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자연적인 공부와 천착하는 공부
4b-26.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천하사람들이 모든 사물의 보편적 본성을 말하려고 하면 반드시 그 본성을 본성이게끔 하는 그 근원을 탐구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 근원이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여기 ‘이리위본(以利爲本)’의 ‘리(利)’는 ‘이익’의 뜻이 아니고 ‘순리(順利)’의 뜻이며, ‘자연지세(自然之勢)’이다. 주희의 설을 따른다】. 우리가 부자연스러운 지적 탐구를 혐오하게 되는 것은 그 지식이 항상 무엇을 무리하게 천착하여 꿰맞추려고 하기 때문이다. 4b-26. 孟子曰: “天下之言性也, 則故而已矣. 故者以利爲本. 所惡於智者, 爲其鑿也. 우리가 지식을 마치 우임금이 물을 소통시키는 것처럼 사용한다면 지식에 대한 혐오감은 있을 수 없게 된다. 우임금이 물을 소통시키는 방식은 항상 무리가 없이 스스로 그러한 추세에 따라 물이 흐르도록 하였다. 우리의 지식도 무리 없이 스스로 그러한 추세에 따라 흐르도록 한다면, 우리의 지식은 위대한 덕성을 발현할 수 있다. 如智者若禹之行水也, 則無惡於智矣. 禹之行水也, 行其所無事也. 如智者亦行其所無事, 則智亦大矣. 하늘이 얼마나 높은가? 저 별들이 얼마나 멀리 있는 것일까?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을 그렇게 되는 이치를 따라 그 근원을 탐구해 들어간다면 천년 후의 동지도 골방에 가만히 앉아서 다 산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天之高也, 星辰之遠也, 苟求其故, 千歲之日至, 可坐而致也.” |
워낙 추상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해석에 무리가 있을 수도 있으나 대체의 뜻은 틀림이 있을 수 없다. 자사가 기술하는 공자가 ‘색은행괴(素隱行怪)’를 혐오한 것을 연상하면(『중용(中庸)』 11장), 그리고 ‘불면이중(不勉而中), 불사이득(不思而得), 종용중도(從容中道)’라고 한 것을 생각하면(『중용』 20장) 맹자의 논의는 쉽게 이해가 간다. 여기 맹자의 ‘고(故)’는 자사의 ‘성(誠)’과 통하는 개념이다. 모든 본성의 근원이면서도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한다. 여기 첫 마디 ‘천하지언성(天下之言性)’의 ‘언성(言性)’을 인간의 본성을 말한다는 것으로 국한시키는 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이것은 ‘인성(人性)’ 뿐 아니라 모든 ‘물성(物性)’을 포괄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성(性)’은 ‘고(故)’를 말해야 하며 ‘고(故)’는 무리함이 없이 스스로 그러한 자연지세(自然之勢)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묵경(墨經)」의 제1명제가 ‘고(故)’를 말하고 있고【‘고(故)’라는 것은 어떤 사태가 있고, 그 사태에 근거하여 다른 사태가 성립하는 것을 의미한다[故, 所得而後成也]】, 또「경설(經說)」이 ‘소고(小故)’와 ‘대고(大故)’를 말하고 있는 것은 모두 전국시대의 자연과학적 탐구의 시각을 나타내는 담론이라고 할 것이다.
맹자는 주지주의적 ‘억지’를 여기 ‘착(鑿)’이라고 부르고 있다. 인간의 지식의 사용이 연역적 전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억지춘향, 즉 견강부회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맹자에게는 목가적 사유, 도가적 사유의 영향 또한 배어있다고 할 것이다. 마지막에 ‘천년 후의 동지의 날짜도 앉아서 다 계산해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당시 천문학적, 역법적 사유가 얼마나 고도화되어 있었나 하는 것을 대변해주고 있다. 맹자는 결코 관념적인 사상가가 아니라 당대의 모든 지적 패러다임을 포섭한 폭넓은 사상가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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