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콘과 비아이콘
2002년 1월 8일밤, 나는 마하보디사원의 스투파(stūpa)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나의 기나긴 논의의 결론은 이러하다. 소승ㆍ대승을 막론하고 원시불교의 모든 종교운동은 스투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투파란 무엇인가? 스투파는 탑이다. 탑이란 무엇인가? 탑이란 부처님의 무덤이다. 부처님의 무덤이란 무엇인가? 부처님의 향기와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스투파는 원시불교에 있어서 비아이콘적인 형상(aniconic imagery)으로서 허용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물론 스투파 외로도 부처님 발자국(footprint)이라든가, 보리수나무(the Bodhi Tree)라든가, 부처님이 앉아 계셨던 금강보좌(the Adamantine Seat, vajrāsana) 등등을 들 수 있지만 이것은 모두 법신(法身, dharma-kāya)사상에 의한 것으로, 인간 싯달타의 인간적인 형상 즉 등신불 (anthropomorphic image)과는 거리가 먼 것이며, 어디까지나 추상적인 것이다. 스투파는 부처님의 법신의 현현이며, 마치 그가 그곳에 살아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가 구현하려 했던 진리를 체득할 수 있는 곳의 상징물로서만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부처님의 유골(사리)은 당시의 부처님과 관계 있었던 8종족에게 분배되었고, 그들에 의하여 부처님 생애 중에서 우리 후대의 사람들에게 기념이 될만한 인상깊은 곳에 스투파(stūpa)가 건립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부처님을 기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그곳에 끊이질 않았다. 이 발길들로 구성되는 모종의 유대감이 바로 최초의 승가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이며 문헌과 고고학적 발굴로써 입증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스투파의 신앙(stūpa worship)을 대대적으로 일으키고 전국적으로 확대시킨 사람이 바로 전륜성왕 아쇼카였다. 아쇼카는 최초의 부처유골이 들어간 8개의 스투파를 다시 개봉하여 그것을 모아 가루로 빻아서 다시 분배하여 8만 4천개의 스투파를 건립하였다【이 기록은 『阿育王傳」(Aśokarājāvadāna, 『大正』 50-102)과 『阿育王經』(Aśokarāja Sūtra?, 『大正』50-135)에 나오고 있다. 아쇼카왕(阿育王)의 팔만사천탑(八萬四千塔)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삼국유사(三國遺事)』 권제삼(卷第三) 탑상제사(塔像第四) 요동성육왕탑조(遼東城育王塔條)에도 매우 명료하게 기술되어 있다.】. 8만 4천개라는 숫자가 정확한 숫자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엄청난 숫자의 스투파가 아쇼카시대에 인도전역에 건립된 것은 고고학적인 사실이다. 그리고 이 아쇼카의 8만 4천탑 조립의 설화는, 중국ㆍ한국ㆍ일본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모두가 8만 4천탑 중의 하나가 자기네 땅 어느 곳에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소위 ‘진신사리’의 설화의 배경인 것이다. 『유사』에 나오는 자장법사의 사리설화도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해서 태어난 것이다(『삼국유사』 卷第三, 塔像第四, 前後所將舍利). 그러나 이 ‘사리’라는 것은 실제로 지극히 극소량의 ‘뼈가루’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광물결정체였다면 8만 4천의 배분은 꿈도 못 꿀 일인 것이다. 부처님과 관련된 뼈ㆍ항아리ㆍ재, 이렇게 직ㆍ간접으로 관련된 모든 물증을 그 상징으로 담아 스투파(stūpa)를 건립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아쇼카시대에 스투파신앙이 성행하게 되면서 이 스투파 주변으로 자연스럽게 모이는 일반신도들(lay believers) 중심으로 대승불교의 보살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이 문제는 대승불교운동의 기원에 관한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방대한 주제이다. 나는 이 주제를 매우 요약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 선생의 논문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대석학의 통찰이다. Hirakawa Akira, ‘Stupa Worship,’ The Encyclopedia of Religion, ed. by Mircea Eliade (New York : Macmillan, 1987), vol.14, pp.92~5.】.
▲ 보드가야에 있는 부처님 발자국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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