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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굴뚝청소부 - 제3부, 1. 칸트 : 근대철학의 재건 본문

책/철학(哲學)

철학과 굴뚝청소부 - 제3부, 1. 칸트 : 근대철학의 재건

건방진방랑자 2022. 3. 2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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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독일의 고전철학 : 근대철학의 재건과 발전

 

 

1. 칸트 : 근대철학의 재건

 

 

근대철학의 위기와 칸트철학

 

 

앞서 말했듯이 근대철학의 비조라는, 지금까지도 데카르트가 누리고 있는 영광은 신학의 지배 아래 있던 철학, 신의 지배 아래 있던 인간을 신학과 신으로부터 독립시킴으로써 근대적 사고를 가능케 하는 근대적 문제 설정을 기초지우고 방향지웠다는 공적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데카르트로선 자명하고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생각하는 나즉 인식주체가 매우 불확실하며, 진리 역시 극히 취약한 기초를 갖고 있음이 흄으로 인해 드러났습니다. 진리는커녕 인과법칙조차도 있다고 할 수 없으며, 주체가 있는 게 아니라 다만 지각의 묶음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데카르트가 마련한 근대철학의 전제가, 그 출발점과 목표가 붕괴된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근대적 문제설정 자체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음을 뜻한다는 것은 앞서 말했습니다. 칸트가 자기의 철학적 작업을 시작하는 곳은 바로 이 붕괴와 해체의 지점입니다.

 

애시당초 칸트가 발딛고 있던 곳은 이성주의 철학이었습니다. 즉 칸트는 이성이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칸트는 주체 자체가 이성의 자명한 출발점이 아니며, 진리에 이르기에는 지극히 취약한 기초라는 흄의 비판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흄의 비판을 통해 독단주의의 잠에서 깨어났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자명한 것으로 가정된 주체라는 출발점이나,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주체의 능력이 사실은 근거없는 독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칸트는 처음부터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한마디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합니다. 인간 - 이전에는 주체라고 했는데, 칸트는 인간이라고 표현합니다 에 대해,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인간은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라는 세 가지의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첫 번째 질문인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것이 순수이성 비판입니다. 두번째 질문인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인간의 행동ㆍ당위ㆍ도덕 등에 관한 문제인데, 이것을 다루고 있는 게 실천이성 비판이지요. 세번째 질문인 인간은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라는 것은 인간의 목적개념에 대한 질문인데, 이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이 판단력 비판입니다.

 

결국 이 세 가지 질문은 인식-행동-목적이라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활동이 이성에 의해 즉 인간이란 주체 자신에 의해 근거지어질 수 있는 것인가를 다시 묻는 것이었습니다. 칸트는 이렇게 함으로써 주체라는 지반에 새로이 기초공사를 하려고 합니다. 근대적 문제설정에서 보건대, 주체 즉 신에게서 독립한 인간이 진리를 인식할 수 없다면 철학이나 과학은 불가능한 것이었지요.

 

따라서 동요하고 깨져 버린 주체를 어떻게 위기에서 구해낼 것인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참된 지식ㆍ진리를 어떻게 새로이 기초지울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근대철학자 칸트가 보기엔 가장 시급하고 절박한 문제였던 것입니다. 근대적 주체로서의 인간과 진리를 확고하게 재건함으로써 근대적 사고의 기반을 다시 다지고, 근대철학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제 칸트는 주체가 출발점이 될 자격이 있는지, 자격이 있다면 무엇 때문인지, 주체가 참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칸트는 주체를, 이성을 피고로서 법정에 세워보자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피고인 이성이 무엇을 알 수 있는지, 어디까지 알 수 있는지, 나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자고 합니다. 이것이 칸트의 이성비판이라는 계획입니다.

 

이것은 흄이 극한적 형태로 제기했던 문제를 다시 근대적 틀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근대적으로 재배치하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칸트는 근대적 문제설정을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주체가 어떻게 가능한가란 질문을 통해 다른 형태로 전환시키려는 것입니다. 데카르트가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출발점으로 삼았던 것들을, 그게 어째서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연구하려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칸트는 경험, 지각경험, 감각경험 같은 것들을 기초짓는 선험적 기초가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선험적 주체란 무엇일까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확실한 주체를 재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칸트의 이 계획 속에서 주체(인간)는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중심의 자리로 복귀하게 됩니다. 이것이 칸트철학이 누릴 수 있었던 영광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철학사에서 칸트가 차지하는 독보적인 위치는 이처럼 근대철학의 위기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그는 위기에 처한 근대철학을 구해내 튼튼한 기초 위에 재건함으로써 근대적인 사고의 기반을 확고하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진리 개념의 전환과 재건

 

 

그렇다면 이제 칸트가 어떤 식으로 근대철학의 기초를 재건하는지 살펴봅시다.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얘기하는 게 유용할 것 같습니다.

 

첫째는 진리개념의 전환과 재건입니다. 알다시피 흄은 귀납론과 인과법칙을 부정했습니다. 귀납론을 빌려, “이제까지 본 모든 까마귀가 다 까맸다. 따라서 모든 까마귀는 까맣다고 한다 합시다. 그러나 이후에 갈색 까마귀나 회색 까마귀가 안 나온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고, 혹시라도 그런 까마귀가 한 마리라도 발견되는 날이면 앞서 한 말은 거짓이 됩니다. 또 인과관계란 관찰한 사람이 갖는 습관적인 추론이라고 했지요.

