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 세 그루 홰나무를 심은 이유
삼괴당명(三槐堂銘)
소식(蘇軾)
하늘은 그 사람의 행위에 따라 반응한다
자신의 행동에 따라 하늘은 반응하는가?
天可必乎? 賢者不必貴, 仁者不必壽. 天不可必乎? 仁者必有後. 二者將安取衷哉?
吾聞之, 申包胥曰: “人衆者勝天, 天定亦能勝人.”
世之論天者皆不待其定而求之. 故以天爲茫茫, 善者以怠, 惡者以肆, 盜跖之壽, 孔ㆍ顔之厄, 此皆天之未定者也.
松栢生於山林, 其始也, 困於蓬蒿, 厄於牛羊, 而其終也, 貫四時閱千歲而不改者, 其天定也. 善惡之報, 至於子孫, 則其定也久矣. 吾以所見所聞而考之, 其可必也審矣.
진국공을 통해 본 하늘은 기필할 수 있다는 예시
國之將興, 必有世德之臣, 厚施而不食其報, 然後其子孫, 能與守文太平之主, 共天下之福.
故兵部侍郞晉國王公, 顯於漢周之餘, 歷事太祖太宗, 文武忠孝, 天下望以爲相, 而公卒以直道, 不容於時.
蓋嘗手植三槐於庭曰: “吾子孫, 必有爲三公者.” 已而. 其子魏國文正公, 相眞宗皇帝於景德祥符之間, 朝廷淸明, 天下無事之時, 享其福祿榮名者, 十有八年. 今夫寓物於人, 明日而取之, 有得有否, 而晉公修德於身, 責報於天, 取必於數十年之後, 如持左契, 交手相付, 吾以是, 知天之果可必也.
의민공의 자손은 복을 받으리
吾不及見魏公, 而見其子懿敏公, 以直諫, 事仁宗皇帝, 出入侍從將帥三十餘年, 位不滿其德, 天將復興王氏也歟. 何其子孫之多賢也.
世有以晉公, 比李棲筠者, 其雄才直氣, 眞不相上下, 而棲筠之子吉甫, 其孫德裕, 功明富貴, 略如王氏等, 而忠信仁厚, 不及魏公父子, 由此觀之, 王氏之福, 蓋未艾也.
懿敏公之子鞏, 與吾遊, 好德而文, 以世其家, 吾是以錄之.
銘曰: “嗚呼休哉. 魏公之業, 與槐俱萌. 封植之功, 必世乃成. 旣相眞宗, 四方砥平, 歸視其家, 槐陰滿庭. 吾儕小人, 朝不謀夕, 相時射利, 皇恤厥德. 庶幾僥倖, 不種而穫. 不有君子, 其何能國. 王城之東, 晉公所廬, 鬱鬱三槐, 惟德之符. 嗚呼, 休哉.”
해석
자신의 행동에 따라 하늘은 반응하는가?
天可必乎?
하늘은 기필할 수 있는가?
賢者不必貴, 仁者不必壽.
어진 이라고 반드시 귀해지는 건 아니고 인한 사람이라고 반드시 장수하는 건 아니다.
天不可必乎?
하늘은 기필할 수 없는가?
仁者必有後.
인한 사람이야 반드시 후손이 있다.
二者將安取衷哉?
두 가지 중 장차 어떤 것을 취해 절충해야 하는가?
吾聞之, 申包胥曰:
내가 들어보니 초나라 대부인 신포서【신포서(申包胥): 춘추시대 초(楚)나라 대부로 성(姓)이 공손(公孫)인데 신읍(申邑)에 봉해졌기 때문에 신포서(申包胥)로 불렸다. 오자서(伍子胥)와 친하였는데, 오원(伍員)이 형과 아버지가 무고하게 평왕(平王)에게 살해당하고 오(吳)나라로 도망갈 적에 신포서(申包胥)를 만나 반드시 초(楚)나라에 복수하여 멸망시킬 것을 맹세하자, 신포서(申包胥)가 “그대는 반드시 멸망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초(楚)나라를 부흥시키겠다.”라고 하였다. 뒤에 오원(伍員)이 오(吳)나라 군대(軍隊)를 이끌고 초(楚)나라를 공격하여 수도 영(郢)을 함락시키자, 신포서(申包胥)는 진(秦)나라에 가서 구원병을 요청하면서 진(秦)나라 조정에서 일곱 밤낮을 통곡하니, 마침내 진(秦) 애공(哀公)이 그의 정성에 감동하여 진(秦)나라의 대군을 보내 초(楚)나라를 구원해주었다. 이 내용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정공(定公) 4․5년 및 《전국책(戰國策)》ㆍ《사기(史記)》 등에 보인다. 본문의 신포서(申包胥)의 말은 오원(伍員)이 초(楚)나라의 수도 영(郢)에 들어가 평왕(平王)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의 시신에 3백 대의 채찍질을 가하자, 신포서(申包胥)가 오원(伍員)에게 사람을 보내어 전한 말로, 《사기(史記)》 〈오자서전(伍子胥傳)〉에 “그대의 복수는 너무 심하지 않은가. 내가 들으니 ‘사람이 많으면 천도(天道)를 이길 수 있으나 천도(天道)가 정해지면 또한 능히 사람을 패망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지금 그대는 평왕(平王)의 옛 신하로서 직접 북면(北面)하여 그를 섬겼는데, 이제 죽은 임금을 이렇게 욕보이니, 이 어찌 천도(天道)를 무시하는 지극함이 아니겠는가?[子之報讐 其以甚乎 吾聞之 人衆者勝天 天定亦能破人 今子故平王之臣 親北面而事之 今至于僇死人 此豈其無天道之極乎]”라고 보인다.】가 말했다.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기지만 하늘이 정하면 또한 사람을 이길 수 있다.”
