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도마복음한글역주, 제46장 - 어린이가 세례요한보다 더 위대하다 본문

고전/성경

도마복음한글역주, 제46장 - 어린이가 세례요한보다 더 위대하다

건방진방랑자 2023. 3. 23. 09:32
728x90
반응형

 46

 

 

어린이가 세례요한보다 더 위대하다

 

 

46

1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담으로부터 세례요한에 이르기까지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세례요한보다 더 위대한 이는 없도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의 눈길은 돌려져서는 아니 된다. 2그러나 이미 나는 말했노라, 너희 중에서 누구든지 아기가 되는 자는 나라를 알 것이요, 요한보다 더 위대하게 되리라.”

1Jesus said, “From Adam to John the Baptist, among those born of women, there is no one greater than John the Baptist, so that his eyes should not be averted. 2But I have said that whoever among you becomes a child will know the kingdom and will become greater than John.”

 

 

이 로기온도 큐복음서와 병행한다(Q24).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세례 요한보다 더 위대한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더 위대하니라.

 

(7: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요한보다 더 위대한 이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더 위대하니라.

 

 

마태와 도마는 요한을 칭할 때 세례요한이라 했고, 누가는 그냥 요한이라 했다. 그리고 도마의 아담으로부터 세례요한에 이르기까지가 마가, 누가에는 다 빠져있다. 그리고 도마는 그냥 나라라고만 했는데 마태는 하늘나라(the kingdom of heaven)’라고 했고, 누가는 하나님나라(the kingdom of God)’라고 했다. 도마의 현실적 개념이 종말론화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도마의 아기가 마태ㆍ누가에서는 극히 작은 자로 되어있다. 도마의 아기사상이 공관복음서 저자들에게는 근원적으로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첫 구절인 아담으로부터 세례요한에 이르기까지라는 표현은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고 있는 아담과 그리스도라는 대비개념을 상기시킨다(5, 고전 15). 그러나 물론 바울식의 대비적 개념이 예수에게 자의식으로 내장되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단지 초기 예수운동가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시대를 가르는 에포크의 개념이 상투적으로 있었다는 것을 추론해볼 수도 있다. 보통 주석가들은 영지주의 문헌에 나타나는 아담 개념이 모두 바울의 논리의 영향권 아래서 성립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지만 사실 그것은 역방향일 수도 있다. 도마복음은 영지주의 문헌이 아니다. 그리고 도마복음은 바울에게 영향을 준 당대의 다양한 개념들을 예시하고 있다고 간주되는 것이다.

 

45이 선인과 악인의 인간론적 하이어라키를 말하고 있다면 여기 46장의 논의는 구시대적 인간과 새시대적 인간의 하이어라키를 말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아담으로부터 세례요한에 이르는 시대는 구시대로서 여자가 낳은 평범한 인간들의 시대이다. 이 시대는 세례요한에 이르러 극점에 달했다. 그러니까 여자가 낳은 사람 중에서 세례요한보다 더 위대한 이는 있을 수 없다.

 

예수가 과연 세례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복음서 내러티브 창작자들의 소관이므로 그 사실여부를 확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예수는 세례요한의 세례운동으로부터 엄청난 인생의 모티브를 발견한 사람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세례요한은 예수의 선배였고, 선각자였고, 스승이었고, 예수운동에 선행하는 세례운동의 주창자였다. 그리고 예수는 세례요한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운동과 예수의 나라운동은 본질적인 갭이 있었다. 그것을 복음서 저자들은 물의 세례불의 세례로 대비시켰다.

 

그러나 여기 도마의 예수는 그러한 대비를 허용하지 않는다. 단지 세례요한의 위대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 한계를 그을 뿐이다. ‘눈길을 돌리다라는 표현은 더 큰 권위자 앞에서 겸손하게 눈길을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눈길을 깐다는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세례요한의 눈길은 돌려져서는 아니 된다는 것은 세례요한이야말로 그 어떤 권위에도 굴복할 필요가 없는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위대성은 아담의 시대에 속한다.

 

여기 도마는, 바울처럼 죽음과 부활의 상징체인 그리스도의 개념을 삽입하여 아담의 시대와 그리스도의 시대의 논의를 진행시키지 않는다. 암암리 공관복음서 기자들은 이미 바울적 논리의 영향을 받아 하늘나라를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마는 단지 아기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나라새로운 질서는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 예수를 가리킴, 고전 15:45)이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아기와 같은 상태일 뿐이다. ‘아기란 이미 22에서 말했듯이 모든 분별이 사라진 원초적 융합의 상태, ·여의 구분조차 있을 수 없는 아담 이전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처럼 종말의 천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반대로 원초의 혼융된 나라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기된 자는 요한보다 더 위대하다! 노자가 말하는 영아(嬰兒)’, 그리고 혼돈(混沌)’으로 복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아버지의 나라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재의 알렉산드리아 거리. 도시의 역사적 하중이 그래도 느껴지는 분위기다.

 

 

인용

목차

본문

성경

주제상관도표

기독교성서의 이해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