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침묵을 실천하려는 그대에게
묵재기(默齋記)
송병순(宋秉珣)
薛文淸嘗謂: “萬言萬當, 不如一黙.” 余竊疑之. 蓋人之語默, 當言則言, 當黙則黙, 方有儀則. 而當黙而言, 當言而黙, 則固不可耳. 然抛郤其當不當, 而一主乎黙, 則不幾於釋氏之寂滅乎! 彼無聲無臭者, 天也, 而雷聲未嘗不自幽黙中發, 則亦非一於黙也.
夫人之於天, 合其德同其則者, 惟聖人能然. 故朱子「感興」詩云: ‘玄天幽且黙, 仲尼欲無言.’ 觀此, 亦可見聖人之語黙有時也.
大嶺之南, 李君希彦顔其齋曰黙, 要余識之. 希彦乎! 子欲學仲尼者歟? 抑效文淸者歟? 余欲叩其志. 噫! 近日邪說蠭起, 人心流蕩, 溢世啾喧, 皆背義趨利者, 則子其懲於此而退託於黙歟? 然則固知子之志慕在仲尼之欲無言乎!
又有一可叩者, 徒有志慕聖人, 而若於謨訓, 無沈潛體驗之工, 則其黙也, 只閉口而已, 何益於實踐哉? 苟日用動靜之間, 收其本原, 絶其利誘, 必以聖門之正法眼藏依樣做去, 始可謂黙而成之也. 『心石齋先生文集』 卷之十八
해석
薛文淸嘗謂: “萬言萬當, 不如一黙.” 余竊疑之.
설문청(薛文淸)【1389~1464. 문청은 명(明)나라 설선(薛瑄)의 시호이다. 영종(英宗)이 복위하자 예부우시랑 겸 한림원학사(禮部右侍郞兼翰林院學士)로 입각(入閣)하여 기무(機務)에 참여하였다. 그는 정주(程朱)에 뿌리를 두고 복성(復性)에 힘쓰면서 함양(涵養)을 위주로 학문하였는데, 주희(朱熹)가 나온 이후로 사도(斯道)가 크게 밝아져 굳이 저작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明史』 卷282 儒林列傳 「薛瑄」】이 일찍이 “만 마디 말이 만 번 합당해도 한 번 침묵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말했는데 나는 몰래 그걸 의심했다.
蓋人之語默, 當言則言, 當黙則黙, 方有儀則.
대체로 사람의 말함과 침묵은 말하는 게 합당하면 말하고 침묵하는 게 합당하면 침묵해야 곧 법칙이 있게 된다.
而當黙而言, 當言而黙, 則固不可耳.
침묵하는 게 합당한데 말하고 말하는 게 합당한데 침묵하면 참으로 불가할 뿐이다.
然抛郤其當不當, 而一主乎黙, 則不幾於釋氏之寂滅乎!
그러나 합당하냐 부당하냐를 던져두고 한결 같이 침묵에만 주장한다면 석가모니의 적멸에 가까우리라.
彼無聲無臭者, 天也, 而雷聲未嘗不自幽黙中發, 則亦非一於黙也.
저 소리도 냄새도 없는 것이 하늘이지만 우레소리는 미상불 스스로 그윽하고 침묵함 속에 터져나오니 또한 침묵에 한결 같은 것 아니었다.
夫人之於天, 合其德同其則者, 惟聖人能然.
대체로 사람이 하늘에 있어서 덕을 통합하고 법칙을 함께 한 이는 오직 성인만이 그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자는 「감흥(感興)」 시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玄天幽且黙 仲尼欲無言 | 현묘한 하늘은 그윽하고도 잠잠하고 중니께선 말하지 않으려 하네. |
觀此, 亦可見聖人之語黙有時也.
이것을 보면 또한 성인의 말함과 침묵에 시기가 있음을 볼 수 있다.
大嶺之南, 李君希彦顔其齋曰黙, 要余識之.
대령(大嶺, 새재)의 남쪽에 이희언(李希彦)이 서재에 ‘묵재(黙齋)’라 편액하고 나에게 그것을 기록해주길 요구했다.
希彦乎! 子欲學仲尼者歟? 抑效文淸者歟? 余欲叩其志.
희언이여! 자네는 중니를 배우려 하는 이인가? 아니면 문청을 본받으려는 이인가? 내가 그 뜻을 캐보려 하네.
噫! 近日邪說蠭起, 人心流蕩, 溢世啾喧, 皆背義趨利者, 則子其懲於此而退託於黙歟?
아! 최근에 사악한 말이 벌처럼 일어나 인심이 방탕한 데로 흐르고 세상에 넘치는 시끄러운 소리가 모두 의를 저버리고 이익을 추구하게 하니 자네는 이것을 벌주고 물러나 침묵에 의탁하려는가?
然則固知子之志慕在仲尼之欲無言乎!
그러하다면 참으로 그대의 뜻이 중니의 말하지 않으려 함을 사모하는 데 있음을 알겠구나.
又有一可叩者, 徒有志慕聖人, 而若於謨訓, 無沈潛體驗之工, 則其黙也, 只閉口而已, 何益於實踐哉?
또한 하나의 캐볼 만한 게 있으니 단지 뜻으로만 성인을 사모하고 『서경』의 「대우모(大禹謨)」ㆍ「고요모(皐陶謨)」에 잠겨 체험하는 공부가 없다면 그 침묵이란 단지 입을 닫은 것일 뿐이니 어찌 실천에 유익이 있으리오.
苟日用動靜之間, 收其本原, 絶其利誘, 必以聖門之正法眼藏依樣做去, 始可謂黙而成之也. 『心石齋先生文集』 卷之十八
진실로 일상의 움직임과 고요함 사이에 본원을 거두고 이익과 유혹을 끊어내 반드시 성인 문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정법안장(正法眼藏): 불교 용어로, 석가(釋迦)가 깨달은 최고의 묘리(妙理)를 가리킨다. 우주를 밝게 비추는 것을 안(眼), 모든 덕을 포함하는 것을 장(藏)이라 하며, 정법(正法)은 이 안과 장을 구비하는 것이다. 석가가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강설할 때 연꽃을 꺾어 들자 대중이 모두 침묵하는 가운데 오직 가섭(迦葉)만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는데, 이에 석가가 “나에게 있는 정법안장(正法眼藏)ㆍ열반묘심(涅槃妙心)ㆍ실상무상(實相無相)ㆍ미묘법문(微妙法門)ㆍ불립문자(不立文字)ㆍ교외별전(敎外別傳)을 마하가섭(摩訶迦葉)에게 맡기노라.”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聯燈會要』】으로 본떠서 실천하고[依樣] 실행하여 나가야[做去] 비로소 침묵함으로 이룩했다 말할 수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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