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심리학인가?
“어제 말씀 중에서 기독교는 사건중심이고 불교는 법중심이라고 하셨는데, 그 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연기(緣起, 산스크리트어: pratītya-samutpāda, 팔리어: pa ṭicca-samuppāda)입니다.”
나는 이 한마디에 온 전신에 전율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그의 대답은 너무도 간결했고, 내가 원시불교에 관하여 깨달은 총체적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그는 대스승이었다.
“연기(緣起)란 무엇입니까?”
“연기(Dependent Arising)란 모든 것이 서로 의존하여(paṭicca) 함께(sam) 일어난다 (uppāda)는 뜻입니다. 즉 이 우주의 어떠한 이벤트도 절대적인 독립성을 갖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연기를 인과(causation)라는 말로 바꾸어도 되겠습니까?”
“상관 없습니다.”
“이 우주의 모든 사태는,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모두 시간과 공간 안에서 다 일어나는 것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시공간 밖에서 일어나는 사태는 연기론에서는 인정이 안 됩니까?”
“인정될 수 없습니다.”
“공간적인 동시적 인과는 있을 수 없습니까?”
“있을 수 없겠지요.”
“그렇다면 티벹스님들이 동시적으로 다른 장소에서 일어났던 일을 영매를 통해 보고왔다든가 하는 것은 무슨 일입니까?”
“저는 그런 신비스러운 일은 잘 모릅니다만, 그런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해도 반드시 혼이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은 걸릴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공간적으로 격절되어 있는 두 개의 사태가 인과 관계를 가지려면 반드시 그 사태는 시간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빛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시간이라도 필요합니다. 북극성에서 일어난 일이 지구에 영향을 미치려면 적어도 1,000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차이가 500년 밖에 안 된다면 인과관계는 성립할 수 없겠지요. 그러기 때문에 모든 연기의 사태는 시ㆍ공간을 동시에 요구하는 것입니다.”
“연기는 과학입니까?”
“그렇습니다. 불교는 과학입니다.”
달라이라마는 계속해서 서슴없이 이야기했다. 그는 과학에 대해 깊은 생각이 있었다. 나는 계속 물었다.
“불교는 마음의 과학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불교는 심리학(Psychology)이라고 해도 좋겠군요.”
“심리학이라 말 못할 것이 아무 것도 없지요. 요즈음의 얄팍한 행동과학적 심리학에다가 그 개념을 국한시키지 않는 한 말이죠. 불교는 심리학입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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