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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대담 - 붓다는 존재한 인간인가?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대담 - 붓다는 존재한 인간인가?

건방진방랑자 2022. 3. 1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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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존재한 인간인가?

 

 

나는 사실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미국서 큰 사람도 아니고 미국교육이래야 6년간 박사공부를 한 것 뿐이다. 나는 한국말을 가장 잘 한다. 그것은 우선 한국말이 자유자재롭고 편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난 영어를 하는 데도 그리 큰 불편을 느끼지는 않는다.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아무렇게든지 영어로 전달하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난 영어로 말하는 동안에 내가 영어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냥 잊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냥 되는 대로 적당히 뇌까린다. 나의 거침없는 서두로 좀 장내가 숙연해진 듯했다. 나는 말을 계속했다.

 

제가 인도를 오게 된 것은 명백하게 두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 첫째 목적은 역사적 붓다’(Buddha as a historical person)를 만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붓다의 모습은 금동(金銅)에 갇혀버린 차디찬 금인(金人)에 불과합니다. 생명있는 싯달타를 느껴볼 수 있는 역사적 현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역사적 현장을 몸소 가보고 그곳에서 나와 같은 현존재로서 실존했던 한 인간을 느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근 한 달 동안 많은 곳을 다녀봤고 그 첫째의 목적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상당히 달성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두 번째 목적은 오늘날 그 살아있던 붓다의 화신’(Reincarnation of Buddha)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바로 당신을 만나서 그 역사적 붓다의 실체를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인류에게 지니는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었습니다.”

 

내가 말하는 도중에 붓다의 화신이라는 말이 나오자 달라이라마는 갑자기 노우하면서 내 말을 끊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다음과 같은 선문답을 던졌다.

 

달라이라마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물론 여기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달라이라마는 말을 이었다.

 

달라이라마는 하나의 제도(an institution)입니다. 당신과 마주 앉은 나는 제도가 아닙니다.”

 

나는 이렇게 단도직입적인 그의 언변에 좀 충격을 받았다. 그의 목소리는 굵직했고 호소력이 있었으며 구슬이 굴러가는 듯, 아나운서의 목소리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불경에서 말하는 칼라빙카(迦陵頻伽, kalaviṅka)의 묘성이 아마도 이런 소리려니 했다칼라빙카(kalaviṅka)새는 好聲,’ ‘妙聲,’ ‘美音,’ ‘好音聲鳥등의 한역이 있다. 미묘한 울음소리를 내는 새로서 히말라야산이나 극락정토에 사는 상상속의 새이다. 인도의 나이팅게일의 일종인 부루부루새가 이 칼라빙카새의 모습에 실제로 근접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지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지붕 처마끝 수막새에 칼라빙카 새를 새겨넣었다. 통일신라, 지름 14.1c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물론 제도로서의 달라이라마는 불타의 화신이라기보다는 아발로키테슈바라(Avalokiteśvara), 그러니까 관세음보살의 현신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제1대 달라이라마, 그리고 제2대 달라이라마, 그리고 또 제5, 7대 이런 분들은 매우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비상한 능력을 가지고 계셨던 분들인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 분들을 둘러싼 그러한 비상한 이벤트(extraordinary events)에 대한 역사적 체험(historical experiences)들이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나의 경우는 이런 신통한 것들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는 그냥 여기 앉아있는 나일 뿐입니다. 이게 전부지요(This is all).”

 

그럼 당신은 아무 것의 화신도 아닙니까?”

 

난 나의 전생의 화신(the reincarnation of my previous life)일 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깔깔 어린애처럼 웃었다. 나도 그 웃는 모습이 우스워서 같이 깔깔 웃어댔다. 그러다가 나는 갑자기 진지하게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한마디 묻겠습니다. 붓다가 실제로 역사 속에서 우리와 같이 존재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붓다는 실제로 살아있었습니까?”

 

엉뚱한 듯한 이러한 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달라이라마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되쳐 물었다.

