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철학의 근대, 근대의 철학
1. 데카르트 : 근대철학의 출발점
중세의 철학
이제 근대철학의 출발점이라는 주제로 들어가 봅시다. 근대철학에 대해 얘기하려면 가장 먼저 ‘근대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적 근대 전체에 대해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생각해야 할 범위를 철학으로 제한해서 문제를 다시 제기한다면, ‘철학에서 근대란 무엇인가?’ 혹은 ‘철학적 근대란 무엇인가?’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기대에 못 미친다면 미안한 일이지만, 저는 지금 근대에 대한 어떤 심오한 이야기를 하려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에서 출발하고자 합니다.
근대란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중세와의 대비 속에서 중세와 구분선을 그음으로써 정의되는 그런 시기입니다. 이 점에선 철학이나 역사나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근대철학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좋으나 싫으나 중세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합니다.
『신약성서』 중 한 권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장
중세는 신이 창조한 세상이었고 신의 손 안에 있던 시대였습니다. 그것은 신이 창조한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신의 ‘말씀’이 세상을 지배하고 통치하던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신의 말씀을 연구하는 신학이 모든 학문을 지배하던 시기였습니다. 신학이 신의 말씀이라면, 이 ‘말씀’이 곧 신 자신이기도 하다는 성경의 말씀에 따라 성직자가 신을 대신하고 있었던 겁니다. 신의 말씀을 대리하던 성직자가 학문은 물론 대중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존재란 신의 창조물이며, 따라서 당연히 신이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태초에 신의 말씀이 있었는데, 그 ‘말씀’이야말로 다름 아닌 진리였으며, 인식(앎)이란 그 말씀의 계시에 도달하는 것과 동일했습니다. 결국 진리란 신의 말씀을 전하는 성직자가 보장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개개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것 역시 당연히 말씀을 전하는 성직자의 말에 따라야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중세는 봉건영주가 지배하는 시대였다는 말만큼이나 (신과) 성직자들이 지배하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성직자와 봉건영주가 지배계급이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중세의 철학이나 과학은 어떠했는가? 중세의 철학은 신에 대해서 제기되는 의문, 신학에 대해서 제기되는 질문, 그것도 중세신학의 근본을 뒤흔드는 그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신의 작용과 신의 말씀을 이성을 통해 설득하기 위해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철학은, 과학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신학의 시녀’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야 한다’는 엄한 규칙과 규범이 있어도, 언제나 거기서 삐딱하게 벗어나고 저항하며 새로운 사고를 감행하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입니다. 저는 여기서 이탈리아 철학자 브루노에 관해 잠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15세기경에 그려진 인체 해부도
제목이 잘못 붙은 게 분명하다고? 물론 인체 해부도에 위장도 창자도 보이지 않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해부에 대한 근대적 관념에서 벗어난다면, 사람의 신체를 별자리로 해부하여 보는 방법도 해부 방법의 한 가지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염소자리, 황소자리, 쌍둥이자리, 게자리, 사자자리 등의 별자리가 인체를 둘러싼 대우주에 배열되어 있고, 이에 상응하여 게자리, 사자자리, 천칭자리, 전갈자리 등이 인체의 각 부분에 또한 배열되어 있다. 우주와 인체, 우주와 사물 간에 일정한 상응성이 있다고 보는 이런 태도는 서양의 중세뿐 아니라 동양의 중세에서도 쉽사리 발견되는 사유방식이다. 푸코는 이를 ‘유사성’에 의한 사유방식이라고 불렀다. 우주와 신체의 유사성을 대우주와 소우주라는 관념이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사실 지금도 남아 있는데, 가령 호두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거나 물개 거시기나 코뿔소의 뿔을 먹으면 정력이 좋아진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그것이다. 덕분에 애꿎은 코뿔소들이 거의 멸종 위기에 몰리고 있지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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