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계사 전환의 계기
“깨우치는 바가 큽니다. 그러나 헤겔의 언급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하나의 이야기를 상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불교는 본시 인도의 종교입니다. 현재 불교는 인도 자체에서는 괄목할 만한 족적을 남기고 있지 않지만, 대승불교ㆍ밀교를 포함해서 모든 불교의 원형은 분명히 인도문명에서 잉태되고 장육(長育)되었습니다. 그런데 불교가 잉태되고 성장한 이 인도라는 토양은, 드라비다족으로 추정되는 원주민의 문명을 잠시 도외시하고 이야기하자면, 인도-유러피안어군에 속하는 산스크리트어를 조형으로 하는 인도 아리안어족의 문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여태까지 논의한 초월적 종교의 모든 원형은 함족ㆍ셈족어군(Hamito-Semitic languages)의 문명 속에서 태어난 것입니다【함족ㆍ셈족어군(Hamito-Semitic languages)은 ‘Semito-Hamitic,’ ‘Erythraean,’ ‘Afro-Asiatic,’ ‘Afrasian languages’로 불리기도 한다. 그 조형은 기원전 6∼8천년경 사하라사막지역에 있었다고 추정되는 것이다. 이 언어는 세미틱(Semitic), 에집티안(Egyptian), 버버(Berber), 쿠쉬틱(Cushitic), 챠디(Chadlic)의 5개 지류로 분류된다. 원래 셈(Sem)이니 함(Ham)이니 하는 말들은 노아의 세 아들 중에서 첫째아들과 둘째아들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노아의 맏아들 셈으로부터 앗시리아인, 아라비아인, 아람인, 히브리인이 나왔고, 함으로부터 에티오피아인(구스인), 에집트인(미쓰렘인), 리비아인, 가나안인이 나왔다고 얘기되지만 이 모두가 정확한 구분근거를 가지는 학설은 아니다.】.
결국 유대교ㆍ기독교ㆍ이슬람교가 모두 하나의 언어풍토의 동일한 신의 계보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인도문명은 이러한 초월종교의 신화적 토양과 일찍부터 교류가 된 공통의 문명권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황하문명과는 전혀 어족을 달리 하는 문명이며 그것은 중국사람들이 항상 ‘서역’(西域)이니 ‘서방’(西方)이니 ‘천축’(天竺)이니 하는 말로 표현했지만 그것은 동아시아문명권보다는 훨씬 더 우리가 지금 서양이라고 부르는 복합문명체에 친화력을 지니는 문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싯달타라는 기적적인 역사적 개인은 그러한 토양의 공통분모를 완전히 벗어나는 새로운 발상을 한 사람입니다. 도저히 그러한 공통의 문명기저(인도ㆍ유러피안어족 + 하미토ㆍ세미틱어족)의 어떠한 종교적 언어로도 인수분해될 수 없는 어떤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 패러다임의 형성은 아리안 이전의 토착문화(pre-Aryan indigenous culture)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아리안계 국가주의에 저항하는 토착적인, 혈연중심의 종족사회(=씨족공동체)의 가치체계와 관련지어 집요하게 추구해 들어간 명저가 미야사카 유우쇼오의 하기서이다. 宮坂宥勝, 『佛敎の起源」, 東京 : 山喜房, 1987.】.
그러나 이 패러다임은 결코 쉽게 이해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종교가 아닌 종교였으며, 구원이 아닌 구원이었으며, 복음이 아닌 복음이었으며, 신이 아닌 신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패러다임은 기나긴 역사의 시간을 요구하는, 너무도 인류의 이성의 발전단계를 일찍 뛰어넘은 대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도저히 이 불교를 수용할 길이 없었습니다. 아쇼카 왕의 그러한 대규모의 노력도 결코 불교를 인도라는 토양에 정착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물론 카스트라고 하는 거대한 장애물이 있었지만 이것은 카스트만의 문제가 아닌 정치ㆍ사회ㆍ경제ㆍ문화의 모든 방면에 있어서 혁명을 요구하는 너무도 거대한 과제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이 불교가 세계문명의 윤회바퀴 속에서 거대한 도전을 시도한 것이 중국문명과의 해후였습니다. 이 불교와 중국문명의 해후는 참으로 인류사에 유례를 보기 힘든 양대 독립문명간의 대규모적 융합이었고, 그 융합은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이라고 하는 새로운 사조 등 그 나름대로 엄청난 복합화합물들을 창조했지만, 중국문명이 서구문명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 그 나름대로의 유기체적 사명을 종료했던 것입니다. 즉 중국불교는 정확하게 대승불교라고 하기보다는 그 나름대로의 독자적 생명과 성격을 가지는 중국불교일 뿐이며, 그 중국불교는 이미 명ㆍ청시대를 거치면서 쇠락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중국문명 속에서의 불교는 당(唐)대의 극성기를 지나 꾸준히 쇠락의 일로를 걸으면서 그 나름대로의 유기체적 시간을 종료한 것입니다. 이 중국불교의 대표적인 두 적자가 한국불교와 일본불교입니다. 그러나 여기 한국불교의 특수성은 제가 얘기를 보류하겠습니다만, 일본불교의 경우 진정하게 살아있는 수행과 신앙의 터전으로서의 불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불교는 어디까지나 신토이즘(Shintōism, 神道)이라고 하는 영원히 떼어 버릴 수 없는 자체 샤마니즘의 토양 위에서만 배접된 것이며, 그나마 에도시대를 거치면서 반기독교정책으로 인하여 모든 테라(절)는 일종의 관청같은 것으로 변모하여 버렸습니다. 일본의 현실적 불교는 일종의 형해화된 대처승들의 제식일 뿐입니다.
