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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도마복음한글역주, 제45장 - 포도는 가시나무에서 수확되지 않는다 본문

고전/성경

도마복음한글역주, 제45장 - 포도는 가시나무에서 수확되지 않는다

건방진방랑자 2023. 3. 2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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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포도는 가시나무에서 수확되지 않는다

 

 

45

1예수께서 가라사대, “포도는 가시나무에서 수확되지 않고, 무화과는 엉겅퀴에서 수확되지 않나니, 이것들은 열매를 맺지 않음이라. 2선한 사람은 창고로부터 선한 것을 내온다. 3나쁜 사람은 가슴속에 있는 나쁜 창고로부터 나쁜 것들을 내오고 또 나쁜 것들을 말한다. 4왜냐하면 나쁜 사람은 가슴에 쌓여 넘치는 것으로부터 나쁜 것들을 내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Jesus said, “Grapes are not harvested from thorns, nor are figs gathered from thistles, for they do not produce fruit. 2A good man brings forth good from his storehouse; 3an evil man brings forth evil things from his evil storehouse, which is in his heart, and says evil things. 4For out of the abundance of the heart he brings forth evil things.”

 

 

본 로기온을 살펴보면 1(a)은 포도가 가시나무에서, 무화과가 엉겅퀴에서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선·악의 개념이 들어가 있지 않은 인과를 말하고 있다. 싯달타의 연기설(parṭiccasamuppāda)도 본래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雜阿含經卷第十五, 369, 大正2~101).

 

그리고 2·3·4(b)은 선인(善因)에서 선과(善果)가 나오고, 악인(惡因)에서 악과(惡果)가 나온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강력한 윤리적 판단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ab가 단절적인 관계는 아니다. 연기론적 사유는 항상 윤리적 가치판단과 밀착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 로기온에 있어서 ab가 연접되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본 로기온은 큐복음서에 들어가 있다(Q21). 그런데 마태자료는 ab를 나누어 다른 맥락에서 활용하였다.

 

 

(마태 7:16~18) 16그들의 열매로 그들(거짓 선지자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태 12:33~35) 33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그 나무를 아느니라. 34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한데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겠느냐? 이는 가슴에 쌓여 넘치는 것으로부터 입은 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5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이에 비하면 누가는 큐복음서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데, 이것은 ab가 연접된 것으로 도마복음 원자료의 형태를 계승한 것이다.

 

 

(6:43~45) 43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낼 수 없고, 또한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인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가슴에 쌓여 넘치는 것으로부터 그의 입이 말하기 때문이니라.

 

 

도마의 원의는 가슴속에 있는 창고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의 내면에 축적되는 것과 그 외면으로 표출되는 것과의 인과적 필연성을 말하고 있다. 도마의 강조는 어디까지나 추구하는 도반들(seekers)의 내면적 축적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외면으로 표출되는 악한 행동과 모독적 언사는 앞 장에서 말하는 성령에 대한 모독과 일맥상통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예수의 도반들은 선업이 내면에 쌓여 저절로 선행(善行)과 선언(善言)이 흘러넘치는 선인(善人)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율법(토라의 세계)’믿음(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대비는 이러한 내면적 축적이나 공로를 의미없게 만든다. 믿음은 쌓여 흘러넘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전적인 삶의 전향이며 하나님의 의(the righteousness of God)의 구현이다. 이러한 바울의 사상이 ()’적인 세계를 말하고 있다면, 여기 예수의 사상은 ()’적인 축적을 말하고 있다. 도마의 예수에게는 바울과 같은 종말론적 전제(eschatological premises)가 없기 때문이다.

 

 

아타나시우스와 동시대의 성자인 메나가 순교당한 후 묻힌 자리에 세워진 콥틱교도 최대순례지 아부메나 성지. 한때는 치유능력이 탁월해서 예루살렘 성지보다도 더 많은 기독교도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들었다. 밀밭 위로 아련히 보이는 모습이 아름답다. 알렉산드리아 근교. [사진=임진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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