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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철학과 굴뚝청소부, 제2부 유명론과 경험주의: 근대철학의 동요와 위기 - 4. 흄 : 근대철학의 극한, 탈출도, 귀환도 아닌…… 본문

책/철학(哲學)

철학과 굴뚝청소부, 제2부 유명론과 경험주의: 근대철학의 동요와 위기 - 4. 흄 : 근대철학의 극한, 탈출도, 귀환도 아닌……

건방진방랑자 2022. 3. 24.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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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도, 귀환도 아닌……

 

 

흄이 수행한 근대철학의 해체는 분명 근대적 문제설정의 경계 내부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단지 그 안에만 머물러 있었다고 하는 것은 정확한 평가가 아닐 것 같습니다. 때로 그는 그 경계선 밖으로 넘어갑니다.

 

여기서 두드러진 것은 믿음에 대한 흄의 이론입니다. 흄에게 인과관계는 습관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인상이나 관념을 결합시켜 어떤 지식을 형성합니다. 이 지식은 법칙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즉 참된 지식이나 진리 대신에 믿음이란 개념이 들어서는 것입니다.

 

흄은 믿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현재의 인상과 관련이 있는, 혹은 그것들로 결합되어 있으며 그것들로 연합되어 있는 생생한(살아 있는!) 원리라고 말입니다. 믿음은 힘을 가지며 생생하게 살아 있어서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 실제적인 효과를 갖습니다. 또한 그것은 견고하고 확실하고 안정감을 갖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 개개인에게 확실한 지식이라는 감을 주고, 그것에 입각해서 행동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흄에 따르면 믿음은 허구와 다르며, 심지어 허구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믿음과 허구는 어떻게 다른가?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고 합니다. 첫째, “느낌이 다르다.” 둘째, “파악하는 방식이 다르다.”

 

느낌이 다르다는 것은, ‘확실하고 안정감이 있다혹은 옳다라고 느끼는 것은 믿음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은 믿음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두 사람이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을 읽는다고 합시다. 한 사람은 돈키호테 같아서 거기 나오는 얘기를 역사적 사실로 읽었다고 합시다. 다른 한 사람은 단지 소설 속의 얘기로만 읽었고 말입니다. 두 사람은 동일한 순서(책에 나와 있는 순서)로 동일한 관념을 얻게 되지만, 그 얘기를 역사적 사실로 믿는 사람은 이것을 참이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따라서 시사하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을 믿고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소설책(허구)으로 읽은 사람은 이럴 수도 있지라는 식으로 받아들일 겁니다. 이 경우 하나의 소설책이 두 사람에게 서로 상이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상이한 효과를 갖는 것이죠. 여기서 이런 개념이 매우 불충분하고 모호하다는 것을 물고 늘어지진 맙시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믿음의 개념 그것이 갖는 영향력의 문제, 효과의 문제입니다.

 

근대철학에서 믿음을 다루는 전형적인 방식은 그것을 허구, 허위, 비진리로 다루는 것입니다. 데카르트가 그랬듯이, 믿음이란 대상에 대한 참된 인식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입니다. 그것은 넘어서야 할 허구의 세계일 뿐입니다.

 

그러나 믿음에 대한 흄의 견해는 그것을 다루는 극히 새로운 사고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흄은 어떤 지식이 진리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게 아니라 이것은 근대적인 물음이지요 이 지식이 그걸 믿는 사람에게 어떤 효과를 갖는가를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진리의 문제설정을 벗어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흄이 보기에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믿음에 대한 흄의 논의는 참된 지식의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그것에 대한 철저한 해체에 이르러 얻은 새로운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진리)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참으로 믿고 있는 그러한 관념이 존재한다는 거죠. 나아가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라는, 결코 근대적이지 않은 질문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흄은 이제 근대적 한계의 외부로까지 나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고 다시 근대 안으로 회귀합니다. 앞서 그가 난감해 하는 모습도 보았지만, 여기서도 그는 믿음이고 추론이고 다 거부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찾아야 하는데 결국 진리는 없다로 판단되었던 셈이고, 진리를 찾고 싶은데 진리가 아닌 것만 있다는 이야기밖에 못했으니, 이런 논의 자체를 자기는 다 거부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근대의 외부로 나가자마자 다시 내부로 회귀하고 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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