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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강해, 제삼십이분 - 32.1~2 ~ 如如不動 본문

고전/불경

금강경 강해, 제삼십이분 - 32.1~2 ~ 如如不動

건방진방랑자 2022. 11. 23.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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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색신은 모습이 없어라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

 

 

32-1.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수로 헤아릴 수 없는 무량한 세계에 가득찬 칠보를 가져다가 보시를 한다 해도, 여기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보살의 마음을 발하고, 이 경 내지 그 사구게라도 받아 지녀 읽고 외워, 다른 사람을 위해 연설한다면, 이 복이 저 칠보의 복을 뛰어 넘으리라.”

須菩堤! 若有人以滿無量阿僧祈世界七寶持用布施. 若有善男子善女人發菩薩心者, 持於此經乃至四句偈等, 受持讀誦爲人演說, 其福勝彼.

수보리! 약유인이만무량아승기세계칠보지용보시. 약유선남자선여인발보살심자, 지어차경내지사구게등, 수지독송위인연설, 기복승피.

 

32-2.

그리하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하여 연설한단 말인가? 상을 취하지 말라. 있는 그대로 움직이지 말라.

云何爲人演說? 不取於相, 如如不動.

운하위인연설? 불취어상, 여여부동.

 

 

응화비진(應化非眞)’의 응화(應化)는 응신(應身)과 화신(化身)을 가리킨다. 이 모두 색신(色身)의 이명(異名)이다. ()ㆍ화신(化身)이 모두 참되지 않다는 것이다. 즉 응()ㆍ화신(化身)법신(法身)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이 번역하면 너무 얕은 이원론적 부정의 논리의 인상을 주기 때문에 나는 색신은 모습이 없어라로 번역하였다.

 

아승기(阿僧祇)’는 반드시 아승기로 읽어야 한다. ‘아승지로 읽지 말 것이다. 숫자로 표현될 수 없는 가장 많은 수를 나타낸다. 16분에 기출(旣出).

 

그리고 세조본, 명본(明本), 우리나라 통용본들은 발보살심자(發菩薩心者)’발보리심자(發菩提心者)’로 되어 있다. 해인사본은 보살심(菩薩心)’으로 되어 있고 대정(大正)은 이에 따랐다. 여기 이 마지막 분(), 다시 말해서 금강경을 총결 짓는 이 마지막 부분에서 보리심이라고 하는 일반명사가 아닌 보살심이 등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금강경자체가 바로 보살운동의 성전이기 때문이다. 산스크리트 원문은 이 부분에서 명료하게 발보살심(發菩薩心)’이라고 하는 논리적 초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는 곧 라집(羅什)이라고 하는 탁월한 번역자의 의도적 연출인 것이다. 금강경은 보살의 마음을 내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쳐지는 헌시인 것이다.

 

2절의 연설(演說)’이라는 말은 이미 불교 이전의 문헌(文獻)에 보이는 말인데 한역불전에서 불타의 가르침을 남에게 설한다는 의미로 잘썼다. ‘연설(演說)’이란 ()하여 설()한다는 뜻으로, ()이란, ‘물흐르는 대로 그 물가를 따라서 자세히의 뜻이 있다.

 

산스크리트 원문에는 그렇다면 어떻게 남을 위하여 이 가르침을 말하여 들려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말하여 들려줄려고 하지 말라! 그래야 비로소 말하여 들려준다고 말할 수 있다.’로 되어 있다. 이 논지를 라집(羅什)은 아름다웁게 바꾸었다.

 

 

不取於相
불취어상
상을 취하려 하지 말라
如如不動
여여부동
여여하게, 부동하게!!

 

 

노자(老子)의 말에 이런 말이 있다.

 

 

모습 없는 큰 모습을 잡아라!

천하가 스스로 간다.

執大象! 天下往..

집대상! 천하왕.

 

 

이제 눈물겨웠던 우리의 금강경강해도 아쉬운 고별을 말하게 되었다. 나는 금강경에 나오는 이 마지막 게송과 더불어 너무도 절박했던 색신(色身)의 노고를 풀려 한다.

 

 

 

 

인용

목차

금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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