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연한 기운을 기르면 천지와 함께 변하리라
호연설 증정보주별(浩然說 贈鄭甫州別)
이색(李穡)
호연지기는 어디든 있다
浩然之氣, 其天地之初乎, 天地以之位; 其萬物之原乎, 萬物以之育. 惟其合是氣以爲體, 是以發是氣以爲用. 是氣也無畔岸, 無罅漏, 無厚薄淸濁夷夏之別, 名之曰浩然, 不亦可乎?
맹자가 기를 길러야 한다고 말한 이유
堯之仁, 舜之智, 以至夫子溫良恭儉讓, 皆由自彊不息, 純亦不已而發見者也.
惟彊, 故能不撓於天下之物, 天下之物, 無得而沮之, 所以不息也; 惟純, 故能不雜於天下之物, 天下之物, 無得而間之, 所以不已也. 德由是崇, 功由是著, 顯當世而垂無窮, 非所謂浩然者渾淪於其間, 何以至是哉?
古之聖人者, 心存而體察, 見諸行事, 無待於云云. 孟軻氏悶斯道日益殘弊, 發其機牙, 激昂天下之士, 策其鈍而進其銳. 於是, 養氣之說出焉, 孟軻氏夫豈誇言者哉? 鮮有從事於此者, 其亦可怪也夫.
우(瑀)에서 우(寓)로 자를 바꾼 것에 천인합일의 의미를 부여하다
甫州刺史鄭君謂予曰: “昔予也名瑀, 子嘗以溫叔字我矣. 余今也更之以寓, 願子之終惠焉.”
予曰: “大哉名乎! 天地四方之謂寓, 中天地四方而立. 左瞻右顧, 不其大乎. 而以眇然之身, 養浩然之氣, 使之渾淪於其間, 不其難乎?
然天地也萬物也, 同一體也, 人之一身而天地萬物備. 修其身, 先持其志, 持其志, 氣斯可養馴, 至於不息不已之地, 則所謂眇然之身, 上下與天地同流. 已不與草木禽獸同腐於須臾之頃, 而垂光於千百載之下. 其所以不與草木禽獸同腐於須臾之頃, 而垂光於千百載之下者, 卽浩然之氣充盈乎大寓者也.”
호연지기에 대해 풀이해본 거지 해석해본 건 아니다
或曰: “孟軻氏以大剛直爲說, 今子以彊純釋浩然, 何歟?”
予曰: “箋其義, 不箋其語, 予學如此.”
鄭君性脩潔慷慨, 有志當世事, 懼其所以養氣者或未至焉. 故以浩然字之, 庶有以實其名.
其赴甫州也, 求贈言, 遂書以冠餞行詩之首. 『牧隱文藁』 卷之十
해석
호연지기는 어디든 있다
浩然之氣, 其天地之初乎, 天地以之位;
호연지기는 천지의 시작이니 천지가 그것으로 자리를 잡고
其萬物之原乎, 萬物以之育.
호연지기는 만물의 근원이니 만물이 그것으로 길러진다.
惟其合是氣以爲體,
오직 이 기운이 합해진 것을 체(體)라 하고
是以發是氣以爲用.
이런 까닭으로 이 기운을 발산한 것을 용(用)이라 한다.
是氣也無畔岸, 無罅漏,
이 기운은 끝도 없고 틈으로 세지도 않으며
無厚薄淸濁夷夏之別, 名之曰浩然,
두텁거나 얇음, 맑거나 흐림, 오랑캐와 중하의 분별이 없기에 ‘호연’이라 명하였으니,
不亦可乎?
또한 옳지 않은가.
맹자가 기를 길러야 한다고 말한 이유
堯之仁, 舜之智,
요임금의 인함과 순임금의 지혜로움으로부터
以至夫子溫良恭儉讓,
공자의 온화하고 어질며 공경하고 검소하며 겸손함까지
皆由自彊不息,
모두 스스로 노력하며 쉬지 않고
純亦不已而發見者也.
순수하여 또한 그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발현된 것이다.
惟彊, 故能不撓於天下之物,
오직 강하기 때문에 천하의 사물에 휘둘리지 않고
天下之物, 無得而沮之,
천하의 사물이 얻어 저지할 수 없으니
所以不息也;
쉬지 않는 것이다.
惟純, 故能不雜於天下之物,
오직 순수하기 때문에 천하의 사물에 섞이지 않고
天下之物, 無得而間之,
천하의 사물이 얻어 헐뜯을 수 없으니
所以不已也.
그치지 않는 것이다.