世之論天者皆不待其定而求之.
세상에서 하늘을 논의하는 사람들은 모두 정해지길 기다리지 않고서 구한다.
故以天爲茫茫,
그러므로 하늘을 아득하다 여겨
善者以怠, 惡者以肆,
선한 사람은 이 때문에 게을러지고 악한 사람은 이 때문에 방자하게 행동하며
도척의 장수와 공자ㆍ안연의 곤액은
此皆天之未定者也.
이것은 모두 하늘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松栢生於山林, 其始也,
송백이 산림에서 태어나 처음엔
困於蓬蒿, 厄於牛羊,
쑥에 곤궁했고 소와 양에 곤액을 당했으며
而其終也, 貫四時閱千歲而不改者,
마침내는 사계절을 관통하고 1000년을 보아도 고쳐지지 않았으니
其天定也.
이것은 하늘이 정한 것이다.
善惡之報, 至於子孫,
선악의 응보는 자손에게 이른다면
則其定也久矣.
그것은 하늘이 정함이 오랜 것이다.
吾以所見所聞而考之,
내가 보고 들은 것으로 고찰해보면
其可必也審矣.
기필할 수 있는 게 분명하다.
진국공을 통해 본 하늘은 기필할 수 있다는 예시
國之將興, 必有世德之臣,
나라가 장차 흥하려 할 땐 반드시 대대로 덕이 있는 신하가
厚施而不食其報,
후하게 베풀되 응보를 먹지 않는 사람이 있은 후에
然後其子孫, 能與守文太平之主, 共天下之福.
자손이 문덕(文德)을 지켜 태평성대의 군주와 천하의 복을 공유하게 된다.
故兵部侍郞晉國王公,
고 병부시랑 진국왕공【왕공(王公): 왕호(王祜)로 자가 경숙(景叔)이고 대명(大名) 신현(莘縣) 사람이다. 후한(後漢)과 후주(後周)에서 벼슬하다가 송(宋) 태조(太祖)에게 등용되어 지제고(知制誥),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 등을 역임하였는데, 직언을 하다가 태조(太祖)의 노여움을 사서 화주(華州)에 안치(安置)되었으며, 태종(太宗)이 즉위한 뒤에 병부시랑(兵部侍郞)에 제수되었다.】은
顯於漢周之餘, 歷事太祖太宗
후한과 후주의 뒤에 이름을 드러내 태조와 태종을 일일이 섬기고
文武忠孝, 天下望以爲相,
문무와 충효로 천하가 재상이 되길 바랐지만
而公卒以直道, 不容於時.
공은 마침내 정직한 도 때문에 당시에 용납되지 못했다.
蓋嘗手植三槐於庭曰:
대체로 일찍이 손수 정원에 세 그루의 홰나무를 심고 말했다.
“吾子孫, 必有爲三公者.”
“나의 자손 중 반드시 삼공이 될 이가 있으리라.”
已而. 其子魏國文正公,
이윽고 아들 위국 문정공이
相眞宗皇帝於景德祥符之間,
진종황제가 경덕과 상부【경덕상부(景德祥符): 모두 진종(眞宗)의 연호로 경덕(景德)은 1004년부터 1007년까지이고 상부(祥符)는 대중상부(大中祥符)의 줄임말로 1008년부터 1016년까지이다.】 연간에 도와
朝廷淸明, 天下無事之時,
조정이 청명하고 천하가 무사한 때에
享其福祿榮名者, 十有八年.
복록과 영화로운 명성 누리기를 18년째였다.
今夫寓物於人, 明日而取之,
이제 물건을 남에게 빌려주고 다음 날 가지려해도
有得有否,
갖게 될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而晉公修德於身, 責報於天,
진국공(晉國公)은 몸으로 덕을 닦아 하늘에 보답하길 바랐지만
取必於數十年之後,
수십년 후에 기필함을 취했으니
如持左契, 交手相付,
마치 좌계를 잡고 손을 엇갈려 서로 주듯 했으니【여지좌계 교수상부(如持左契 交手相付): 좌계(左契)는 좌권(左券)으로 채권(債券)을 증빙하는 신표(信標)이다. 고대에 계약을 맺을 적에 계약의 내용을 적은 신표(信標)를 좌(左)와 우(右)로 나누어 당사자끼리 하나씩 갖고 뒤에 채권(債券)의 증빙으로 삼았는데, 이때 좌측 부신(符信)을 채권자가 소유하고 이를 좌권(左券)이라 하였다. 교수상부(交手相付)는 교부(交付)와 같은 말로, 채무자는 자신의 채무를 갚고 채권자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좌권(左券)을 채무자에게 넘겨주는 것을 이른다.】
吾以是, 知天之果可必也.
