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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중국의 티벹 동화정책의 명과 암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만나기까지 - 중국의 티벹 동화정책의 명과 암

건방진방랑자 2022. 3. 18.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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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티벹 동화정책의 명과 암

 

 

이군과 남군을 데리고 나는 암도라는 천막촌 식당에 들어섰다. 늦은 시간인데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있는 모습에 좀 놀랐다. 나는 음식만은 깨끗하게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인도여행을 통해 최고급 레스토랑만을 고집했다. 대개 5성급 호텔에 속한 식당들이었다. 평균 한끼에 2천루삐 정도가 소요되었다. 그런데 내가 충격을 받은 사실은 암도식당내의 모든 메뉴가 10루삐 전후라는 사실이었다. 한끼가 10루삐로 해결될 수 있다니! 신라호텔 최고급식당과 서울 뒷골목 포장마차집의 가격의 차이가 심하다 해도 2000 : 10이라는 차이는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고급레스토랑만 고집했던 나의 아집을 후회했다. 2000 : 10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도인들의 현실적 모습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송구스러운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암도식당은 아주 라이브리했다. 생기가 넘쳤다. 인도인들은 평상적으로 한끼를 10루삐로 때우고 있는 것이다. 10루삐로 나오는 음식과 2000루삐로 나오는 음식의 수준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루 쉰(魯迅)의 말씀대로 차뿌뚜어’(差不多)였다.

 

 

 이것이 고속도로 휴게실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 주렁주렁 매달린 것이 빤이다. 밤새 달려야 했던, 카주라호로 가는 지루한 여정에서.

 

 

바글거리는 싸구려 포장마차집! 풍경은 동종의 것이지만 한국의 그것과 인도의 그것은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의 바글거리는 식당에 가면 품격의 고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뽀얀 담배연기에 여기저기 쇠주잔이나 맥주잔이 놓이게 마련이다. 놀라운 사실은 인도인들은 하층 서민으로부터 고위층에 이르기까지 대체적으로 술ㆍ담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동자계급들도 피곤을 짜이’(cāy)라는 차로 달래지 쇠주를 들이키는 습속이 없다중국말의 ’(츠아)라는 것도 인도의 차이’(cāy: ‘짜이로 발음을 표기할 수도 있지만 차이로도 가하다. ‘c’는 짜와 차의 중간음이다)에서 유래된 것이다. 선진문헌에는 라는 글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인도인들의 짜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홍차잎에다가 우유나 생강 혹은 다른 향신료를 같이 넣어 달인 것이며 길거리ㆍ가정 어디서나 가장 보편적인 음료이다. 그리고 반드시 흑설탕이 들어가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달다. 참으로 보기 좋은 것은 서민들이 길거리에서 이 차를 아주 원시적인 토기 담아 먹는데, 한번 마시고 그 토기를 깨어버리는 것이다. 토기를 종이컵보다 더 싸게 생각하는 것인데 나의 눈에는 옛 신라의 토기보다도 더 귀한 물건으로 보였다. 몇개 싸 가지고 왔다.. 담배에 해당되는 것도 빤(paan)이라는 습관성의 식물인데’(paan)은 베텔(betel) 너트와 잎새, 그리고 약간의 단 것과 라임 등을 첨가하여 만든 것으로 약간의 중독성이 있다., 대만사람들이 즐겨먹는 삔랑(檳榔)과도 비슷한 것이다. 하여튼 인도인들의 삶에는 술ㆍ담배가 없다는 것이 우리네 삶의 상식으로 보면 참 건전하게 보인다. 이슬람과 힌두이즘 모두 서구적인 바카스 문화에 오염되질 않았다. 인도인들은 한국인들이 술ㆍ담배로 보내는 시간을 종교적 명상이나 한담으로 보낸다. 평화로운 농촌에서 동네 장로들이 모여있는 모습도 술잔을 기울이거나 장기를 두는 것이 아니라, 짜이 잔을 기울이며 한담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최다의 신도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인의 종교는 기독교도 아니요, 불교도 아니다. 한국인의 최고의 종교는 술이요, 바카스(酒神). 사실 대한민국은 바카스 공화국인 것이다.

 

황토빛의 흙내음새가 물씬 배어나오는 듯한 건강한 몽골리안 얼굴의 한 가족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내 옆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간간이 중국말이 새어나오는 것이다. 나는 잽싸게 말을 걸었다.

