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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선진 제십일 - 13. 창고를 새로 만드는 너 아웃!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선진 제십일 - 13. 창고를 새로 만드는 너 아웃!

건방진방랑자 2022. 12. 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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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창고를 새로 만드는 너 아웃!

 

 

11-13. 노나라의 사람들이 장부()라는 큰 재물창고를 새로 지었다.
11-13. 魯人爲長府.
 
민자건이 말하였다: “옛 관습대로 따라 한다고 덧날 일이 있겠는가? 새로 지을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閔子騫: “仍舊貫, 如之何? 何必改作?”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저 사람은 평소 말을 하지 않을지언정, 말을 하면 반드시 사리에 들어맞는다.”
子曰: “夫人不言, 言必有中.”

 

마지막의 ()’은 주희가 거성이라고 했지만, ‘적중(的中)’이며 현대중국어에서도 제4성이다. ‘가운데를 의미할 때는 제1성이다.

 

청유들은 장부(長府)’좌전소공 25년에 나오는 기사와 관련시켜 해설하는 데[公居於長府], 별로 재미없다. 나는 취하지 않는다.

 

 

장부(長府)’는 창고이름이다. 재화를 저장하여 두는 곳을 ()’라고 한다. ‘()’는 있던 것을 고쳐 신축했다는 뜻이다. ‘()’은 인(: 옛 방식을 그대로 따르다)이고, ‘()’은 사(: )이다.

長府, 藏名. 藏貨財曰府. , 蓋改作之. , 因也. , 事也.

 

왕안석(王安石)이 말하였다: “고쳐 새로 짓는 것은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물을 손상시킨다. 부득이하지 않은 입장이라면, 옛 관례를 그대로 따르는 것의 좋음만 같지 못하다.”

王氏曰: “改作, 勞民傷財. 在於得已, 則不如仍舊貫之善.”

 

 

여기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을 인용하는 주희의 태도가 흥미롭다. 신 법당의 영수이며 모든 구법당 도학자들의 철천지원수인 왕안석을 집주에 등장시킨다는 것은 그만큼 객관적인 학자로서의 왕안석의 뚜렷한 위치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왕안석을 정치가로서 인식하기 쉬우나 그는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서 뛰어난 문장가였으며 경학에 밝아 통유(通儒)’로 불리었다. 시경』 『상서(尙書)』 『주례에 대해 구태의연한 선유들의 주석에 의존하지 않고 독창적인 새로운 해석을 가하여 의경변고(疑經變古)’의 자유로운 학풍을 개척하여 송학의 신국면을 열었다. ()의 근원을 추상적인 이념으로 생각지 않고 물질적인 원기(元氣)’로 생각하여, 음양 이기(二氣)가 원기로부터 분화되어 나와 유전하면서 오행(五行)을 생성한다고 보았다. 기철학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갈등이 사물의 발전ㆍ변화의 내재적 동력이라고 본 것이다. 이러한 다이내믹한 우주론의 관점에서, 혁신적인 변법(變法)을 주장한 것이다. ‘천불변(天不變), 도역불변(道亦不變)’이라는 전통사상에 도전장을 내고, ‘하늘이 변하여도 무서울 것이 없고, 조종(祖宗)은 본받기에 부족하고, 사람의 말이란 긍휼히 여길 바 없다[天變不足畏, 祖宗不足法, 人言不足恤]’라고 말함으로써 불변의 조종지법(祖宗之法)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하였다.