 

이렇게 되면 경험적 지식은 어떤 확실한 지식, 참된 지식을 줄 수 없습니다. 즉 진리는 경험을 통해 얻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게 칸트가 받아들인 흄의 비관적인 결론이었지요.

 

또한 칸트는 ‘()물 자체’(Ding an sich)현상을 구별합니다. 반점이 찍힌 거울에는 산소 같은 여자를 비추어도 곰보 같은 여자로 나타납니다. 옆으로 휘어진 거울에는 늘씬한 슈퍼모델을 비추어도 숏다리뚱보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사물을 눈이나 귀 같은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이는데, 이 감각기관이 우리 인식에서 일종의 거울 같은 역할을 하지요. 우리는 이 거울을 통해 사물을 인식합니다. 이 거울에 비친 사물의 모습을 칸트는 현상이라 하고, 거울에 비추기 전의 사물을 사물 자체’(‘물자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감각기관도 마찬가집니다. 그것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기관인지 구부려 비추는 기관인지 우리 자신은 알 수 없습니다. 마치 거울이 자신이 어떤 식으로 비추는지 알지 못하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은 우리 눈에 비친 대로지요. 요컨대 현상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비치지 않은 사물을, 즉 사물 자체를 안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 눈에 비치지 않는 것을 본다는 말처럼 형용모순(어불성설)이라는 겁니다.

 

칸트는 사물 자체를 인식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리를 대상과 일치하는 지식, 사물 자체와 일치하는 지식이라고 한다면 진리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이와 유사한 어려움은 버클리나 흄 또한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근대철학의 목표가 와해되어 버린 것이지요.

 

따라서 칸트는 진리라는 개념을 이렇게 두었다간 진리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진리의 개념을 아예 다른 식으로 정의할 수는 없을까? 이 질문을 통해 칸트는 진리를 재건하려고 합니다.

 

칸트는 이제까지 진리를 대상에서 구하려는 노력은 방금 말한 것처럼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인간의 눈이 사물 자체를 비출 수 없는데, 대체 사물 자체의 법칙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어차피 알 수 없는 게 사물 자체라면, 아무리 날고 뛴들 사물 자체에 대한 지식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지식은 모두 현상에 대한 것이지요. 요컨대 인식대상은 현상이고, 이는 인식하는 주체가 만드는 것이란 겁니다.

 

거칠게 말하면, 원래는 어떤지 모르지만 모든 이의 눈에 곰보 같은 여자로 비친다면 그게 곧 참일 거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 눈에 비친 곰보 같은 여자사물 자체와 일치하냐 아니냐를 두고 고민할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걸 곰보 같은 여자로 판단하게 하는 방식(이를 판단형식이라고 합니다)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진리는 대상에서 찾을 게 아니라 대상을 만드는 우리의 판단형식에서 찾아야 한다는 거지요.

 

이처럼 대상이 인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인식이 대상을 만든다는 생각, 진리는 대상에서가 아니라 주관(주체)의 판단형식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이전의 생각을 크게 뒤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이를 두고 칸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두고 태양을 비롯한 모든 별이 그 주위를 돈다고 생각하다가, 코페르니쿠스에 이르러 우주의 중심은 다른 데(태양)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이 있었던 것인데, 칸트는 자기가 행한 발상의 전환을 여기에다 비유한 것입니다.

 

 

세계를 보는 창

화가는 수평선과 수직선이 나란히 교차하는 격자창을 통해 세상을 본다. 그리고 격자가 그려진 캔버스에 창 밖에 있는 세계를 옮겨 그린다. ‘세계를 보는 창’, 격자가 새겨진 이 창은 마치 수학적인 좌표처럼 기능한다. 우리는 어떤 형상이나 선을 좌표상의 동일한 위치관계를 유지하면서 옮겨 놓으면 동일한 형상이나 선을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크기만이 축소된, 하지만 비례관계는 정확히 유지되는 형상. 이것은 서양 근대 회화에서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정확하게 재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덕분에 예술은 이제 진리를 추구하는 활동이 된다. 그런데 격자가 달린 저 세계를 보는 창, 아니 세계를 보는 격자는 과연 세계에 속한 것일까, 아니면 세계를 보는 인간에 속한 것일까?

, 이 그림에는 잘못된 것(오류)이 포함되어 있다. 무얼까? 바로 격자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그린 화가의 그림이다. 그 풍경은 그림 속 화가의 시점이 아니라, 이 그림을 보는, 혹은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의 눈에 보이는 형상대로 그려졌다. 이걸 보면 격자는 정작 창문에 있는 게 아니라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의 눈 속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

 

 

 칸트철학에 단골로 등장하는 선험적 종합판단이니 아 프리오리’(a priori, 선천적)니 하는 말들이 중요한 건 바로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선험적이란 말은 경험적이란 말과 반대짝입니다. ‘경험적인 것이란 인간이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선험적인 것이란 경험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모든 미인은 예쁘다가 그렇습니다.

 

분석판단은 주어에 이미 술어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든 미인은 예쁘다라는 명제는 분석판단입니다. 왜냐하면 미인이란 주어에 이미 예쁘다라는 술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종합판단은 주어에 술어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미인은 키가 크다는 명제가 그렇습니다. ‘미인이란 주어를 아무리 분석해도 키가 크다는 건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여기서도 보듯이 분석판단은 선험적입니다. ‘미인이란 주어에 이미 예쁘다라는 술어가 포함되어 있으니,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거지요. 따라서 이는 언제나 타당하고 확실합니다. 그러나 대신 우리에게 아무런 지식도 추가해 주지 않지요. 미인은 예쁜 여자다라고 정의해 놓고는 모든 미인은 예쁘다라고 하는 것이니, 대체 뭐 새로운 게 있겠습니까? 이런 걸 흔히 동어반복’(tautology)이라고 하지요.

