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사이비 향원(鄕原)
17-13.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향원(鄕原)은 덕(德)의 적(賊)이다.” 17-13. 子曰: “鄕原, 德之賊也.” |
너무도 유명한 말이기 때문에, 번역을 하면 오히려 뜻이 손상되어 그대로 직역하였다. 역시 위선자들에 대한 공자의 혐오감이 여실하게 표현되어 있다. 고주에 향원의 뜻을 너무 애매하게 풀어서 그 개념을 잘못 잡는 사람들이 많다. ‘향(鄕)’을 ‘향(向)’이라고 풀어 타인의 뜻을 쫓아 해바라기처럼 향하기만 하는 인간의 뜻으로 해석하였고, ‘원(原)’은 ‘관대하다’, ‘용서한다’는 식으로 풀었다. 그리고 신주는 ‘향(鄕)’을 ‘비속(鄙俗)’의 뜻이라고 하였고, ‘원(原)’은 ‘원(愿)’의 뜻으로 풀어 겉으로는 근후하고 정직한 듯이 보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풀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너무 우원하다. 보이는 그대로 왜 해석 못하는가?
‘향(鄕)’이란 문자 그대로 ‘동네’ 즉 어떠한 ‘커뮤니티’를 단위로 삼든지간에 인간공동체를 의미한다. ‘원’이란 글자는 본래 상형자로서 갑골문에는 나오지 않으나 금문에는 보인다. 바위 밑으로 샘이 흐르는 모습이며 물의 근원, 즉 수원(水源)을 의미한다. 원시(原始), 원본(原本), 원인(原因), 근원(根源) 등의 용례가 지시하는 바대로이다. 어느 동네를 가든지, 그 동네에서 자기가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자기만이 주류이며, 자기가 다 통솔하며, 자기의 뿌리가 제일 깊으며, 자기가 예의범절을 가장 잘 알며, 모든 전통을 독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놈들이 꼭 있는 것이다. 대부분 이들이야말로 그 동네의 상층부를 차지하며 변화를 거부하며 지배적 에토스를 고수하려고 하며 가장 점잖은 체는 혼자 다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야말로 덕(德)의 적(賊)이라고 외치는 공자! 이 공자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할까? 유교가 오히려 이제는 향원들의 유교가 되어버린 마당에 공자의 이러한 메시지가 진정으로 이해될 길이 있을까?
그런데 이 ‘향원’이라는 말은 『맹자』라는 서물을 통하여 더 유명해졌다. 「진심」하 장구 제37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읽어보면 이 장에 대한 주석 같다는 느낌이 든다. 맹자가 향원에 관하여 해설한 것은 다음과 같다.
비난하려 해도 비난할 건덕지가 없이 완벽하게 보인다. 찌르려 해도 찌를 틈이 없어 보인다. 흐르는 세속에 너무도 잘 동화되고, 오염된 세상과 너무도 잘 야합한다. 평상시에 사는 모습을 보면 충직하고 신험이 있는 듯이 보이며, 행동을 보아도 청렴하고 결백하게 보이며, 모든 사람이 그를 기뻐 따른다. 자기 스스로 자기가 옳다고만 생각하지만 이런 자들은 도무지 요ㆍ순의 도(道)에 더불어 들어갈 길이 없다. 그래서 공자께서 ‘덕의 적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非之無擧也, 刺之無刺也. 同乎流俗, 合乎汚世, 居之似忠信, 行之似廉 潔, 衆皆悅之. 自以爲是, 而不可與入堯舜之道, 故曰德之賊也.
너무도 아이러니칼하고 적확한 지적이다. 이러한 『맹자』의 기술은 양화편과 동일한 자료를 토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양화」편의 공자 말씀이 선행했기에 『맹자』의 기술이 가능했다고 보기보다는, 동시대의 패러다임 속에서 『맹자』 기술의 원본에 해당되는 것이 「양화」편으로 편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맹자』 텍스트의 권위를 높이고 그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노력이 「양화」편의 편자들의 의식 속에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텍스트의 문제는 어찌 되었든 이 로기온은 직전제자의 전송으로부터 유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논어』를 읽는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제발 앞으로 판ㆍ검사가 되고, 고급공무원이 되고, 정치인이 되고, 대기업의 지도자가 되고, 유능한 문화인이 되어도 우리 사회의 ‘향원(鄕原)’이 되는 일만은 없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장을 맺는다.
The Master said, “Your good, careful people of the villages are the thieves of virtue.” - 레게 역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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