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주의의 확립
나는 계속 형상(iconic)과 비형상(aniconic), 등신불과 법신불, 대승과 소승의 논제를 계속 풀어나갔다.
“그런데 이러한 비형상주의적 경건성에 비하여 아주 색다른 표현력을 가진 문명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헬라스, 그리스 문명입니다. 크레테섬의 미노아문명에서 출발하여 이방정복자들의 문명을 창조적으로 결합해간 이 그리스 문명은 일찍이 신의 모습을 인성으로 표현하는 데 하등의 주저함이 없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인간주의를 그들의 합리적 사유의 근원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가 초기로부터 아이코노그라피를 발전시킨 것도, 결국 희랍세계와 접목됨으로써 시작된 것이며 예수의 모습도 초기에는 아폴로신상을 닮았던 것인데 로마제국의 제국종교가 된 이후로부터는 희랍의 영향을 받는 로마조각의 영향하에 예수의 모습은 세계를 지배하고 심판하는 로마황제를 닮은 아이콘(Christ as the imperial reigning Lord)으로 발전해나가는 것입니다.
5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십자가에서 수난받는 예수의 아이콘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 수난의 예수의 아이콘은 10세기에서부터나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인데, 이것은 승리를 구가하는 황제적 지배자의 모습에서 고난당하는 단순한 한 인간제물의 모습으로 근원적인 패러다임이 전환되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수난의 아이콘은 르네쌍스ㆍ종교개혁시대를 거치면서보다 인간중심주의적으로 해석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아이콘의 역사에서 매우 특기할 사건은 우상파괴논쟁(Iconoclastic Controversy)입니다. 이것은 8~9세기에 걸쳐 비잔틴제국에서 일어난 정치ㆍ종교ㆍ문화적 대사건이었는데, 아이콘을 숭상하는 희랍문화권의 기독교인과, 희랍문명을 벗어나 있는 동방전통 그리고 셈족전통(Easterm or Semitic tradition)의 기독교인 사이에서 일어난 충돌로서 간주될 수 있는 것입니다. 황제 레오3세(Emperor Leol, r. 717~741)는 성상을 숭배하는 행위를 금지시키는 칙령(two edicts against the veneration of icons in 726 and 729)을 반포하였고 성상옹호론자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행위는 성상옹호론자들의 단합과 이론적 강화를 꾀할 뿐이었습니다.
그 이후 레오4세의 부인이며 희랍지역출신이었던 황후 이레네(Empress Irene)는 다시 성상주의를 옹호하기에 이르렀지요. 그 뒤 레오5세 때 잠깐 다시 성상파괴론이 부활했지만, 결국 테오필루스 황제(Emperor Theophilus)가 죽고난 이래, 그의 부인 테오도라(the regent-empress Theodora)에 의하여 성상주의는 희랍정교회의 정통으로 요지부동한 지위를 확보했습니다. 이로써 먼 훗날 르네쌍스 예술이 만개할 수 있는 초석이 놓여지게 된 것입니다.”
“불교의 아이코노그라피는 저도 자세한 정황은 잘 모르겠지만 결국 스투파신앙에서 진일보한 어떤 계기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까?”
▲ 모스크 미흐랍(mihrab). 예배의 방향(메카쪽)을 알려주는 벽감(壁龕)일 뿐이다. 아무런 형상도 장식도 없다. 기독교에서처럼 ‘주의 종’으로서 목사(사제)도 인정되지 않는다. 알라와 인간 사이에 일체의 매개자가 인정되지 않는다. 예배시에는 모두 비슷한 흰 옷을 입기 때문에 신분의 차이도 드러나지 않는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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