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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철학과 굴뚝청소부, 제1부 철학의 근대, 근대의 철학 - 2. 스피노자 : 근대 너머의 근대 철학자, 진리와 공리 본문

책/철학(哲學)

철학과 굴뚝청소부, 제1부 철학의 근대, 근대의 철학 - 2. 스피노자 : 근대 너머의 근대 철학자, 진리와 공리

건방진방랑자 2022. 3. 2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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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공리

 

 

이는 사실 과학의 역사에서도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서 뉴턴 시대에 누가 운동하는 물체의 속도가 빨라지면 그 질량이 늘어난다고 말했다면 그 말은 거짓이요, 그 사람은 물리학의 ABC도 모르는 사람으로 간주될 겁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는 질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진리였기 때문입니다. 진리속도가 빨라지면 질량이 늘어난다는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가르는 기준이 된 겁니다. 상대성이론이 새로 진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대라면 사정은 정반대가 되겠지요.

 

요컨대 사유와 연장이 실체의 속성이라는 스피노자의 주장은 데카르트적인 문제, 즉 근대철학의 중심이 되는 문제를 애초부터 피해 갑니다. 그런 문제는 스피노자에게서는 제기조차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스피노자는 근대적인 문제설정과 큰 거리를 두고 있는 셈입니다. 한편 그는 역설적으로, 인식을 통해 진리에 이르려는 근대적인 주체에게 그건 목표가 아니라 오히려 출발점임을 가르쳐 줍니다. 즉 인식에 이르려면 이미 진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는 어떤 인식도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고 하는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입장과 비교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에티카의 각 부()정의공리에서 출발하는 것은, 단지 기하학적 형식을 유추해서 쓴 거라기보다는 자기가 참이라고 간주하고 있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음을 인정하는 형식이라고도 하겠습니다.

 

결국 이런 점에서 그는 근대철학이 시작되자마자 거기서 벗어난, 근대철학 최초의 반항자요 근대 최초의 탈근대적철학자였던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TV에도 불성이 있습니까?

백남준은 빈번하게 TV 안에 가부좌를 튼 부처의 상을 집어넣는다. 혹은 이 작품처럼 상품과 상품화된 삶이 끊임없이 배어나오는 화면에 낯선 배경을 가진 부처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TV가 불법(佛法)과 같은 다른 종류의 삶을 가르치는 기계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아니면 반대로 부처마저도 TV 속에 박제가 되어 갇힌 이 험한 세상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어쨌든 이 작품 TV 부처는 조주(趙州) 선사(禪師)의 유명한 화두를 떠올리게 한다.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 스님의 대답, “없다.” 아래로는 개미에서 위로는 부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조주 스님은 왜 개에겐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

약간 장난을 해보자. 어떤 스님이 남준 스님에게 물었다. “TV에도 불성이 있습니까?” 남준 스님의 대답, “있다.” (이런! TV에도 불성이 있다고?) 다시 스님이 물었다. “언제 성불합니까?” 남준 스님의 대답, “하늘이 땅 위에 내려앉을 때 성불한다.” “하늘은 언제 땅 위에 내려앉습니까?” TV가 성불할 때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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