德由是崇, 功由是著,
덕이 이것 때문에 높아지고 공이 이것 때문에 드러나
顯當世而垂無窮,
당세에 드러나고 무궁한 데에 드날리니
非所謂浩然者渾淪於其間,
호연이라 말하는 것이 그 사이에 가득 찬 게 아니라면
何以至是哉?
어찌 여기에 이르겠는가?
古之聖人者, 心存而體察,
옛날의 성인은 마음으로 보존하고 몸으로 살펴
見諸行事, 無待於云云.
행사함으로 드러냈기에 말해주길 기다리지 않는다.
孟軻氏悶斯道日益殘弊,
맹가는 이 도가 날로 더욱 쇠잔하고 피폐해짐을 걱정해서
發其機牙, 激昂天下之士,
기미를 발하여 천하의 선비를 격앙시켜
策其鈍而進其銳.
노둔한 이엔 채찍질하고 예민한 이를 나가게 했다.
於是, 養氣之說出焉,
이에 기를 기른다는 말이 나온 것이니
孟軻氏夫豈誇言者哉?
맹가가 대체로 어찌 말을 과장한 것이겠는가?
鮮有從事於此者, 其亦可怪也夫.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이 드무니 이 또한 괴이할 만한 것이다.
우(瑀)에서 우(寓)로 자를 바꾼 것에 천인합일의 의미를 부여하다
甫州刺史鄭君謂予曰:
보주자사 정군이 나에게 말했다.
“昔予也名瑀, 子嘗以溫叔字我矣.
“옛날에 제가 우(瑀)라고 이름 지었는데 선생님께서 일찍이 온숙(溫叔)이라고 저에게 자를 지어줬습니다.
余今也更之以寓, 願子之終惠焉.”
저는 이제 ‘우(寓)’로 고치니 원컨대 선생께서 은혜를 끝까지 베푸소서.”
予曰: “大哉名乎!
내가 말했다. “위대하구나 이름이여!
天地四方之謂寓,
천지의 네 방향의 모퉁이를 우(寓)라 하니
中天地四方而立.
천지 사방의 중간에 서서
左瞻右顧, 不其大乎.
좌로 보고 우로 보니 크지 않은가.
而以眇然之身, 養浩然之氣,
작디작은 몸으로 호연지기를 길러
使之渾淪於其間, 不其難乎?
그로 하여금 천지 사이에서 가득 차게 하는 것이 어렵지 않겠는가?
然天地也萬物也, 同一體也,
그러나 천지와 만물은 하나의 몸체이니
人之一身而天地萬物備.
사람의 한 몸에도 천지와 만물은 구비되어 있다.
修其身, 先持其志,
그 몸을 닦는 것은 먼저 뜻을 가져야 하니
持其志, 氣斯可養馴,
뜻을 가지고서 기는 길러질 수 있으니
至於不息不已之地,
쉬지 않고 그치지 않는 경지에 이르면
則所謂眇然之身, 上下與天地同流.
말했던 까마득한 몸이 상하가 천지와 함께 흐른다.
已不與草木禽獸同腐於須臾之頃,
이미 초목금수와 잠깐 사이에 함께 썩지 않고
而垂光於千百載之下.
100~1000년 이후에도 빛을 드리우리라.
其所以不與草木禽獸同腐於須臾之頃,
초목금수와 잠깐 사이에 함께 썩지 않고
而垂光於千百載之下者,
100~1000년 이후에도 빛을 드리울 수 있는 까닭은
卽浩然之氣充盈乎大寓者也.”
곧 호연지기가 큰 모퉁이에 가득 찼기 때문이다.”
호연지기에 대해 풀이해본 거지 해석해본 건 아니다
或曰: “孟軻氏以大剛直爲說,
어떤 이가 말했다. “맹가는 대(大)와 강(剛)과 직(直)으로 말했지만
今子以彊純釋浩然, 何歟?”
지금 그대는 강(彊)과 순(純)으로 호연을 해석한 것은 왜인가?”
予曰: “箋其義, 不箋其語,
내가 말했다. “뜻을 풀어낸 것이지 말을 풀어낸 것은 아니다.
予學如此.”
내가 배운 게 이와 같다.”
鄭君性脩潔慷慨, 有志當世事,
정군은 성품이 수양되어 있고 청결하며 강직하여 당대의 일에 뜻은 있었지만
懼其所以養氣者或未至焉.
기를 기르는 방법엔 혹 이르지 못할까 걱정했다.
故以浩然字之, 庶有以實其名.
그러므로 호연으로 자를 지어주니 그 이름을 실천하길 바란다.
其赴甫州也, 求贈言,
그가 보주에 취임하며 말을 주길 구하기에
遂書以冠餞行詩之首. 『牧隱文藁』 卷之十
마침내 써서 전송하는 시의 첫 머리에 둔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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