 

그대들은 중국사람입니까? 티벹사람입니까?”

 

난 티벹사람들과 많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 언어장벽이 큰 문제였다. 일반인들은 영어를 못했고, 나는 또 티말을 못했다. 그런데 난 중국말이라면 편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우리는 라사에서 온 티벹인입니다.”

 

티벹에서 어떻게 오셨습니까?”

 

우리는 칼라차크라에 참여하려고 왔습니다.”

 

내 말의 포인트를 잘 캣취하지 못한 듯했다. ‘어떻게 왔냐는 나의 질문은 티벹은 작금 중국인의 압제 속에서 신음하고 있을 터인데 어떻게 이렇게 일가족이 자유롭게 빠져나올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에서 우러나왔던 것이다.

 

티벹은 아주 자유롭습니다. 우리는 여권(護照)을 받아서 여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중화인민공화국내의 시짱쯔즈취(西藏自治區)현재 중국인들이 티벹을 부르는 이름이다. 그러나 진정한 自治는 오로지 달라이라마의 모든 권한을 회복함으로써만 가능해지는 것이다.의 모습에 대해서 아주 자랑스러운 듯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경직되고 위장된 가식의 말이 아니라, 참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했던 것이다. 나는 저으기 놀랐다.

 

달라이라마가 계시던 티벹보다 중국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지금이 더 좋다는 말입니까?”

 

물론이지요. 옛날보다 모든 것이 훨씬 더 좋아졌습니다. 사는 데 큰 불편이 없습니다.”

 

나의 충격은 배가 되었다. 여기 훨씬 더 좋아졌다는 표현은 중국말로 하면 하오 더 뚜어’(好得多)라는 말이다. 그들은 30대 초반의 부부였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이들의 부모가 겪은, 달라이라마의 삶의 역정이 보여주고 있는 그러한 고난이 피부로 와닿고 있질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물질적 풍요 속으로 점점 용해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1959년의 라사침공(이로서 달라이라마는 인도로 망명)민주개혁혹은 티혁명이라고 부른다. 내가 만난 이들은 물론 민주개혁 이후에 태어난 신세대들이다.

 

때마침 수제비가 내 식탁 위에 놓였는데, 인도에서 처음으로 구경하는 소고기국물이었다. 인도인들은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 그런데 티벹인들은 철저한 불교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육식을 즐긴다. 고원지대이기 때문에 채소ㆍ곡물의 경작이 한계가 있는 것이다. 고원의 풀을 뜯어먹고 자라는 가축의 고기를 아니 먹을 수 없다. 그것은 계율이기 전에 생존의 문제다. 티벹의 승려들은 육식의 금기가 없다. 수제비는 분명 수제비였으나, 국물이 내 입맛엔 너무 걸쭉했고, 시앙차이(香菜, 고소)류의 향신료의 냄새가 너무 강했다. 내가 수제비를 즐기지 않는 것을 보더니 그 티벹부부들이 말하는 것이었다.

 

라사에 한번 놀러 오세요. 여기 하고는 비교도 안됩니다. 엄청 맛있는 것이 많아요. 맛있는 중국음식도 많고, 티벹식 니우르어우미엔(牛肉麵)도 많고, 포탈라궁 앞에도 좋은 음식점이 즐비합니다.”

 

중국인들의 동화정책은 분명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아이덴티티의 상실과 물질적 풍요의 갈등은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모든 국가들의 공통된 문제이다. 그러나 인간은 간사스럽게도 자기존재의 도덕성을 상실할지언정, 물질적 풍요와 타락으로부터 자신을 방비하는 능력이 박약하다. 세계의 지붕, 고고한 고독 속에 고결하게 지내던 티, 이제 고속도로의 풍진에 휩싸이고 원자력발전의 기지가 되고 핵폐기물의 매립지로 변모해가면서 인민에게는 물질적 풍요와 민주의 타락이 선사되고 있는 것이다.

 

 

 짜이를 다리고 있는 노점상. 뒤에는 빤이 매달려 있고 옆에는 달걀이 쌓여 있다. 짜이를 보통 삶은 계란과 먹는다. 똑같은 짜이가 여기서는 2루삐공항에서는 150루삐. 서민들의 삶은 최소한의 돈으로도 건강한 삶이 유지될 수 있는 것 같았다. 아그라 시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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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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