 

반면 종합판단은 대개 경험적이고 후천적입니다. 미인들을 많이 보지 않고서는 모든 미인은 키가 크다고 할 순 없는 일이니 말입니다.

어에 없는 것을 얘기하려면 대개 경험을 통해야 하지요. 따라서 주어에 없는 지식을 우리에게 추가해 주지요. 대신 언제나 타당하지도, 확실하지도 않습니다. 미인이지만 키가 작은 여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투시법적 공간

위의 그림은 1560년 경에 출판된 투시법에 관한 책에 있는 삽화다. “격자는 화가의 눈에 있는 게 아니라 세계 자체에 속해 있다고 말하려는 것일까? 바닥과 천장, 사면의 벽이 모두 격자로 가득하다. 열린 문이나 창문의 비스듬한 평행선들은 각각 자신의 소실점에 모인다. 사람들은 이 격자로 가득한 공간 안에 있거나 그 안으로 들어온다. 정면에서 손을 번쩍 들고 들어오는 사람의 오른쪽 눈은 방 안의 평행선들이 모이는 소실점에 위치해 있으며, 그래서 격자를 만드는 선이 모이고 있지만, 이를 눈에서 격자를 만드는 선이 나오는 것으로 오해해선 곤란하다. 정면에 있는 인물의 시선에선 아무런 그물도 발사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정면 인물의 눈에 닿는 선은 최소한으로 처리됨으로써 오히려 그는 그물 같은 저 격자의 공간 안에 사로잡혀 있음을, 그가 보는 것은 그 격자화된 공간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아래 그림은 세를리오(Sebastiano Serlio)비극을 위한 무대(Scene for a tragedy). 세를리오는 좀더 세련된 스타일로 이런 격자화된 공간을 객관화한다. 그가 그린 희극을 위한 무대, 비극을 위한 무대에는 투시법에 따라 변형된 격자가 바닥의 바둑판 같은 포장도로, 건물의 벽, 기둥 등에 촘촘하게 새겨져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새로운 지식을 추가해 주면서도 언제나 확실하고 타당한 그런 판단은 없을까? 이게 바로 칸트 고민의 핵심입니다. 선험적 명제처럼 언제나 확실하고, 종합판단처럼 새로운 걸 추가해 주는 판단은 있을 수 없는가? 이걸 칸트는 선험적 종합판단은 가능한가?”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그가 내린 대답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모든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다라는 판단이 그렇습니다. 알다시피 이 명제는 유클리드 기하학에선 언제나 타당하지요. 삼각형을 많이 그려 보고 각을 재 보지 않아도 이 명제는 언제나 타당합니다. 그런데 삼각형이란 주어를 분석한다고 내각의 합이 180라는 결론은 나오지 않습니다. 즉 이 명제는 우리에게 삼각형의 성질에 대해서, ‘삼각형이란 주어에는 없는 내용을 새로이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합판단이지요.

 

분석판단 모든 미인은 예쁘다 선험적
새 내용 추가 없음  
종합판단 모든 미인은 키가 크다 후천적
새 내용 추가 늘 타당하진 않음
선험적 종합판단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이다 선천적
새 내용 추가 늘 타당함

 

 

이같은 선험적 종합판단이야말로 인간을 진리에 도달케 해주는 판단형식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칸트는 진리를 밖에서 찾는 게 아니라, 언제나 올바르면서도 새로운 지식을 추가해 주는 판단형식에서, 선험적 종합판단에서 찾는 겁니다. 이것이 발상의 전환을 통해 칸트가 새로이 얻은, 진리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로써 칸트는 흄에 의해 철저히 해체되었던 진리의 개념을 새로이 재건하게 됩니다.

 

 

브룩 테일러, 레오나르도의 창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의 평면에 정확히 재현하는 방법을 투시법’ (perspective)이라고 부른다. 1425년 피렌체의 브루넬레스키가 대중들 앞에서 그 정확성을 보여주는 실험을 했고, 10년 뒤 초기 르네상스의 천재 알베르티가 유클리드 기하학을 빌려 그것의 과학성을 증명한 뒤, 이 방법은 이후 거의 500년 동안 서양의 시각예술을 지배했다. 알베르티도 여기서 보이듯이 시점과 대상 사이에 화면을 놓고, 대상과 그려진 상의 비례관계가 정확히 일치함을 보여주는 식으로 과학성을 증명했다. 위 그림은 브룩 테일러(Brook Taylor)가 그린 레오나르도의 창(Leonardo‘s Window)이다. 그림에서 화면에 격자는 없지만, 앞서 제시된 세계를 보는 창과 동일한 위상을 갖고 있다. 화면에 그려진 육면체의 형상은 세계를 보는 창과는 달리 우리 눈이 아니라 시선이 발사되는 레오나르도의 눈에 보이는 모습이다. 그런데 테일러는 세를리오와 달리 세계를 보는 창, 그 격자란 이처럼 사물을 보는 인간의 눈 안에 있는 것임을 보여주려는 듯하다. 칸트는 이 격자와 같은 창이 누구의 눈에든 있으며, 누구의 머릿속에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누구든 사물을 본다는 경험을 하려면 먼저 갖추어야 할 형식이라는 점에서 선험적이다. 그리고 위치에 따라 형상은 달라지지만, 그 창의 격자적 형태는 변함없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갖는다. 진리란 사물의 세계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이런 선험적 주관의 형식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칸트의 핵심적 아이디어였다. 이를 칸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불렀다.

