 不傷煞. 如若怯物, 卽有損也. 慧超, 『往五天竺國傳』
우리는 고삐의 말을 듣기로 했다. 그리고 수자타동생 보고 내일 아침에 수자타호텔로 와달라고 했다. 꼬마는 기꺼이 응락했다. 나는 저녁 7시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오랜 여행으로 지쳐있었고 감기기운이 골치를 띵하게 했다. 수자타호텔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샨띠여인숙으로 들어갔다. 수자타호텔의 한기가 으스스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무리 아파도 약을 먹지 않는다. 그런데 하는 수 없이 나는 콘택600을 꾹 삼켰다. 달라이라마를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싯달타에게 빌었다. 오옴~ 이리띠 이실리 슈로다 비샤야 비샤야, 제발 오늘밤 감기가 떨어지게 하옵소서, 스바하~.
▲ 수자타 마을에서 새끼 꼬는 할아버지. 우리의 일상생활과 너무도 같은 모습이다. 혁명의 와중 속에서도 한시도 쉬지않고 새끼 꼬으며 생활하신 해월 최시형선생 생각이 났다.
눈을 떴다. 몸에 땀이 흘러 속옷이 젖었다. 하룻밤을 늘어지게 잤으려니, 아침이려니, 그리고 이젠 감기가 떨어졌으려니 했는데 낡아빠진 양탄자의 불결한 내음새 속에서 확인된 시간은 겨우 밤 10시였다. 난 3시간밖에 자질 못했다. 그리고 계속 잠만 자고 식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허기가 느껴졌다. 무슨 우동국물 같은 것이 먹고 싶었다. 갑자기 티벹인들이 운영하는 천막촌 식당가 광경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암도(Amdo)라는 이름의 포장마차집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암도는 달라이라마의 고향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한국수제비와 유사한 수제비음식으로 유명하다는 말이 생각났다. 나는 룸비니의 티벹사원에서 수제비를 맛있게 만들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그 수제비 좀 얻어먹으려다 실패했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 먹고 싶으니 한 그릇 떠줄 수 없느냐고 하니깐, 스님들 다 드시고 난 다음에야 보시를 하겠다는 것이다. 난 수제비 한 그릇 얻어먹기 위해 1시간 가량을 지체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냥 입맛을 다시며 룸비니를 떠나야 했다.
▲ 티벹의학의 현장. 약초파는 티 할아버지. 우리와 비슷한 의학전통을 지니고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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