그러나 일본불교의 위대성은 학문적으로 불교가 세계화될 수 있는 엄청난 토양을 창조했다는 데 있습니다. 일본불교의 가치는 종교적 실천에 있다기 보다는 탁월한 학문적 업적에 있습니다. 세계불교의 연구는 모두 일본학자들의 업적에 신세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수행불교로서의 오리지날한 불교의 면목을 보유하고 있는 문명은 현재, 한국ㆍ미얀마ㆍ스리랑카ㆍ티벹 정도를 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의 절은 북전불교로서는 민중의 신앙 속에서 살아있는 유일한 수행의 도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네 나라, 한국ㆍ미얀마ㆍ스리랑카ㆍ티벹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약소국이며, 세계사의 주류를 리드하고 있지는 못한 주변문명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불교의 최고경전이라 할 수 있는 『팔리어삼장』(Pali Tipitaka)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것은 아쇼카왕의 파탈리푸트라 제3결집 경에는 대강의 모습이 형성된 것이고 그것이 스리랑카에 전해져서 문자로 기록된 것은 대강 기원전후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류사회에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은 19세기 후반 이 지역으로의 대영제국의 진출에 따른 제국학자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파우스뵐(V. Fausböll)이 학술적 원전으로서의 『법구경』을 출판한 것이 1855년의 일이었고, 리즈 데이비즈(T. W. Rhys Davids)가 런던에 팔리성전협회(Pali Text Society)를 설립한 것이 1881년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본학자들이 이미 1930년대에 이 팔리어삼장을 『남전대장경』이라는 이름으로 완역하여 출간하였습니다. 70책의 방대한 분량이지요. 저는 최근 이 일역 팔리어삼장을 구입하여 미친듯이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여태까지 한역대장경에만 의존하여 이해하던 불교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생생한 원시불교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팔리어삼장을 읽으면서 2천여 년 동안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채 어느 심원한 고적 속에서 숨쉬고 있던 찬란한 보석을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불교의 총체적 모습이 본격적으로 인류에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기부터 이며, 그것은 팔레스타인에서 탄생한 기독교가 2ㆍ3세기의 초대교회운동을 거쳐 313년 로마에서 공인을 받은 것에 비유한다면, 불교의 경우, 그러한 초대교회운동이 실제로 2500여 년을 소요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아시아대륙에서 태어나 천하의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 그 세계사의 주류로 일찍 접목이 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같은 두 밀레니엄의 위용을 지닐 수 있었습니다.
이제 불교가 서방세계에 접목되어 세계사의 주류에 접목이 되기 시작한다면 그 두 밀레니엄의 바톤을 이어받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팔레스타인의 약소민족의 약소그룹의 기독교운동이 이방인의 사도, 사도바울에 의하여 먼저 소아시아ㆍ아테네에 걸치는 헬레니즘세계에 전파되었고 그 여력을 휘몰아 드디어 로마로 접목되었다고 한다면, 오늘날 한국ㆍ미얀마ㆍ스리랑카ㆍ티벹과 같은 약소국가에서 그 원시적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불교가 미국이라는 세계사의 주류의 정신적 토양을 일궈내기 시작한다면 인류사의 새로운 미래가 열릴 수도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더구나 미국은 잉글란드의 적자로서 태어난 뉴잉글란드로부터 시작된 신생문명이며, 그 문명의 정신적 기저를 퓨리타니즘으로부터 출발시켰지만, 이미 나다니엘 호돈(Nathaniel Hawthorne, 1804~64)이 그리고 있는 그러한 퓨리타니즘(puritanism)의 정신은 거의 소멸되었으며, 그 정신적 공백을 20세기 프래그머티즘(pragmatism)과 같은 사조가 충족을 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예를 들면 미국이 불교이념을 바르게 소화해낸다면 인류문명의 새로운 정신적 리더십을 창출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치 로마가 자신들의 토속적 신앙형태를 버리고 이방인의 기독교를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문명을 구축했던 것과도 같은, 어떠한 새로운 세계사의 획기적 전환의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전환의 모우먼트(moment)에 모택동(毛澤東, 1893~1976)이 티벹의 승려들을 전세계를 향해 내몰았다고 하는 사건은 단순히 우연적인 계기로만 해석되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인류사의 아이러니가 매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달라이라마 당신을 야크 위의 세계정신이라고 말한 그 표현이 어찌 지나치는 죠크에 지나지 않는 것이겠습니까? 세계 정신사의 거시적 관점에서 본 하나의 필연적 길목에 성하와 티벹인민들의 고난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만큼의 무거운 책임감이 성하와 성하의 고난을 같이 해야 할 인류의 지성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 달라이라마의 고향 암도는 수제비 음식으로 유명하다. 수제비를 만들고 있는 티벹사람들, 룸비니 티벹사원에 모여 법회중인 승려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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