 

 

근대적 주체의 재건

 

 

둘째, 근대적 주체의 재건입니다. 근대철학의 확실한 기초요 출발점이었던 주체는 흄의 비판을 통해 지각의 다발’ ‘관념의 다발로 해체되어 버렸습니다. 진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에 더해 이젠 아예 인식하는 주체조차 불가능하다는, 극히 부담스런 결론에서 칸트는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어디든 길은 찾는 자에겐 있게 마련입니다. 칸트는 죽음 직전의 위기에서 근대적 주체를 살려냅니다. 과연 어떻게 살려낼까요?

 

칸트가 보기에 인간의 인식은 경험과 더불어 시작됩니다. 물론 흄이 지적한 것처럼 경험적 인식은 매우 불확실해서 진리가 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경험을 통해 인식한다고 하면 인간으로 하여금 동일한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뭔가가 있을 겁니다. 도대체 그게 뭘까요?

 

약간 어려우니 돌아갑시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사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선 누구나 물건을 갖고 싶으면 살 수 있습니다. 경험이 다양하듯이 우리가 살 수 있는 물건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물건을 사는 사람이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게 있습니다. 한마디로,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건 누가 무엇을 사든 꼭 필요한 겁니다. 경험도 그렇습니다. 눈이 없으면 보지 못하고, 귀가 없으면 듣지 못하듯이 _이 없으면 경험이 불가능한 게 있습니다. _에 무엇이 들어가야 할까요? 이게 칸트가 낸 문제입니다. 데카르트라면 이 문제에 쉽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건 주체라고, 주체가 없으면 어떤 경험도 불가능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흄 말대로 이 주체란 여러 가지 관념과 감각 등으로 이루어진 복합체입니다. 여기에는 항구적이고 항상적인 게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칸트는 다르게 대답합니다.

 

그것은 경험보다 먼저 존재해야 합니다. 물건이야 외상으로 사고 돈은 나중에 갚을 수도 있지만, 경험이나 인식에는 외상이 안 통하기 때문이죠. 경험을 가능케 하는 조건은 경험보다 먼저 있어야죠. 이런 걸 칸트는 선험적(先驗的) 조건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앞서 본 것처럼 이것은 경험에 좌우되지 않는 확실성을 가져야 합니다. 다음으로 그건 모든 인간들이 반드시 가져야 하며, 동일한 형태(형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달러냐 마르크냐 하는 구별 이전에 이라는 공통된 형식을 말입니다.

 

, 또 하나. 우리가 어떻게 인식에 이르는지 칸트를 따라가 봅시다. 언덕배기에 못 미쳐 돈키호테와 그의 종 산초가 있습니다. 그런데 언덕배기에 있는 물체를 바라보며 돈키호테가 외칩니다. “저기 팔이 넷 달린 거인이 있다!” 그러자 그 옆에서 산초가 말합니다. “주인님, 저건 거인이 아니라 풍차인데요.”

 

두 사람의 판단은 이처럼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칸트 용어로 말하면 현상은 이처럼 다르게 경험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키호테나 산초나 인식을 하려면 일단 감각기관을 통해 언덕배기의 물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커다란 몸집에 팔 네 개가 돌아가는 물체를 말입니다. 이처럼 대상(물체)을 받아들이는 기관을 칸트는 감성’(Sinnlichkeit)이라고 합니다. 어떤 인식도 감성을 통해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하지요.

 

그런데 우리가 대상을 받아들이는 데는 반드시 필요한 게 있다고 합니다. 풍차든 거인이든 있다는 건 반드시 어딘가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요컨대 거인이 있는지 없는지, 그게 거인인지 풍차인지를 공간 안에서 감지하는 거지요. 공간이라는 형식이 없다면, 저게 무언지를 떠나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지요. 또한 공간은 보거나 듣는 게 아니며, 따라서 경험되는 게 아닙니다. 반면 공간이란 보거나 듣거나 느끼는 경험이 가능하려면 꼭 있어야 하며, 경험보다 먼저 있어야 합니다. 이래서 칸트는 공간이란, 감성을 통해 대상을 받아들이는 데 필수적이며 모든 인간이 경험보다 앞서 가지고 있는 형식이라고 합니다. 이걸 칸트식의 말로 표현하면 선험적 감성형식이라고 하지요.

 

시간도 마찬가집니다. 거인이나 풍차가 있다’ ‘없다는 건 어느 시점에 있다, 없다지요. 즉 시간이 없다면 있다 없다를 지각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것 역시 경험보다 선행하며, 경험을 가능케 해주는 감성의 형식이지요. 이래서 칸트는 시간과 공간은 경험에 선행하며, 모든 인간의 인식에 필수적인, 그리고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감성수준에서, 앞의_에 들어갈 말이 바로 시간과 공간이라는 선험적 감성형식이지요.

 

이렇듯 감성을 통해 물체를 받아들인 다음에는 그것이 하나인지 둘인지, 큰 건지 작은 건지, 또 언제나 팔이 돌고 있는 건지 아니면 우연히 돌게 된 건지 판단하게 됩니다. 바람이 불어서 팔이 도는 건지, 아니면 팔을 돌려서 바람을 일으키는 건지도 판단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물체를 죽이는 게 가능한 건지 불가능한 건지도 판단합니다. 이처럼 받아들인 물체를 분별해내고 그 물체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을 하는 기관을 칸트는 지성’(Verstand)이라고 합니다.

