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를 보며 천인합일을 꿈꾸다
관어대소부(觀魚臺小賦)
이색(李穡)
觀魚臺在寧海府, 臨東海, 石崖下游魚可數, 故以名之. 府吾外家也, 爲作小賦, 庶幾傳之中原耳.
丹陽東岸, 日本西涯, 洪濤淼淼, 莫知其他. 其動也如山之頹, 其靜也如鏡之磨. 風伯之所橐鑰, 海若之所室家. 長鯨群戲而勢搖大空, 鷙鳥孤飛而影接落霞.
有臺俯焉, 目中無地. 上有一天, 下有一水. 茫茫其間, 千里萬里. 惟臺之下, 波伏不起. 俯見群魚, 有同有異, 圉圉洋洋, 各得其志. 任公之餌夸矣, 非吾之所敢擬; 太公之釣直矣, 非吾之所敢冀.
嗟夫我人, 萬物之靈. 忘吾形以樂其樂, 樂其樂以歿吾寧. 物我一心, 古今一理. 孰口腹之營營, 而甘君子之所棄. 慨文王之旣歿, 想於牣難跂. 使夫子而乘桴, 亦必有樂于此.
惟魚躍之斷章, 迺中庸之大旨, 庶沈潛以終身, 幸摳衣於子思子.
予年十七歲, 赴東堂賦和氏璧, 二十一歲, 入燕都國學月課, 吳伯尙先生賞予賦, 每日可敎. 旣歸, 赴癸巳東堂賦「黃河」, 鄕試賦「琬圭」, 會試賦「九章」, 今皆不錄.
非古文也, 非吾志也, 非吾志而出身于此, 非此無階於榮養耳. 嗚呼悲哉 『牧隱詩藁』 卷之一
해석
觀魚臺在寧海府, 臨東海,
관어대는 영해부에 있는데 동해에 임해 있고
石崖下游魚可數, 故以名之.
벼랑 아래에 노는 물고기를 셀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름 지은 것이다.
府吾外家也, 爲作小賦,
영해부는 우리의 외가로 소부를 지어
庶幾傳之中原耳.
중국에 전해지길 바랄 뿐이다.
丹陽東岸 日本西涯 | 단양은 동쪽 해안이고 일본의 서쪽 물가에 있으니 |
洪濤淼淼 莫知其他 | 물결의 파도가 아득해 다른 건 알지 못한다네. |
其動也如山之頹 | 파도가 치면 산을 무너뜨릴 거 같고 |
其靜也如鏡之磨 | 고요해지면 거울을 갈아놓은 것 같지. |
風伯之所橐鑰 | 풍백이 풀무질하는 곳이자 |
海若之所室家 | 해약의 집이라네. |
長鯨群戲而勢搖大空 | 긴 고래 무리지어 노니 기세가 큰 공중을 흔들고 |
鷙鳥孤飛而影接落霞 | 사나운 새 홀로 나니 그림자가 낙조에 닿았네. |
有臺俯焉 目中無地 | 관어대에서 굽어보니 눈에 땅이 없고 |
上有一天 下有一水 | 위로는 하나의 하늘이 있고 아래론 하나의 물만 있지. |
茫茫其間 千里萬里 | 그 사이 까마득해 천리인지 만리인지. |
惟臺之下 波伏不起 | 오직 관어대 아래만이 파도가 수그러져 일어나지 않지. |
俯見群魚 有同有異 | 관어대에서 뭇 물고기 굽어보니 같은 듯 다른 듯 |
圉圉洋洋 各得其志 | 비실비실 대기도 힘차게 다니기도 각각 그 뜻을 얻었구나. |
任公之餌夸矣 | 임공【임공(任公):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나오는 황당무계한 이야기이다. 선진(先秦) 때 임공자(任公子)라는 사람이 50필의 거세한 소를 미끼로 매달아 회계산(會稽山)에 걸터앉아서 동해 바다로 낚시줄을 던졌는데, 1년 뒤에 큰 고기를 낚아 이를 건육(乾肉)으로 만든 뒤 절하(浙河) 이동, 창오(蒼梧) 이북의 사람들을 질리도록 먹여주었다는 내용이다.】의 미끼는 거대하니 |
