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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대담 - 티벹의 침묵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대담 - 티벹의 침묵

건방진방랑자 2022. 3. 2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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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벹의 침묵

 

 

나는 정말 기뻤다! 내일 또 시간을 내주시겠다니! 오늘 나의 대화가 결코 그에게 누가 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이 바쁜 중에 또 시간을 내어 주시다니!

 

저는 도올선생님과 같은 분과 앉아서 대화하는 시간이 인생에 가장 보람 있는 순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말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았지만 도올선생님처럼 그렇게 많은 분야에 정통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만나 뵙기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무슨 얘기가 나와도 그것을 진지하게 풀어나가시는군요. 요번 보드가야의 일정은 너무 빡빡합니다. 내일 제가 특별히 시간을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러나 편안할 때 한번 다람살라에 오십시오. 다람살라에 오시면 언제고 제가 뵙고 싶습니다. 그곳에서는 보다 여유있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그는 나의 친형처럼 친근하게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라크도르 스님에게 내일 아침 10시에 이 자리에서 나와 다시 만나는 스케쥴을 짤 것을 지시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보고 괜찮으면 같이 나가자고 했다. 예식이 두 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내가 참여해도 상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무심코 그의 뒤를 쫓아나갔다. ~ 그런데 이 순간이 나의 인생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감격의 순간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꿈에도 상상칠 못했다.

 

궁을 나섰을 때 나는 정말 놀랬다. 궁으로부터 보드가야의 대탑에 이르는 연도에는 수천수만의 티벹군중들이 달라이라마를 한번 뵙기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두 손 모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나는 그러한 뭇사람의 애틋한 기다림 속에서, 나와 달라이라마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카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충격을 준 것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그 사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달라이라마와 내가 궁을 나서는 순간, 그 순간에 전개된 군중들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달라이라마가 나타나는 순간, 연도에 기다리고 있던 수천수만의 군중들이 더 가까이 그를 보기 위해 웅성거리며 도폭을 좁히며 밀려들 것이라고 나는 예상했다. 연변에는 인도경찰들이 주욱 나라비를 서서 경호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연변을 가득 메운 군중들의 모습들은 전혀 나의 예상을 뒤엎고 말았다. 갑자기 온 거리가 정적에 휩싸였다. 영화의 매우 바이올런트(Violent, 격렬한)한 장면의 극도에서 뮤트로 슬로우 모션이 지나가는 그런 상황이 있다. 펠리니의 의 첫 장면을 연상해도 좋다. 달라이라마가 나서는 순간 갑자기 온 세계가 너무도 조용해진 것이다. 미동의 소리도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티벹의 군중들은 두 손을 모아 영롱한 눈빛으로 달라이라마를 쳐다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달라이라마를 육안으로 쳐다보는 그 감격을 가슴으로, 눈빛으로만 표현했다. 너무도 격렬한 감동의 움직임이 고요한 자태로 표현되고 있는 그 역설! 침묵 이상의 웅변은 없었다. 주름진 할머니의 얼굴, 알록달록 티문양의 치마를 두른 아낙들, 문둥이 곱은 손을 정성스럽게 모으고 있는 사람들, 합장한 손이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굽히고 있는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이 아마도 근대사의 과정에서 죽창에 찔리고 총개머리에 터지고 성벽에서 굴러 떨어지고 인민군 탱크에 밟혀 비명에 간 가족의 상흔을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두 손 모은 초롱초롱한 눈빛이 한 몸에 쏟아지는 그 침묵의 간망(懇望)을 나는 한몸으로 달라이라마의 곁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달라이라마는 그들의 군주였고, 다르마의 구현체였다. 그는 21세기 벽두에 우뚝 서있는 왕이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도 진실하고 소박한 한 인간이었다. 나는 이 엄청난 열망의 장 속에서 기묘한 에너지를 소리없이 느끼고 있었다. 그 침묵의 아롱진 눈망울들을 쳐다보며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비애와 환희의 눈물을 왈칵 쏟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달라이라마와 함께 연도를 걸어갔다.

 

달라이라마는 먼저 대탑 속 정중앙에 안치되어 있는 항마(降魔)인 모습의 금동불상에 절하는 예식을 했다. 나도 따라 했다. 그리고 달라이라마는 금강보좌 앞에 마련된 제단 위에 올라 앉았다. 그리고 나보고도 그 옆으로 라크도르 스님과 함께 자리를 마련해주시면서 앉으라 했다. 그 뒤로 천여 명의 티벹승려들이 장엄한 모습으로 착석해 있었다. 범어사 승려들의 눈 깜박이는 소리가 소나기 소리 같더라는 항간의 코믹한 이야기가 생각이 날 정도였다. 우렁찬 독송이 시작되었다. 2시간을 꼬박 천여 명이 제창으로 암송하는 독경소리는 정말 나에게는 특별한 체험이었다. 달라이라마께서는 중간에 힐끗힐끗 나를 쳐다보시면서 개구장이처럼 웃곤 하셨다.

 

여러 제식이 사이사이 끼어 있었지만 그 제식과 주문을 전체적으로 잘 살펴본즉, 영신(迎神)-오신(娛神)-송신(送神)이라는 우리 예식의 디프스트럭쳐와 같은 내용이었다. 여기서 청하는 것은 붓다의 오심이었다. 그리고 붓다 앞에서 신()ㆍ구()ㆍ의()의 삼업을 씻는 물의 제식을 챈팅으로 행하였다. 이 제문은 달라이라마 당신께서 20년 전에 여러 경에서 조합하여 간략하게 만드신 것이라 했다. 제식이 끝난 후 제단에 바친 음식을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궁으로 돌아왔다. 궁앞에 이르렀을 때 그는 갑자기 나에게 손짓을 하면서, ‘밍티엔찌엔!’(明天見)이라고 죠크를 했다. 아주 정확한 중국발음이었다. 그는 내가 중국말을 잘 알아듣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재치가 넘치는 분이었다.

 

 

 

 

인용

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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