 

딸기가 수박보다 작다는 판단이 가능하려면 크다’ ‘작다라는 범주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나무를 비비면 불이 난다는 판단이 가능하려면 그런 경우를 많이 경험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합니다. ‘나무를 비빈다는 경험과 불이 난다는 경험을 결합해서 나무를 비비면 불이 난다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려면 두 현상(경험)의 관계가 필연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필연성/우연성이란 범주가 바로 이 경우에 필요합니다.

 

 

 

 

 지성이란 분별하는 능력(분별력)입니다. 크다, 작다, 하나다, 다수다, 필연적이다, 우연적이다 등의 범주를 통해 대상의 성질을 구별해내고 그것들을 결합해서 나무를 비비면 불이 난다는 판단을 만들어내는 능력인 거죠. 그런데 이런 능력이 활동할 수 있으려면, 그래서 경험에서 어떤 판단을 이끌어낼 수 있으려면 최소한 범주가 있어야 한다는 게 칸트의 생각입니다. 이 범주가 없다면 사물을 비교하는 것도, 사물들의 연관(필연적이다. 우연적이다 등등)을 찾아내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따라서 범주는 경험보다 먼저 있어야 하며, 경험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 경험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판단하는 데 필수적인 최소한의 범주를 칸트는 12개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범주로 인해 인간은 법칙을 인식하고 사물들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언제나 있는 것이며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공통되기 때문에 인간은 공통된 판단 혹은 공통된 인식에 도달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래서 칸트는 범주를 선험적인 지성형식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지성의 수준에서는 범주야말로 _에 들어갈 말인 셈입니다.

 

감성만으론 느낄 순 있어도 판단할 순 없습니다. 지성만으론 인식할 자료가 없기 때문에, 느끼지도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이래서 칸트는 지성 없는 감성은 맹목적이고, 감성 없는 지성은 공허하다고 말합니다. 즉 감성과 지성이 결합해야 인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인식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감성을 통해 시작한 인식은 지성을 통해 이성에 다다릅니다. 이때 이성은 인간의 이성이란 말이나 이성주의라는 말과는 달리, ‘하나의 원리로 통일시키는 능력이란 뜻을 갖습니다. 이는 칸트만의 고유한 개념입니다.

 

이성은 경험을 넘어서, 하나의 원리로 다양한 경험들을 통일시켜 파악하려는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근본적인 데까지 밀고나가는 성질을 갖고 있는 겁니다. 예컨대 인간은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려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나를 낳았다는 것만으론 결코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누가 낳았고, 그들은 또 누가 낳았고……, 결국 근본적으로 모든 인간을 낳은 궁극적인 원인에 가 닿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생명의 신비함과 소중함을 깨달은 사람은 나무나 돌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에 생명이 있다는 식으로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을 확대하고, 그것을 통해 모든 것을 통일적으로 파악하려고 합니다. 이게 바로 이성이 하는 일이지요. 그리고 이런 이성의 형식을 이념이라고 합니다. ‘세계’ ‘자아’ ‘이 바로 그것이지요.

 

그런데 언제나 끝을 찾아나서다 보면 사고가 나게 마련입니다. ‘이성역시 그렇습니다. ‘원인이든 생명이든, 하나의 원리로 모든 걸 통일시키려다 보니 당연히 경험하지 못한 데까지 나아갑니다. 경험하지 못한 것을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려다 보니 서로 상충되는 주장이 나타나며, 양쪽 다 옳다고 증명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예를 들면 시간과 공간은 끝이 있다끝이 없다는 두 개의 주장이 다 증명될 수 있습니다. 어디선가 시작한 시점이 없다면 시간을 말하고 시간을 재는 게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따라서 시간에는 시작하는 점()이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어디엔가 시간이 시작하는 점이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시점 이전에는 시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시간 이전에 시간과 다른 어떤 것이 시간 대신 있었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따라서 그 시점이전에도 시간은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시간은 끝이 없다고 하는 것도 옳은 것으로 증명됩니다.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주장이 둘 다 옳다고 증명되는 경우를 칸트는 이율배반이라고 합니다. 그는 순수이성 비판에서 이율배반의 예를 여러 개 드는데, 예컨대 물질의 더 쪼갤 수 없는 작은 단위는 있다/없다 등이 그것입니다. 이처럼 이성이 이율배반에 빠지는 것은 이성이 경험을 넘어서 하나의 원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이는 인간 이성(넓은 의미)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어떤 경험이나 인식도 피해갈 수 없으며, 또한 확실하고 선험적이라는 미덕을 갖고 있는 것들을 찾아낸 셈입니다. 선험적 감성과 선험적 지성이 그것인데, 이런 능력을 합해서 선험적 주체라고 부릅니다. 이는 관념이나 감각의 다발에 불과한 경험적 주체와 달리 모든 주체에 공통되며, 경험이나 감각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좌우하며, 확실하고 항구적이라는 특징을 갖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어쩌면 경험적인 개인을 넘어서 있다는 뜻에서 객관적 주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로써 칸트는 흄에 의해 해체되어 버린 근대적 주체를 선험적 주체라는 확고하고 튼튼한 것으로 되살려낸 것입니다.

