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1. 도올서원의 미래
몸이 아프다는 건 정말 비극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몸의 건강을 유지한다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몸이 아프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말이죠. 요 며칠 내가 좀 심하게 아팠는데 오늘은 갈래가 조금 잡힌 듯합니다. 사람이 역시 무리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이, 무리하고 살면 그게 축적돼서 반드시 몸의 이상으로 나타나거든요. 요번에 내가 아주 지독하게 고생을 했습니다. 밤낮으로 계속 잤는데도 혓바닥 밑이 꼭 암덩어리처럼 부어서는 회복이 안 되는 거예요. 계속 피곤하기만 하고. 아무튼 살아 있을 동안에는 건강해야지. 몸이 아픈 건 참 비극입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학생들이 많이 안 나왔는데,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몸이 아파서 못 나온 학생들도 꽤 있을 거예요. 사실 이 도올서원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제대로 다닌다는 것 그 자체가 상당히 어려운 삶의 훈련인데, 마칠 때까지 꾸준히 공부할려면 우선 건강해야 합니다. 초지일관한다는 게 뜻만 가지고는 안 되는 거니까 끝까지 건강을 잃지 마시도록!
도올서원의 한 달 코스는 단순히 한문을 배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종합적인 인격을 닦기 위한 과정입니다. 전 세계 어디든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우리나라 현재의 교육은 이러한 종합적인 훈련을 시켜주지 못하고 있어요. 지난 시간에 여러분들이 황병기 선생님 강의를 들었는데, 참 좋은 강의였죠? 나도 강의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하지만, 황병기 선생도 분명히 내 수준은 되는 사람입니다. 지금 한국사회에 도대체 강의를 잘하는 사람들이 드문데, 그 이유는 강의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강의하는 내용의 본질을 깨닫질 못해서 그래요. 본질을 깨달으면 강의가 재미있고 쉬운데, 그런 사람이 별로 없단 말입니다. 황병기 선생은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이 먹은 선배로서, 내가 마음속 깊이 존경하는 분입니다.
개비와 비개비로 실력을 평가하지 말라
그런데 이런 분들이 대학에서든 국악계에서든 도대체 기를 못 편단 말이야. 국악계는 물론이고. 국악계에서 쓰는 말 중에 ‘개비’, ‘비개비’라는 말이 있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나라 국악계라는 게 원래 무속과 관련이 깊은데, 그러다 보니 대대로 내려오는 무당 집안에서 어렸을 때부터 삼현육각이니 시나위니 하는 것들을 배운 그런 사람들을 ‘개비’라 해서 ‘진짜’로 치고, 이 ‘개비’가 아닌, 소위 ‘바깥’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전부 ‘비개비’라 하면서 ‘가짜’라고 배척합니다. 황병기 선생은 물론 ‘비개비’죠. 그래서 황선생님이 아무리 가야금을 잘 타도, “저건 비개비 가야금일 뿐이야”라고 흘겨버리고 말아요. 지난 일림(一林)때 오셨던 박범훈 교수님은 전통적인 무속‘개비‘집안 출신입니다. 그런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유학까지 갔다 왔으니 대단한 사람이죠. 그런데 황병기 선생 강의를 들어 봤으니 알겠지만, 그 지식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경기고등학교·서울법대를 나온 정도의 학문의 깊이가 있으니까, 역시 그런 안목이 나올 수가 있는 거예요.
그 양반 평생에 지난 목요일 강의처럼 재밌는 강의는 아마 못해봤을 겁니다. 강의하는 세 시간 내내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진지하게 듣고 있는 학생들 자세며, 일사불란하게 절하는 태도며, 아무튼 선생에게는 이 모든 것이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차원이었대요. 우리 도올서원 학생들로서도 일생일대 들어보지 못한 명강의였다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정말 근래 보기 드문 명강의였죠? 우리나라 사람에게서 그런 명강의를 듣는다는 건 한량없이 기쁜 일입니다. 사림(四林)때도 다시 모셔서 동서양 음악사를 조감하는 강의를 부탁드릴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도올서원생들에게 바라는 것
그런 좋은 강의를 듣는 여러분들이 앞으로 시시한 놈들이 되진 않겠죠? 이제 이삼십년 후에 ‘대통령이니 장관이니 유명 교수니 그런 사람들에게 공통분모가 하나 있는데 알고 보니 모두 도올서원 출신이더라’ 이렇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어요? 분명히 그렇게 될 겁니다. 지금 이 도올서원은 국가에 등록된 단체가 아닙니다. 나는 국가제도를 거부하기 때문에 탄압을 하던 뭐하던 죽을 때까지 등록 안 할 거예요. 사실 세무조사 받으면 여러분들이 낸 십만 원도 걸릴 거거든? 그래서, ‘이건 학생들이 기부한거다’ 하면서 유지하고 있는데, 이렇게 보면 사실 도올서원은 형체도 없고, 제도권에 속해 있지도 않고,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장소야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만 주면 빌릴 수 있으니까 내 돈으로 빌린 거고. 우리 도올서원은 정말 순수한 임의단체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런 식으로 운영한다면 내가 팔십 살까지 가르친다고 해도 기껏 육십림 밖에 안 되는 거야. 한 번에 백 명 이상씩 가르치기는 어려우니까, 일 년에 이백 명, 육십 림이라고 해봐야 육천 명밖에는 안 된단 얘기죠. 공자는 삼천제자를 거느렸다는데, 현대사회에 사는 내가 아무리 조직적으로 가르친다 해도 육천 명밖에는 안 되니. 아무튼 총 육십림 중에 삼림이 배출됐다는 건 엄청난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벌써 육십분의 삼을 차지한 거예요. 그러니 이 자리가 상당히 귀한 자리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시도록!
내 바램은 이 형태 그대로 교외에 터를 잡아서 서원을 지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완벽한 옛 성균관 스타일로 쿼드랭글(quadrangle)로 짓는 거예요. 앞에는 강이 흐르고 뒤에는 삼각산같은 수려한 산이 있는 그런 자리에, 명륜당·선생방·교수방이 들어가는 건물을 짓고, 그 앞에, 널직하고 네모 반듯한 마당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마주 보도록 동재·서재를 짓고, 누각도 하나 멋있게 짓고. 꼭 영화에 나오는 소림사처럼 말이야. 그렇게 만들어 가지고 여름·겨울 한 달씩 여기서 숙식하면서 강의를 받을 수 있다면 좋겠죠? 새벽에 바라같은 걸 뻥-때리면 재생들이 착착 다 나와서 소림사 쿵푸 같은 것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오전엔 공부하고, 오후엔 산천을 돌아다니고, 농사도 짓고, 그렇게 숙식을 하면서 강의를 받으면 우선 결석하는 학생이 없을 거야. 물론 이것도 국가에 등록 안 합니다. 어떠한 제도권과도 관계가 없을 거예요. 이것이 나의 꿈인데, 여러분들이 졸업해서 내 꿈을 이뤄줬으면 합니다. 땅은 앞으로 내가 병원을 개업해서 살 테니까, 건물 짓는 건 여러분들이 돈을 대는 거야. 어때? 괜찮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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