非吾之所敢擬 | 내가 감히 본뜰 게 아니고 |
太公之釣直矣 | 태공의 낚시는 곧으니 |
非吾之所敢冀 | 내가 감히 바랄 게 아니로다. |
嗟夫我人 萬物之靈 | 아! 우리 사람들은 만물의 영장이니 |
忘吾形以樂其樂 | 나의 형체를 잊고 즐거움을 즐기고 |
樂其樂以歿吾寧 | 즐거움을 즐기다 편안함에 죽으리. |
物我一心 古今一理 | 사물과 나는 하나의 마음이고 고금은 하나의 이치이니 |
孰口腹之營營 | 누가 입과 배를 위해 악착같이 살아 |
而甘君子之所棄 | 군자에게 버려지는 걸 달게 여기리오. |
慨文王之旣歿 | 문왕이 이미 죽은 걸 개탄스러우니 |
想於牣難跂 | 물고기 가득하길 상상하나 힘쓰기 어렵고 |
使夫子而乘桴 | 부자에게 뗏목 타게 한다면 |
亦必有樂于此 | 또한 반드시 여기에 즐거움 있으리. |
惟魚躍之斷章 | 오직 ‘물고기 뛴다’는 잘라진 장이 |
迺中庸之大旨 | 중용의 큰 뜻이니, |
庶沈潛以終身 | 종신토록 무젖고 잠긴다면 |
幸摳衣於子思子 | 다행히 자사자에 따르게 되리【구의(摳衣): 옷자락을 걷어든다는 것은 자기의 옷자락을 걷어들고 어른의 뒤를 따라간다는 뜻으로, 흔히 스승을 모신다는 뜻으로 쓰인다.】. |
予年十七歲, 赴東堂賦和氏璧,
내 나이 17살에 동당시【동당(東堂): 식년과(式年科) 또는 증광시(增廣試) 때 강경시험(講經試驗)을 보는 곳을 말하며, 후엔 식년과나 증광시를 일컫는 말이 됐다.】에 응시하여 「화씨벽부(和氏璧賦)」를 지었고
二十一歲, 入燕都國學月課,
21살엔 연경의 국학에 들어가 월과를 보았는데
吳伯尙先生賞予賦, 每日可敎.
오백상 선생이 일찍이 나의 부를 칭찬하며 매일 “가르칠 만하다”고 했다.
旣歸, 赴癸巳東堂賦「黃河」, 鄕試賦「琬圭」,
이미 귀국해선 계사(1353)년 동당시에 응시하여 「황하부」를 지었고 향시에선 「완규부」를 지었으며
會試賦「九章」, 今皆不錄.
회시에선 「구장부」를 지었으니 지금은 모두 기록하지 않겠다.
非古文也, 非吾志也,
이 글은 고문도 아니고 나의 의지에 따른 것도 아니니
非吾志而出身于此,
나의 뜻도 아니며 이것으로 벼슬하게 된 것【출신(出身): 조선시대 때 벼슬길에 처음 나서는 사람 또는 과거 시험의 합격자를 가리키는 말. 아직 벼슬에 나아가지 못한 사람을 가리킨다.】은
非此無階於榮養耳.
이것이 아니면 영화롭게 되고 봉양할 계제(階梯)가 없었기 때문일 뿐이다.
嗚呼悲哉 『牧隱詩藁』 卷之一
아! 슬프다.
인용
'산문놀이터 > 삼국&고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색 - 답문(答問) (0) | 2020.08.12 |
---|---|
이색 - 사변(辭辨) (0) | 2020.08.12 |
이색 - 호연설 증정보주별(浩然說 贈鄭甫州別) (0) | 2020.08.12 |
이색 - 지현설(之顯說) (0) | 2020.08.12 |
이색 - 가명설(可明說) (0) | 2020.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