 

 

 

 

근대적 윤리학 확립

 

 

셋째, 근대적 윤리학(도덕철학)의 확립입니다. 칸트가 윤리학 혹은 도덕철학의 문제를 다룬 책은 알다시피 실천이성 비판입니다. 인간의 의지와 행동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이 책에서, 칸트가 던지는 도덕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인간의 의지(및 행동)는 이성의 힘만으로 규제될 수 있는가?” 바꿔 말하면 인간의 의지와 행동을 규제하는 원리가 인간의 이성 안에 있을 수 있는가, 모든 인간이 따라야 할 보편적인 원리가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앞서 보았듯이 이는 근대적 윤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인간의 이성이 신에게서 독립해 존재하고, 인식하며, 행동할 수 있는가가 근대철학의 독립을 확보하기 위한 질문이었으니 말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의지를 규제할 보편적인 원리가 이성의 내부에 있다는 것은 인간 이성의 실천적 자율성이 원리적으로 확보될 수 있음을 뜻하는 셈입니다. 이는 어쩌면 이성이 확보할 수 있는 최종적자율성인지도 모릅니다.

 

이를 위해 칸트는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보편타당한 윤리원칙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는 여기서 유명한 말을 하지요. “너는 언제나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인 입법원리로서 타당하게 행동하라라고 말입니다. 즉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하는 너의 의지가 법으로 제정되어도 좋을 만큼 보편적인 거라면 그것대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는 법적인 보편적 형식을 취한 규칙을 선악의 잣대로 삼으라는 말이고, 실질적으로는 법에 정한 바를 선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선과 법에 관한 통념과 매우 다른 관념을 발견하게 됩니다. 통상 법은 그것이 선한 것이기 때문에 보편성을 갖고, 그래서 법이 되었다고 우리는 생각하지요. 즉 선이야말로 법의 기초요 근거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칸트가 보기엔 그런 선은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갖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칸트는 계율을 통해 선을 정의하는 유대적 기독교적 전통으로 돌아갑니다. 계율을 지키는 것이 선이듯이, 법으로 정한 것을 지키는 것이 선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선이 법의 기초인 게 아니라, 반대로 법이 선의 기초라는 겁니다.

 

이런 원칙에 서서, 칸트는 자유의 개념을 새로이 정의합니다. 칸트에 의하면 의지의 자유, 행동의 자유란 다음과 같은 원칙에 따르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해야 하기 때문에.” 즉 보편적인 도덕원칙이란, 본질적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정입니다. 칸트는 거기에 따라 사는 것만이 선이며, 올바른 윤리적 삶이고, 인간으로서 자신의 자율성과 자존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따라서 자유란 해야 한다는 원칙, 의무에 따라 사는 것과 동일한 뜻을 갖습니다.

 

이런 점에서 칸트의 윤리학은 극도로 계몽주의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인간 개개인이 갖는 욕망이나 의지는 보편적인 입법원리가 될 수 있는 한에서만 받아들여지고,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자율성과 자존을 위해 억제되고 통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입법원리에서 어긋나는 의지나 욕망, 법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인간의 자율성을 포기한, 한마디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 되는 셈입니다. 따라서 그런 원리에 따르도록 훈련되지 못한 대중은 일깨워지고 계몽되어서, 이 도덕적 원리에 따라 살도록 새로이 갱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계몽주의 시기 도덕철학은 이런 실질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던 셈입니다.

 

보다시피 칸트의 도덕철학에서 두드러진 것은 적인 개념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보편적인 도덕원칙도 입법원리로 정의되었고, 자유나 선 역시 도덕법칙에 의해 정의되었습니다. 이는 공화주의자로서 프랑스혁명에 고무되었던 칸트로선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혈연, 무력, 종교가 지배하던 중세와 달리 법을 통해 지배를 확립하려 했던 부르주아지의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은 어떻게 되는가? 칸트는 순수이성 비판에서 신을 증명하려는 모든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고, 진리를 추구하는 순수이성의 영역에서 신은 증명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로써 데카르트도 쫓아내지 못했던 신을 이론적인 이성의 영역에서 쫓아냅니다.

 

실천적인 이성의 영역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원리를 보편적인 도덕원칙이 차지함으로써 신이 개념적으로 들어설 자리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을 보편적 가치에 따라 행동하게 하는 데 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도덕철학적인 필요에 의해 실천이성이 신의 존재를 요청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도덕행위란 신에 대한 실천적 긍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의 존재가 실천이성의 요청에 의한 것이란 점입니다. 이성의 필요에 의해 신의 존재가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이성이란 신의 피조물이요 그것을 인식하는 수단이었던 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전환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과감하게 말하자면 신이 이제는 이성의 필요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신이 이제는 이성에 의해 포섭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종교 자체가 근대적인 윤리학을 위해 복무하는 도덕철학이 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칸트는 근대적 윤리학의 확립자요 완성자임에 틀림없으며, 칸트철학은 근대철학의 승리를 선언하는 것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세 개의 세계지도