 

여기 주희가 인용한 왕안석의 장부(長府)’에 대한 입장은 주희가 생각하는 어떤 보수적 입지를 대변해준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인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왕안석의 신법이야말로 민중의 입장에서 그들의 통고(痛苦)를 생각하고 쓸데없는 창고를 짓는 것과 같은 짓을 하지 말자는 입장이다. 그가 주장하는 균수(均輸)ㆍ청묘(靑苗)ㆍ시역(市易)ㆍ모역(募役)ㆍ보갑(保甲)ㆍ보마(保馬) 등의 신법이 사실은 여기 장부(長府)’와 같은 창고를 새로 짓는 작업이 아니라, 기존의 제도를 부활하고 개선하여 대중의 고통을 줄이고, 계층간의 갈등을 줄이고, 재정을 효율화시켜 낭비를 줄이고, 부국강병을 이룩하자는 합리주의적 정신의 소산이었다. 그는 무리한 이상주의자가 아니었고 현실적인 감각이 탁월한 합리주의자였고 각기 그 영역의 전문가들에게서 충분한 정보를 얻어 시행했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그의 신법은 가시적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가시적 효과가 클수록 대관료지주계급과 겸병과 독과점의 혜택을 자유롭게 누리던 호상들이 타격을 입게 되므로 모든 기득권자들에게는 불리했던 것이다. 그의 신법은 정부의 형편에 유리한 개혁이 아니라 약자의 권익을 보호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나라를 건강하게 만들지는 데 있었다. 하여튼 이 장에 왕안석이 등장한 것은 여러 각도에서 아이러니칼한 복선들이 겹쳐있다 할 것이다. 앞서 한번 언급했듯이, 주희는 남 송의 강렬한 주전론자였지만 사회개혁의 문제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암적 요소들이 더 무서운 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복고적인 수구당을 탐탁히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변법(變法)을 지지하였다. 사마광 등의 원우당인들의 사상을 퇴폐적인습에 빠져있다[墮于因循]고 비판하였고, 왕안석의 변법은 시대의 당연한 추세[亦是勢當如此]라고 평가하였다. 여기 왕안석의 주석을 인용한 주희의 객관적인 학문 태도는 귀감이 될 만하다.

 

 

는 부()라고 발음한다. ‘()’은 거성이다. 말을 함부로 발설하지 아니 하고, 말하면 반드시 리()에 들어맞는 것은 오로지 유덕자만이 능할 수 있다.

, 音扶. , 去聲. 言不妄發, 發必當理, 惟有德者能之.

 

 

정주한간에 이 부분이 들어있다. 그런데 본문 가운데 구절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閔子騫曰: “舊貫而可, 何必改作?”

 

송대의 삼소(三蘇)에 비견되었던 20세기 한국의 기재(奇才)로서 변씨 3형제가 있다. 변영만(卞榮晩, 1889~1954), 변영태(卞榮泰, 1892~1969), 변영로(卞榮魯, 1898~1961), 이 삼인이 바로 20세기 한국의 삼소로 불리었던 사람들이다. 영문학자이며 정치가였던 변영태 선생은, 나의 보성학교 선학으로서 19살에 보성중학을 졸업한 후 우당 이회영 선생을 따라 만주로 가서 통화현 합니하(哈泥河)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제1회로 졸업한 민족ㆍ독립의식이 투철한 인물이었다. 1공화국시절에 국무총리ㆍ외무부장관을 지내었다. 규칙생활이 철저한 분으로 평생 아령운동을 하셨는데 외국에 다닐 때도 비행기에 꼭 아령을 들고 타는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 나도 어렸을 때 그 분이 강당에서 아령시범보이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말년에 교수생활을 하시면서 논어를 영역해놓은 것이 있다(민중서관에서 1960년 출간). 이 장의 번역을 한번 보자!

 

The Kingdom of Lu was renovating its treasure house. Min Tzu Ch'ien said, “They might just as well leave it as it was. Why all this fuss of rebuilding?”

The Master said, “This man seldom opens his mouth, but, if he does, he has a point.”

 

매우 자기내면화 되어 있는 아름다운 번역이다. 영어도 전달력 있는 평이한 구어체이며 논어원래 맥락의 느낌을 충분히 살려내고 있다. 20세기 우리나라에서 나온 값있는 논어주석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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