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버클리 : 유명론에서 관념론으로
로크에 대한 두 가지 비판
버클리는 로크 비판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입론을 세웁니다. 그의 로크 비판은 일단 두 가지로 나누어 얘기할 수 있습니다.
첫째, 실체의 개념에 대한 비판입니다. 로크는 모든 복합관념은 오성(정신)이 결합한 것이고 명목적인 것일 뿐이라고 하면서, ‘실체’에 대해서만은 예외로 한다고 합니다. 즉 물질과 정신이라는 실체는 ‘예외적으로’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겁니다. 버클리는 이런 예외조항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합니다.
둘째, ‘제1성질’에 관한 비판입니다. 로크는 대상의 성질이란 모두 인식주체가 경험한 것이요 주관적이라고 하면서, 오직 제1성질만은 예외로 둡니다. 그러나 버클리는 제1성질만 유독 물질 그 자체에 속하는 객관적 성질이라고 할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그가 보기엔 경험되지 않는 성질이란 알 수 없는 성질이요, 알 수 없는 성질이 있다고 하는 것은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는 말처럼 앞뒤가 안 맞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비판을 통해 버클리가 도달한 곳은 근대철학의 밑바닥입니다. 물질적 실체를 가정하면, 이것이 지식과 일치하는가라는, 확인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이는 근대철학의 딜레마를 다루면서 이미 확인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물질적 실체’, 즉 ‘물질’이란 개념을 없애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버클리는 말합니다. “물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지각된 것뿐이다.” 이제 내 책상은 내가 연구실 문을 닫고 나서는 순간 ‘존재했던 것’(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지각하지 않기 때문에.
버클리가 이토록 과감하게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과학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주교였다는 사실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근대적 문제설정에서 물질을 부정하자마자 과학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 로크로 하여금 ‘예외’들을 만들게 했던 것인데, 버클리는 과학에 대한 미련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런 ‘예외’를 두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문제가 생겨납니다. 예컨대 누군가가 버클리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부인은 지금 안 보이는데(지각되지 않는데), 그럼 존재하지 않는 건가요?” 멀쩡한 마누라를 죽었다고 할 수야 있겠습니까? 생각 끝에 버클리가 말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지각해 주시고 있기 때문에 우리 집사람은 존재하고 있다오.” 정말 주교다운 대답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지각하고 계시다면 네스 호의 괴물도, 무시무시한 공룡도, 아담과 이브가 놀던 파라다이스도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 이름붙일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데아’라는 보편자 역시 하느님이 계신데 존재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주 기묘한 방식으로 유명론은 자신의 반대물(실재론)로 바뀌고 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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