그런데 격자는 모두 저렇게 평행한 직선들이 직각으로 교차하는 것만 있을까? 칸트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직 유클리드 기하학만이 유일한 기하학이던 시대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면 다른 종류의 공간을 구성하는 다른 기하학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사는 지구 자체로 인해 현실성을 가질 수 있었다. 예컨대 지구의 표면은 구(). 그래서 경선은 모두 평행하지만, 그 평행선은 모두 구면을 따라 휘어져서 남극과 북극에서 만나면서, 사각형이 아니라 거대한 삼각형을 이룬다. 삼각형 내각의 합은 유클리드 기하학에선 180도지만, 여기선 180도보다 항상 크고 가지각색이다. 따라서 지구 위에 격자를 만들 경우, 그 격자를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떨치는가에 따라 지구는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 두 개의 지도 가운데 위의 것은 직교하는 격자에 따라 그려진 지도인데, 양극으로 가까이 감에 따라 길이와 면적이 커진다. 그린랜드 섬이 유럽대륙과 맞먹을 정도로 커 보이는 것은 그래서다. 반면 아래 지도는 형태나 크기를 정확히 그리기 위해 격자를 구 위에 그려진 것처럼 구부렸다. 하지만 그걸 평면에 옮기다 보니 지구가 갈래갈래 찢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처럼 유일한 보편적인 격자가 사라진 시대에, 칸트가 꿈꾸었던 보편적 진리는 과연 가능한 것일까? 가능하다면 어떻게?

 

칸트철학의 영광

 

 

칸트는 흄에 의해 전면화된 근대철학의 위기속에서 작업했습니다. 그는 위기 속에서 붕괴된 근대철학의 지반을 새로이 복구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근대적 문제설정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기둥으로서 진리주체를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한 칸트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진리의 주관화입니다. 즉 진리를 외부의 사물이나 대상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주체 자체의 내부에서 찾자는 것이지요. 둘째는 주체(주관)의 객관화입니다. 모든 주체가 선험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경험이나 인식의 기초가 되는 필수적인 형식을 주체 내부에서 찾아냄으로써 그것이 모든 주체들에게 공통된 것임을, 따라서 객관적인 것임을 보여주려고 하였습니다.

 

이 두 과정의 복합으로 인해 진리는 주관화되면서 동시에 주관적인데 머물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선 주관과 객관, 주체와 대상의 통일을 이루기 위한 칸트적 길이었던 셈입니다. 어쨌거나 칸트는 이런 방식으로 주체와 진리를 되살려내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이로써 근대철학의 위기를 극복하고, 근대철학을 확고한 지반 위에서 새로이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칸트철학이 향유했던 그 영광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두 개의 상이한 선험적 주관

그럼 격자가 지구 표면에 있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의 눈 안에, ‘선험적 주관의 눈 안에 있다고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불행하게도 카메라의 발전은 이번에도 칸트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렌즈를 어떤 것을 쓰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른 상들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유클리드식의 격자로 세상을 보았던 투시법은 세상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방법일까? 그것은 우리의 시지각에 대한 과학적 이론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혹시 사람들 눈이 저 렌즈들처럼 수정체의 두께나 굴절도 등에 따라 제각각이라면? 아니, 게다가 수정체를 통과한 상이 맺히는 것은 망막인데, 눈알이 둥그니 망막 역시 분명히 둥글게 구부러져 있을 게 아닌가? 더구나 우리는 두 개의 눈으로 보는데, 투시법은 브룩 테일러, 레오나르도의 창이 잘 보여주듯이 애꾸눈의 시각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그늘

 

 

진리에 관한 문제

 

이로써 칸트철학은 근대적 문제설정의 딜레마를 해소하고 위기의 요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한 듯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뿌리깊은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해결은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생성시키거나 전이시킵니다. 칸트철학 자체 내에는 이미 새로운 위기의 요소들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앞서처럼 세 가지 차원에서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진리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는 진리를 주관화하는 전략과 관련된 것입니다. 칸트는 현상이란 우리가 지각하고 인식한 것이고, 따라서 주관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하지요. 대신 주관 밖에는 사물 자체를 남겨두고 말입니다. 사물 자체는 알 수 없는 것으로 남겨두고 우리의 인식을, 진리를 단지 현상에 관련된 것으로 제한합니다.

 

그럼 우리가 인식하는 현상사물 자체는 어떤 관계를 갖는가? 물론 칸트는 그건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이게 바로 근대철학의 딜레마지요!). 따라서 현상에 대한 지식은 사물 자체와 어떤 연관을 갖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진리란 오직 주관의 형식으로만 정의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리라고 간주하는 지식(예컨대 선험적 종합판단)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것은 경험하기 이전부터 누구든 오인하는선험적 허위, 선험적 허구일 가능성은 없는가?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선험적 허위라면 그것이 진리로 간주되어도 좋은가? 그건 마치 고대에는 모든 사람이 해가 도는 것을 옳다고 생각했으니 천동설이 진리라고 말하는 것과 유사하지 않은가?

 

이 문제에 적절한 예를 우리는 앞서 칸트의 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은 180도라는 명제가 그렇습니다. 이건 칸트에 따르면 선험적 종합판단입니다. 즉 선험적으로 타당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지구 위에서 그려지는 어떤 삼각형도 세 내각의 합은 180도보다 큽니다. 지구의를 생각해 봅시다. 여기 적도와 두 개의 경선으로 이루어진 삼각형이 있습니다. 적도와 경도는 직각으로 만나지요? 그렇다면 삼각형의 내각 A의 합은 180(90+90)보다 북극에서 만나는 각만큼 큽니다. 따라서 칸트가 선험적 진리라고 생각했던 명제가 사실은 지구 위에선 맞지 않는 거짓인 것입니다!

 

예전에는 주체와 대상 간에 일치를 확인할 수 없다는 문제로 인해 진리의 개념이 딜레마에 빠지고 위기에 처했다면, 이제는 사물 자체와 현상, 사물 자체와 선험적 주체 간에서 또 다시 딜레마에 빠지고 위기에 처하는 것입니다.