나는 이 때문에 하늘은 과연 기필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의민공의 자손은 복을 받으리
吾不及見魏公,
나는 위공을 뵘엔 미치지 못했고
而見其子懿敏公,
아들인 의민공【의민공(懿敏公): 왕단(王旦)의 아들 왕소(王素)로 자가 중의(仲儀)이며, 인종(仁宗) 천성(天聖) 5년(1027)에 학사원(學士院)에 응시하여 진사(進士)에 급제하고 출사하여 인종(仁宗)을 시종하였으며, 외직에 있으면서 선정(善政)을 베풀어 명성이 있었고 직간(直諫)을 잘하였다. 뒤에 의민(懿敏)이란 시호를 받았으며 벼슬이 공부상서(工部尙書)에 이르렀다. 『송사(宋史)』에 전(傳)이 있다.】을 뵈었는데
以直諫, 事仁宗皇帝,
정직한 간언으로 인종황제를 섬겼고
出入侍從將帥三十餘年,
출입하며 시종관과 장수가 된 지 30여년이었지만
位不滿其德, 天將復興王氏也歟.
지위가 그 덕을 채우지 못했으니 하늘이 장차 다시 왕씨를 부흥시키려는가?
何其子孫之多賢也.
어째서 자손들 중 어진 이가 많은가?
世有以晉公, 比李棲筠者,
세상에는 진국으로 이서균【이서균(李棲筠): 719~776. 당(唐) 나라 숙종(肅宗)과 대종(代宗) 때의 문신으로 자(字)가 정일(貞一)이다. 현종(玄宗) 천보(天寶) 7년(748)에 진사(進士)로 출사하여 숙종(肅宗) 때에 급사중(給事中)에 이르렀으며, 대종(代宗)이 재상으로 삼고자 하였으나 당시의 재상 원재(元載)가 시기하여 실행하지 못하였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에 비교하는 사람이 있으니
其雄才直氣, 眞不相上下,
뛰어난 재주와 정직한 기운이 참으로 서로 상하가 없고
而棲筠之子吉甫, 其孫德裕, 功明富貴,
서균의 아들 길보와 손자 덕유의 공명과 부귀가
略如王氏等,
대략 왕씨와 대등하지만
而忠信仁厚, 不及魏公父子,
충신과 인후함은 위공 부자에 미치질 못하니
由此觀之, 王氏之福,
이로 말미암아 보면 왕씨의 복이
蓋未艾也.
대체로 다하지 않은 것이다.
懿敏公之子鞏, 與吾遊,
의민공의 아들인 공은 나와 교유하는데
好德而文, 以世其家,
덕을 좋아하고 문장력이 있어 그 집안에 대대로 이어가니
吾是以錄之.
나는 이 때문에 그것을 기록했다.
銘曰: “嗚呼休哉. 魏公之業, 與槐俱萌. 封植之功, 必世乃成. 旣相眞宗, 四方砥平, 歸視其家, 槐陰滿庭. 吾儕小人, 朝不謀夕, 相時射利, 皇恤厥德. 庶幾僥倖, 不種而穫. 不有君子, 其何能國. 王城之東, 晉公所廬, 鬱鬱三槐, 惟德之符. 嗚呼, 休哉.”
다음과 같이 새긴다.
嗚呼休哉 | 아! 아름답다! |
魏公之業 與槐俱萌 | 위공의 업이 홰나무와 함께 싹텄구나. |
封植之功 必世乃成 | 흙을 북돋고 심는 공이 반드시 대대로 이루어지리. |
旣相眞宗 四方砥平 | 이미 진공을 도와 사방이 숫돌처럼 평평해졌고【지평(砥平): 도로가 평평하다는 뜻으로, 『시경(詩經)』 소아(小雅) 「대동(大東)」에 “주 나라 길이 숫돌 같으니, 곧기가 화살 같도다[周道如砥 其直如矢].” 하였다.】 |
歸視其家 槐陰滿庭 | 돌아가 그 집을 보니 홰나무 그늘이 뜰에 가득하네. |
吾儕小人 朝不謀夕 | 우리들은 소인이라 아침에 저녁 도모하지 못하고 |
相時射利 皇恤厥德 | 때를 보고서 이익을 맞추려 하니 어느 겨를에 그 덕을 근심하리오. |
庶幾僥倖 不種而穫 | 거의 요행히 씨 뿌리지 않고 수확하려 하니 |
不有君子 其何能國 | 군자가 있지 않으면 어찌 나라를 다스리리오? |
王城之東 晉公所廬 | 왕성의 동쪽, 진공의 집이 있으니 |
鬱鬱三槐 惟德之符 | 울창한 세 그루의 홰나무 오직 덕의 증표로다. |
嗚呼休哉 | 아! 아름답다!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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