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김시습(金時習)의 사상적 내력
이러한 상반되는 평가는 그의 사상적 편력을 통하여 다시 문제를 제기해 준다.
스스로 성명으로 일찍 성대해졌지만 하루아침에 세상에서 은둔했다. 정신은 유학자인데 자취는 불자로 당시에 괴상하게 보여질까봐 부러 미치광이 행세를 하여 실제를 가리었다.
自以聲名早盛, 而一朝逃世. 心儒蹟佛, 取怪於時, 乃故作狂易之態, 以掩其實.
율곡의 「김시습전(金時習傳)」 가운데 이 글에서 보면 ‘심유적불(心儒跡佛)’이라 하여 본심은 유교인데 행적은 불교(佛敎)였으므로 시대에 괴상하게 보일까봐 일부러 미친 짓을 함으로써 사실을 엄폐하려 하였다는 것이다. 이 점은 이자(李耔)도 ‘행유이적불(行儒而跡佛)’ ‘불적이유행(佛跡而儒行)’이라 하여 같은 표현을 하고 있다.
하물며 나는 청빈하여 유교를 행세하면서 불교를 실천하며 일월의 이치를 알면서도 불교경전에도 해박하다.
況吾淸寒, 行儒而跡佛, 日月理而該釋文.
연려실기술에는 다시 ‘색은행괴(索隱行怪)’라 표현을 하고 있다. 또 이산해(李山海, 1538~1609)의 「매월당집서(梅月堂集序)」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유교를 포기하고 불교(佛敎)로 탈바꿈하여 병든 듯 미친 듯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은 어찌 다른 뜻이 있어서겠나. 그가 삶의 평형함을 얻지 못한 때문이다.
抛棄名敎, 幻形禪門, 如病如狂, 大恢流俗者, 抑何意歟.ㆍㆍㆍ大要皆不得其平者乎.
이러한 마음의 동요는 유교입국의 당시 조선(朝鮮) 사회가 세조(世祖)의 정권 탈취로 말미암은 사회 정의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는 자주 ‘지여시사괴(志與時事乖)’【虛士本閑雅 早世好大道 志與時事乖 紅塵跡如掃 (梅月堂詩集1 自貽)】라는 표현을 통하여 자신의 뜻이 세상 돌아가는 상황과 잘 맞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있다.
몸과 세상 서로 어긋남이 삼하였고 세월은 성큼성큼 빨리도 흘러가네.
身世乖違甚 年光莅苒移(敍悶六首)
몸과 세상이 서로 어긋남을 그는 둥근 구멍에 모난 기둥박기[圓鑿方柄]로 비유적인 표현을 하고 있음은 매우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屢見身世相違 如圓鑿方柄(上柳襄陽陳情書)】.
조동일(趙東一)은 김시습(金時習)과 허균(許筠)은 중세적 질서에 부딪쳐 이를 거부하지 않을 수 없는 자의식을 최초로 심각하게 느낀 선구자이지만, 김시습(金時習)은 주로 사회적 모순 때문에 허균(許筠)은 주로 이념적 모순 때문에 세계와 맞서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趙東一, 小說의 成立과 初期小說의 類型的 特徵, 韓國小說의 理論 p.p 203~207.】. 사회와 맞서기 위해서 그가 택한 길은 입산의 소극적 방법이었으며 적불(跡佛)을 통해 자신을 숨긴 채 지내야만 했다. 그는 도를 행할 수 없는 세상임을 깨닫고 문득 옷에 검은 물을 들여 입고 산 사람[山人]이 되어 소원을 채우리라 생각하고 유랑의 길을 떠났다고 하였다【若染緇爲山人, 則可以塞願(宕遊關西錄後志)】.
매월당시(梅月堂詩) 사유록(四遊錄)을 보면 그는 관서(關西)ㆍ관동(關東)ㆍ호남(湖南)의 편력에 이어 마지막으로 금오산(金鰲山)을 찾는데 이 무렵에 『금오신화(金鰲新話)』도 창작되었다고 보여 지며, 「유금오록(遊金鰲錄)」의 시편만도 백수를 상회하게 남아 전한다. 후세에 반드시 자신을 알아줄 사람이 있으리라 하고 저서를 모두 석실(石室)에 감추었는데 김안로(金安老)는 그것은 모두 ‘술이우의(述異寓意)’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玉堂揮翰已無心 | 옥당에서 글 지을 맘 이미 없어지고 |
端座松窓夜正深 | 솔차창에 앉았으니 밤은 정히 깊었어라 |
香揷銅甁烏几淨 | 구리병에 향 꽂으니 안상은 고요한데 |
風流奇話細搜尋 | 풍류스런 기이한 말 자세히도 찾아본다. |
「제금오신화(題金鰲新話)」에서 보면 현실에 대한 영광을 그는 이미 포기하고 절연한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 풍류기화 즉 『금오신화(金鰲新話)』를 매우 진정된 마음으로 창작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최남선(崔男善)은 김시습(金時習)이 “의외의 세변(世變)에 오중(五中)의 격탕(激盪)을 스스로 진정하지 못하고 신세를 아울러 외물(外物)로 포척(抛擲)하고서 단책열루(短策熱淚)로 팔방(八方)에 방랑할새 금강간화(金剛看話)의 전(前)과 설악송소(雪岳誦騷)의 후(後)에 곡부진소불소(哭不盡笑不掃)하던 궁철(窮徹)의 애민(哀憫)을 그대로 동경(東京) 금오산중(金鰲山中)으로 끌고 가서 구수신한(舊愁新恨) 만강울읍(滿腔鬱悒)을 독호모지(禿毫毛紙)의 끝에 서기상망(庶幾喪忘)한 것이 이 일편(一篇)”이라 평하고 있다【崔男善, 『금오신화(金鰲新話)』 解題(啓明 19號)】. 『금오신화(金鰲新話)』에서는 현실성을 배제하기 위하여 의식적으로 다양한 비현실적 소재를 창출해냈다고 볼 수 있다. 작품(作品)의 주인공으로 하여금 전란으로 죽은 여인의 영혼을 만나 사랑을 속삭이고(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죽은 지 오랜 箕氏女와 더불어 詩酒를 응수하며, 지옥으로 달려가 閻王을 만나 자신의 주장을 펴고 수중으로 용왕을 찾아가 異界를 編曆한다【『금오신화(金鰲新話)』 말미의 ‘書甲集後’라고 한 기록을 통하여 乙集, 丙集 등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나, 다섯 편의 성격을 보면 傳奇作品으로는 완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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