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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대담 - 예수 신화의 변용과 재생산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대담 - 예수 신화의 변용과 재생산

건방진방랑자 2022. 3. 1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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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신화의 변용과 재생산

 

 

바로 프레케와 간디는 그 역사적 이유를 소상하게 규명할려 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이야기는 애초로부터 사실로서 출발한 것이 아니고 지중해연안문명에 공통된 신화양식의 유대사회적 변용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예수의 시대는 싯달타나 공자소크라테스의 시대보다는 몇 세기나 늦은 인류문명의 꽃이 만개한 시대이며, 불교사로 본다면 대승불교운동이 본격적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줄리어스 시이저 등, 플루타크(Plutarch, c. 46~119이후 죽음)영웅전(Bioi parallēloi, Parallel Lives)에 나오는 인물들이 활약하던 시기를 지나 제국문명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와 로마를 넘나들며 활약했던 플라비우스 요세프스(Flavius Josephus, c. 37~100)와 같은, 예수와 동시대의 사가들의 자세한 역사서술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시대는 인류가 매우 개명한 삶을 살았던 시대며, 현재의 우리와 콘템포러리(contemporary)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의 사실적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예수는 역사 속에 중요한 사건으로서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신화적 삶의 이야기가 거대한 물결로서 당대의 개명한 역사의 대세를 잡을 수 있었다는 그 사실 자체가 매우 신기롭게 느끼지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야기는 역사적 메시아로서의 바이오그라피가 아니라, 영원한 이방인의 신들의 이야기에 기초한 하나의 신화적 구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중해연안에 공통된 이방의 신비종교의 유대적 변용에 불과한 것이지 그것이 전혀 새로운 계시적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We have become convinced that the story of Jesus is not the biography of a historical Messiah, but a myth based on perennial Pagan stories. Christianity was not a new and unique revelation but actually a Jewish adaptation of the ancient Pagan Mystery religion. This is what we have called The Jesus Mysteries Thesis. -Timothy Freke and Peter Gandy, The Jesus Mysteries (New York : Random House, 1999), p.2..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아주 이성적인 철학자로만 생각하며 그가 아테네의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지는 과정이나, 예수가 바리새인의 율법을 거부하고 예루살렘성전을 뒤엎고 유대인의 왕으로서 혁명을 꾀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지는 과정에 동일한 스토리의 스트럭쳐가 있다는 것,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준법정신 때문에 사형을 달게 받은 것이 아니라, 사후의 새로운 삶에 대한 종교적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도피할 수 있는 사형을 오히려 자초했다고 하는 그러한 과정이 예수의 스토리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별로 생각해보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피타고라스(Pythagoras, 581~497 BC)라고 하면 우리는 냉철한 공리를 발견한 수학자이며 과학의 원조라고만 생각했지, 그가 이집트, 페니키아, 바빌론 등지에서 신비종교를 체험하고 남부이태리 희랍식민지에 신비교단을 세운 교주이며, 인도인의 세계관과 동일한 윤회(the wheel of birth)관을 믿었고 윤회를 벗어나기 위하여 가혹한 금기의 계율을 실천했던 올페이즘의 신봉자였으며, 또 바람을 잠재우고 죽은 자를 일으키는 신비한 능력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서구문명의 뿌리를, 지나치게 근대과학의 근원으로서의 그레코로망의 합리적 전통에서 찾으려고 한 나머지, 그 문명의 형성과정에 대한 총체적 조망을 하지 않고 단지 근대과학적 사유에 합치되는 어떤 연역적 사유체계로서의 희랍문명의 그림만을 그린 데서 오는 오류들입니다. 우리는 철학, 즉 필로소피아를 소피아의 사랑이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 소피아가 단순히 이성적 사유로서의 지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모든 신비를 체험하는 열쇠로서의 소피아라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소피아가 성서에서 말하는 그노시스(영지)와 근원적으로 상통되는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애써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던 것입니다.”

 

달라이라마는 내 말을 가로막지 않았다. 내 말이 재미있는 듯 호기심을 가지고 고개를 끄떡이며 계속 내 말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신이 나서 계속 영어로 씨부렁거렸다.

 

이러한 이방신비종교의 핵심에 있는 것은 죽음과 부활의 신화를 구현하는 신인(神人, a dying and resurrecting godman)입니다. 이 신인은 문명의 양태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이름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Osiris), 희랍에서는 디오니수스(Dionysus), 소아시아에서는 아티스(Attis), 시리아에서는 아도니스(Adonis), 이탈리아에서는 바카스(Bacchus), 페르시아에서는 미트라스(Mithras)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이 신인들은 모두 동일한 신화적 존재(the same mythical being)이며, 이 신화는 기원전 3세기부터 이 지역에서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였습니다. 신화학자 조세프 캄벨(Joseph Campbell)이 말한 대로 이러한 신화들은 동일한 해부학적 구조’(the same anatomy)를 갖는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인간의 존재의 보편성인 동시에 한계상황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쥴리엘(Romeo and Juliet)은 이태리의 갑부집안들의 알력을 다룬 16세기 영국의 비극이고, 베른슈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는 길거리 불량배들의 싸움을 다룬 20세기 미국의 뮤지칼이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예수의 이야기는 오시리스-디오니수스의 신화의 유대적 번안(a Jewish version)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부에 이르기까지 예수신화와 완전히 동일한 이야기들이 산재해있음을 증명합니다.”

 

예수를 그렇게 신화적 사태로서 구성했다 할 적에 기존의 역사적 믿음과 많은 충돌이 생겨날 텐데, 그들의 가설은 이러한 충돌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가장 큰 충돌은 역사적 예수의 존재가 없이 어떻게 사도바울이라는 사람의 전도여행과 초대교회운동이 가능했겠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역사적 붓다가 없이 어떻게 왕사성이나 바이샬리, 슈라바스티벹의 승가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도 동일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참 재미있군요. 한번 그 해답을 들어보고 싶군요.”

 

 

코끼리를 타고 다니는 인도인, 룸비니에서, 코끼리는 인도대륙의 보편적인 동물이었다. 코끼리의 존재로써 인도 대륙이 아프리카대륙과 접합되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기도 한다. 코끼리는 신화나 본생담에 항상 등장한다. 마야부인의 태몽도 흰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이었다. 시바신과 파르바티벹의 큰아들 가네샤(Ganesa)도 코끼리다. 지혜와 신중함의 상징이다. 윗 사진은 웨일즈 박물관의 가네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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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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