 

 

 

 

선험적 주체 문제

 

둘째, 선험적 주체에 관한 문제입니다. 흔히 지적되는 순수이성의 추상성이나 비역사성은 일단 그냥 넘어갑시다(이는 피히테나 헤겔, 뒤에는 딜타이 등에 의해 집중적으로 지적됩니다). 근본적인 난점은 선험적 형식자체에 있습니다.

 

먼저, 지성의 선험적 형식인 범주를 봅시다. 칸트의 12개 범주는 사실 아리스토텔레스10개 범주를 약간 변형시킨 것인데, 여기서도 볼 수 있듯이 선험적 형식인 범주는 철학자마다 다르게 설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범주가 모든 판단의 전제가 되는 선험적 형식인가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범주 이전에 범주를 나누는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하며, 그게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는 다르게 설정된 것이라고 해야겠지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표   칸트의 범주표
실체   단일성 ]
  다수성
성질
  전체성
분량
  실재성 ]성질
관계
  부정성
장소
  제한성
  실체/속성 ]관계
시간
  원인/결과
위치
  상호작용
양상
  가능/불가능 ]양상
능동
  현존/부재
수동
  필연성/우연성

 

 

다음으로 선험적 감성형식인 시간과 공간입니다. 사실 칸트가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건 뉴턴의 물리학 덕분이었습니다. 칸트의 철학은 뉴턴의 물리학에 기초하고 있었고, 그걸 통해 (물리학을 포함한) 과학의 기초를 확고히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전에 데카르트갈릴레이에 기초해서, 그것을 확고히 하려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뉴턴 물리학에서 시간과 공간은 절대시간이요 절대 공간입니다. 마치 다양한 물체의 길이를 재는 자의 눈금처럼 그 자체는 불변적이고 절대적이며, 다른 것의 변화를 재는 기준이 바로 시간과 공간입니다. 그것은 경험에 의해 달라지거나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이런 이론은 20세기 들어와서는 유지되지 못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으로 그것을 해체한 장본인인데, 그에 따르면 빛의 속도에 가까울 정도로 빨리 운동하는 비행체 안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갑니다. 그래서 그런 우주선을 타고 오랫동안 여행한 비행사는 지구에 사는 그의 아들보다 젊은 모습으로 우주선에서 내릴 수도 있다는 겁니다. 시간이란 이처럼 조건에 따라 다르게 경험되는(!)’것입니다. 공간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균질적으로 텅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구부러져 있다고 합니다. 즉 중력장에 의해 다르게 만들어지고 경험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시간과 공간을 선험적 형식이라고 하기는 불가능해집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칸트 사후 100여 년이 필요했지만 말입니다. 어쨌거나 근대적 주체에 기초한 칸트의 선험적 주체 역시 또 다른 위기의 요소를 이미 자체 안에 포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의 분리 문제

 

셋째,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의 분리 문제입니다. 칸트에게 실천적인 판단을 하는 이성은 이론적인 판단을 하는 이성과 전혀 별개의 것입니다. 심지어 이론적인 이성의 영역에선 신을 쫓아내도, 실천이성의 영역에선 필요에 의해 다시 불러들이기도 할 만큼 따로 놉니다. 여기서 순수이성은 선험적 형식이라는 이유로, 진리를 기초지우는 확실한 근거로서 정당화됩니다. 그러나 실천이성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보편입법의 원리라는 도덕철학은 무엇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여기서 다시 진리를 끌어들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실천이성은 순수이성과 전혀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이고, 칸트에게 행동이나 의지는 진리와 전혀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보편적 윤리학의 근거는 무엇인가? 실천이성 자신이 스스로를 근거지웁니다. 바로 여기서 칸트의 비판철학은 독단론으로 전환됩니다. 개인들의 의지와 욕망을 오직 보편적 입법원리에 끼워맞추려는 독단론이, 자유를 해야 할 것(의무)에 따르는 것으로 정의하는 독단론이, 그리고 선()(자신이 설정한) 도덕 법칙에 의해 정의하는 독단론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들로네의 예펠탑

사태는 점입가경, 혹은 갈수록 태산이었다. 여러 가지 격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으로 인해 선험적 주관의 격자로 진리의 기초를 삼으려던 칸트의 구상이 깨진 데 이어, 이제는 하나의 시점에서 여러 개의 격자를 뒤섞고 병렬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위의 그림은 피카소(Pablo Picasso)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이다. 1906아비뇽의 처녀들이란 그림에서 투시법을 완전히 깨버리고,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본 얼굴을 뒤섞어 아가씨의 얼굴을 그리고, 등짝 위에 앞 얼굴이 달린 몸뚱이를 그렸다. 이른바 입체파가 그 해에 탄생한다.

아래의 그림은 들로네(Robert Delaunay)에펠탑(La Tour d'Eiffel)이다. 이 그림에서 들로네 역시 여러 각도에서 본 에펠탑의 모습을 하나의 시점에서 본 것처럼 섞어서 그렸다. 이럼으로써 투시법은 시각예술에 대한 지배를 포기해야 했고, 투시법이란 코드에서 벗어난 붓은 새로운 형상, 새로운 이미지를 다양한 방향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재현이라는 오래된 강박증에서도 벗어났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예술에서 진리를 찾으려는 시도가 쉽게 사라지진 않았다. 아직도 주위에서 그런 간절한 노력의 잔영을 발견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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