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신화
"저는 최근에 『예수의 신비』(The Jesus Mysteries)라는 책에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인류문명의 다양한 신비주의를 폭넓게 연구한 두 영국학자, 프레케(Timothy Freke)와 간디(Peter Gandy)의 역저인데, 예수라는 사건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사건이 아니고 신화적으로 구성된 픽션에 불과한 것이라는 어마어마한 가설을 설득력 있고 치밀하게 분석했습니다. 이것은 20세기 문헌학의 획기적인 대발견이라고 불리우는 나하그 함마하디 영지주의 문서(the Nag Hammadi Gnostic Library)의 연구성과와 그동안 우리에게 무시되어 왔던 지중해 주변의 토착문명의 신화적 세계관의 매우 복잡한 연계구조에 관한 새로운 인식의 성과를 반영한, 단순한 가설 이상의 치밀한 문헌적 근거가 있는 논증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지금 『구약』의 창세기 이야기나, 노아의 방주이야기, 그리고 간지스강이 시바신의 일곱 머리카락 중의 하나라는 이야기를 사실로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신화는 신화로서 우리에게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신화적 구상임에도 불구하고, 신의 아들 예수가 인간 처녀에게서 잉태되었고, 성령의 세례를 베풀며,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고 죽은 자를 무덤에서 일으키는 기적을 행하다가 죽임을 당하고 또 육신으로 부활하여 승천했다 하는 신약의 이야기는 반드시 사실로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시공간내의 과학적 사건과도 같은 사실로서 받아들이는 비합리적인 사태야말로 모든 기독교신앙의 출발점이 되고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는 신화를 사실로서 강요하는 데서부터 모든 신앙의 논의를 출발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달라이라마는 나의 말을 다음과 같이 받았다.
“사실 불교에도 그러한 신화적 기술이 많습니다. 능인보살이 변화하여 흰 코끼리를 타고 구리찰제(拘利刹帝)의 딸의 태 안으로 들어갔다든가, 마야부인이 산기가 다가오자 친정인 구리성으로 가는 도중, 룸비니에서 오른손으로 무우수 가지를 잡고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던 사이에 오른쪽 겨드랑이로부터 아기가 툭 떨어졌다. 그런데 마야부인의 겨드랑이에는 피 한방울 나지도 않았다. 또 그 아이가 그 즉시 일곱 발자국을 걸어가서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나는 하늘 위 하늘 아래 가장 뛰어난 자이다. 이제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마지막 삶을 살리라. 이번 삶 동안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외쳤다는 등등의 이야기는 이미 초기 아가마의 전승으로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설화양식이지요. 이것을 사실로 믿으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옛날에는 모든 전승이 암송이라는 구전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설화라는 것은 이야기의 한 방식일 뿐입니다. 부처님의 스투파(stūpa) 주변으로 모여든 일반신도들에게 재미있게 이야기해주기 위한 한 양식으로 고안된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꾼들이 대부분의 본생담 같은 것을 지어냈다고 생각됩니다. 즉 말하는 사람이나 그 말을 듣는 사람이나 신화적 세계관이나 신화적 표현방식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그러한 방식으로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경을 읽어보면 역사적 사실로 여겨지는 부분과 그러한 설화적 표현의 부분이 혼동되지를 않습니다. 설화는 설화대로 사실은 사실대로 따로 이해를 하면 그뿐이지요. 설화에서 우리는 그 설화인이 우리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의미만 취하면 되는 것이지요. 저도 『신약성경』을 읽어보았습니다만, 아마도 말씀하시는 맥락에서 보자면, 복음서의 기술은 그러한 신화적 표현과 사실적 기술이 구분이 안 되는 방식으로 섞여져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방식의 기술도 그 나름대로 충분한 역사적 이유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 룸비니에 새겨진 마야부인의 출산상. 마야부인이 무우수 가지를 휘어잡고 있고 겨드랑이에서 떨어진 금빛의 아기가 보인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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