 

뭔 말씀이십니까?(What do you mean?) 그러한 질문을 나에게 던지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아마도 그는 그를 방문한 사람들이 그에게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지는 것을 별로 체험해보지 못한 듯했다. 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를 숭배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서양사람들도 그에게서 어떤 인생의 예지 같은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나에게는 그러한 특별한 목적이 없었다. 그리고 일체의 타부가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식인들에게는 냉혹한 이성의 잣대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한 나의 모습이 그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호기심과 친근감의 대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전 그냥 성하의 솔직한 생각을 여쭙고 있는 것 뿐입니다.”

 

질문하신 문제를 일면적인 각도에서 대답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아시다시피 역사적 붓다에 대한 생각은 불교의 종파마다 다양한 견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응신불(應身佛, nirmāṇa-kāya, 역사 속에 인간의 형상에 응하여 태어난 부처라는 뜻)여기서 말하는 응신불(應身佛, nirmāṇa-kāya)은 내가 앞서 말한 색신(色身, rūpa-kāya)의 개념에 가깝게 오는 것이다. 사실 4세기 중기 대승불교시대까지만 해도 법신(法身)과 색신(色身)의 이신설(二身說) 밖에는 없었다. 그러다가 법신(法身)의 본체계와 색신(色身)의 현상계를 연결하는 제3의 개념으로서 보신(報身, saṃbhoga-kāya)이 생겨나 삼신불(三身佛)사상이 되면서, 색신(色身)은 응신(應身)이라는 개념으로 바뀌어져 불리게 된 것이다.을 영원한 법신불의 일시적 현현이라고 생각한다면, 카필라성에 태어난 싯달타는 수많은 역사적 현현체 중의 한 사람이 될 것이며, 그 자체의 역사성에 관하여 그렇게 큰 비중이 없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도인들이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하여 그렇게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다는 일반적 사유의 특징에서 유래되는 한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 개인의 생각을 집요하게 물으신다면 저는 저와 같은 한 인간으로서 실존했던 역사적 붓다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달라이라마이기에 앞서 하나의 승려입니다. 승려라는 것은 단순한 개인적인 사태가 아닙니다. 승려는 반드시 승가(僧伽, saṃgha)라고 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자기이해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승가공동체의 최초의 형성자로서의 그 사람(that historical person)의 역사적 존재를 믿습니다. 이것은 법신(法身, dharma-kāya)의 일시적 역사적 현현태로서의 싯달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꾸로 불타의 법신은 역사적 불타의 색신(色身, rūpa-kāya)으로부터 생겨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말들은 나로서는 신중히 말해야하는 것들이지만 나 개인의 솔직한 소견은 그렇습니다.”

 

역사적 싯달타조차도 설화적으로 구성된 픽션일 수는 없습니까?”

 

매우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시는군요. 저도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하겠습니다. 우리 티벹에는 방대한 장경이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이 티벹장경을 공부하는 엄격한 수련을 거치면서 성장하여 왔습니다. 우리 티벹장경 속에는 원시경전에 해당되는 삼장(三藏, Tipiṭaka) 뿐만 아니라, 그 후에 발전된 대승의 논서들이 엄청나게 들어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후기 밀교경전까지 엄청난 분량이 집적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장경을 공부하면서 느끼는 것은 도저히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어떤 개인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초기에 결집된 삼장체계가 성립할 없다는 것을 너무도 절실하게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반열반경같은 것을 읽어보셨습니까? 쿠시나가르에서 숨을 거두는 인간 붓다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는 죽음을 거부하지도 않았고 보통사람처럼 순순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자기에게 본의 아니게 잘못된 음식을 공양한 춘다를 위로하셨을 뿐 아니라, 당신의 장례식절차까지도 세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죽음에 대하여 어떠한 신비로운 의미부여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존재를 우리가 회의할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닙니까?”

 

 

 하늘과 인간을 소통시키는 영혼의 멧신지. 카시 간지스 강에서

 

 

인용

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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