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공자가 칭찬하는 경우
15-24.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내가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누굴 훼방하고 누굴 칭찬하리오? 만약 내가 누굴 칭찬하는 바가 있다면 도리어 그것은 그를 시험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이 백성은 하ㆍ은ㆍ주 삼대(三代)를 통하여 직도(直道)로써 행(行)하여 온 바탕이 있기 때문에 평범하게 보여도 선ㆍ악의 판단이 정확한 사람들이다.” 15-24. 子曰: “吾之於人也, 誰毁誰譽? 如有所譽者, 其有所試矣. 斯民也, 三代之所以直道而行也.” |
이 장의 해석도 보통 모두 애매하게 얼버무리고 만다. 나의 번역은 나의 해석이다. 우선 많은 주석가들이 ‘기유소시의(其有所試矣)’를 내가 남을 칭찬하는 것은 ‘이미 정확하게 시험해보고 난 결과로서 칭찬하는 것이다’하는 식으로 푼다. 이런 식의 해석이나 번역은 재미도 없고, 기본적으로 텍스트를 오독한 것이다. 고주에도 내가 번역한 논리를 정확히 암시하고 있다.
칭찬한다면 그것은 곧 어떤 일을 가지고서 시험하는 것이다. 공짜로 칭찬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所譽, 輒試以事, 不空譽而已矣.
이 장의 첫 말은 역시 노자적이다. 공자 자기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근원적으로 누굴 훼방하고 누굴 칭찬하는 분별심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야단을 치면 싫어하고 칭찬을 하면 좋아하지만, 야단친다고 싫어할 것이 없고, 칭찬한다고 좋아할 것이 없다. 칭찬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를 시험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암암리 야단치는 것은 뒤끝이 없는데 칭찬하는 것은 뒤끝이 있다는 식의 분위기가 암시되어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삼대(三代)의 직도(直道) 운운한 것과 앞 내용을 정확히 연결시키는 번역이 별로 없다. 나는 뒷부분의 멘트야말로 공자의 전통감각을 나타내주는 매우 결정적인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누굴 칭찬하고 비판하려면 그들 본인이 그러한 가치판단을 수용할 수 있는 바탕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커뮤니 티 전체의 상식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나라의 성내를 어슬렁거리는 평범한 백성이라 할지라도 이미 하ㆍ은ㆍ주 삼대의 직도(直道)가 행(行)하여져 온 전통의 축적의 바탕이 있는 사람들이다. 직도가 행하여졌다는 것은 사특한 사적 생각이 낄 틈이 없다는 것이고, 선ㆍ악에 대한 판단력이 정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전통적 감각을 믿고 이들을 야단치고 이들을 칭찬한다.
나도 젊은 날에 생에 대한 번민과 회의가 많았다. 어디서 살 것인가, 선택의 여지도 없지 않았다. 어느 나라 말로 글을 쓸 것인가,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온갖 인류의 죄악을 이 좁은 바닥에서 다 체험하면서도, 역시 이 땅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 자부감을 물씬 느끼는 것은 역시 이 민족, 이 백성, 이 인간이 단군이래 유구한 전통을 거쳐 바른 길에 대한 훈도를 축적해온 사람들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위지동이전」의 글만 읽어도 나는 발랄한 이 민족의 생명력을 실감할 수가 있다. 지나치는 논두렁의 민불(民佛)만 쳐다보아도 그들의 소박한 진실을 느낄 수가 있다. 뒹구는 목공예품만 보아도 치열한 장인정신과 섬세한 심미적 감각을 흠끽할 수 있다. 과연 이 땅, 이 사람을 버리고 내가 어디를 가랴! 공자도 곡부 성내를 어슬렁 걸어다니면서 항상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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