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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선진 제십일 - 17. 자고, 증삼, 자장, 자로에 대한 평가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선진 제십일 - 17. 자고, 증삼, 자장, 자로에 대한 평가

건방진방랑자 2022. 12. 6.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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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자고, 증삼, 자장, 자로에 대한 평가

 

 

11-17.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자고)는 어리석고, (: 증삼實參)은 노둔하고, (: 자장子張)는 치우쳤고, (: 자로子路)는 거칠다.”
11-17. 也愚, 參也魯, 師也辟, 由也喭.

 

제자의 결점만을 말한 유례가 별로 없기 때문에 편집자가 자왈(子曰)’을 뺐다는 설도 있고, 요시카와는 다음 18장에서 공자가 안회와 자공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제3자가 그러한 분위기를 흉내내어 네 사람에 대한 평을 한 것을 공자가 시인한 정도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나는 공자의 단도직입적인 평어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모두 쿨한 멘트이므로 최소한 이 4인 계열의 문하에서 전승된 파편은 아닐 것이다. 제자들의 다양한 모습의 진실을 서슴치 않고 전하는 논어편집자의 여유로운 자세에 우리는 박수갈채를 보내야 할 것이다. 모든 성서가 이와 같은 자세로 편집되었다면 인류는 보다 정직하고 소박한 문명을 건설했을 것이다.

 

 

()’는 공자의 제자이다. 성은 고(), 자는 자고()이다沃案, 자고(子高), 자고(子皐), 자고(子睾), 계고(季皐)로도 불리운다. ()나라 사람. 제나라가 혹은 정()나라 사람이라는 설도 있다. 나이도 30세 연하[열전], 40세 연하[가어] 설이 있는데 40세 연하가 더 정확한 설일 것이다. 키가 5척도 안되는 난장이였으며 추남이었다고 한다. 공자가어』 「칠십이제자해(七十二弟子解)에 의하면 제나라 사람이었지만 어려서부터 노나라에 살았다. 공자의 문하에서 이름을 날리어 노나라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인물이었으며 무성재(武城宰)를 지냈다고 한다. 자로의 추천에 의하여 비옵재가 되었다. ‘()’라고 하는 것은 지혜가 부족하고 후덕함은 여유가 있는 것이다沃案. 지혜는 부족하지만 어리석기에 후덕한 측면이 있다는 표현. 가어』 「제자행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편에 혼자 오갈 때에도 남의 그림자를 밟지 않았으며, 계칩(啓蟄: 24절기 중의 하나. 겨울 동안 칩거한 생물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때, 양력으로는 35일경)에 살생을 하지 않았으며, 봄에 자라는 새싹을 꺾지 않았으며, 부모의 상을 집례하면서 삼년동안 가슴 아프게 하는 동안에는 이빨을 보인 적이 없다.’ 그리고 치사(致思)편에는, 난을 피해 도망을 가도, 샛길로 가거나 개구멍을 빠져나가지 않는 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沃案. 괴외(蒯聵)의 난 때의 모습이다. 자로는 죽고 자고는 도망쳤다. 그 위인됨을 볼 수 있다沃案, 주희는 될 수 있는 대로 좋게 평해주려고 야단이다. 공자의 원의에 벗어나는 주석이다.

, 孔子弟子, 姓高, 字子羔. 愚者, 知不足而厚有餘. 家語記其足不履影, 啓蟄不殺, 方長不折. 執親之喪, 泣血三年, 未嘗見齒. 避難而行, 不徑不竇”. 可以見其爲人矣.

 

(參也魯). ‘()’는 둔()한 것이다.

, 鈍也.

 

정이천이 말하였다: “증삼은 결국 노둔했기 때문에 위대하게 된 것이다.”

程子曰: “參也竟以魯得之.”

 

또 정이천과 윤언명이 말하였다: “증자의 학문은 성()과 독()일 뿐이었다. 성문(聖門)에서 배우는 자 중에 총명하고 재변(才辯)이 넘치는 자들이 적지 않았지만, 끝내 도()를 전()한 것은 질로(質魯)한 그 사람, 증자뿐이었다. 그러므로 배움이란 성실(誠實)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又曰: “曾子之學, 誠篤而已. 聖門學者, 聰明才辯, 不爲不多, 而卒傳其道, 乃質魯之人爾. 故學以誠實爲貴也.”

 

윤언명이 말하였다: “증자의 재질은 노둔하였다. 그러기에 그의 학문은 확고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도()에 깊게 다다를 수 있었던 것이다.”

尹氏曰: “曾子之才魯, 故其學也確, 所以能深造乎道也.”

 

(師也辟), ‘()’은 한 쪽으로 치우친 것이니, 용모나 행동거지에만 익숙하고 성실함이 부족한 것을 일컫는다.

, 婢亦反. , 便辟也. 謂習於容止, 少誠實也.

 

 

증자 얘기만 나오면 도통론을 옹호하기에 바쁜 송유들의 꼬락서니가 가관이다. 여기서도 도를 전했다고 하는 전도(傳道)의 표현이 나오고 있는데 공문의 적통을 중심이 전했다고 하는 것은 송유들의 확고한 입장이다. 공자가 중심을 노둔하다고 표현한 것은 인간 중심에 대한 가감없는 리얼한 평가일 뿐이다. 이외로 공자와 중심의 직접적 관계는 논어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만 큼 중삼은 공문 내에 위치가 없었던 어린 제자였으며, 공자에게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여기 라는 표현은 우리말로 아둔한 녀석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느낌을 준다. 홍명희가 임꺽정에서 아둔패기라는 말을 잘 쓰는데, 증삼이야말로 아둔패기였다. 그 뒤에 자장에 대해 성실함이 부족하다고 주희가 해설한 것은 증삼을 무작정 두둔한 것에 비한다면 너무 억울한 평가라 할 수 있다.

 

 

은 오단(五旦) 반이다. (由也喭), ()’이란 거칠고 속된 것이다. ()에 일컫기를, ‘()’이라는 표현은 속된 표현이다라고 하였다沃案, ‘()’이 거칠다는 의미로 쓰인 것은 고전에 별로 용례가 없다. ‘()’이라는 표현에 관한 의미맥락은 대체로 논어의 용례로부터 시작한 것이다.

, 五旦反. , 粗俗也. 傳稱喭者, 謂俗論也.

 

양중립이 말하였다: “이 네 가지는 인간의 성품의 편벽됨을 일컫는 것이니, 이를 솔직히 지적함으로써 스스로 면려하는 것을 알도록 하게 하시었다.”

楊氏曰: “四者性之偏, 語之使知自勵也.”

 

오역이 말하였다: “이 장의 머리에 자왈(子曰)’ 두 글자가 탈락되었다.” 혹자는 의심하기를, 하장()의 머리에 있는 자왈(子曰)’이 이 장의 머리로 가야하며, 그렇게 해서 이 두 장을 한 장으로 통합하여야 한다 하였다.

吳氏曰: “此章之首, 子曰二字.” 或疑下章子曰’, 當在此章之首, 而通爲一章.

 

 

 

 

인용

목차 / 전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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