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인재 얻기의 어려움
舜有臣五人而天下治.
治, 去聲.
○ 五人, 禹ㆍ稷ㆍ契,ㆍ皐陶ㆍ伯益.
武王曰: “予有亂臣十人.”
書『泰誓』之辭. 馬氏曰: “亂, 治也.” 十人, 謂周公旦ㆍ召公奭ㆍ太公望ㆍ畢公ㆍ榮公ㆍ太顚ㆍ閎夭ㆍ散宜生ㆍ南宮适, 其一人謂文母. 劉侍讀以爲子無臣母之義, 蓋邑姜也. 九人治外, 邑姜治內.
或曰: “亂本作乿, 古治字也.”
孔子曰: “才難, 不其然乎? 唐ㆍ虞之際, 於斯爲盛. 有婦人焉, 九人而已.
稱孔子者, 上係武王君臣之際, 記者謹之. 才難, 蓋古語, 而孔子然之也. 才者, 德之用也. 唐虞, 堯舜有天下之號. 際, 交會之間. 言周室人才之多, 惟唐虞之際, 乃盛於此. 降自夏商, 皆不能及, 然猶但有此數人爾, 是才之難得也.
三分天下有其二, 以服事殷. 周之德, 其可謂至德也已矣.”
『春秋傳』曰: “文王率商之畔國以事紂”, 蓋天下歸文王者六州, 荊ㆍ梁ㆍ雍ㆍ豫ㆍ徐ㆍ揚也. 惟靑ㆍ鬪ㆍ冀, 尙屬紂耳.
范氏曰: “文王之德, 足以代商. 天與之, 人歸之, 乃不取而服事焉, 所以爲至德也. 孔子因武王之言而及文王之德, 且與泰伯, 皆以至德稱之, 其指微矣.”
或曰: “宜斷三分以下, 別以孔子曰起之, 而自爲一章.”
해석
舜有臣五人而天下治.
순임금은 신하 다섯 사람을 두시니 천하가 다스려졌다.
治, 去聲.
○ 五人, 禹ㆍ稷ㆍ契,ㆍ皐陶ㆍ伯益.
다섯 사람은 우ㆍ직ㆍ설ㆍ고요ㆍ백일이다.
武王曰: “予有亂臣十人.”
무왕은 “나는 다스리는 신하 열 사람을 두었다.”라고 말했다.
書『泰誓』之辭.
『태서』에 쓰여 있는 말이다.
馬氏曰: “亂, 治也.”
마씨가 말했다. “난(亂)은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十人, 謂周公旦ㆍ召公奭ㆍ太公望ㆍ畢公ㆍ榮公ㆍ
열 사람은 주공 단, 소공 석, 태공망, 필공, 영공,
태전, 굉요, 산의생, 남궁괄, 한 사람은 문왕의 비(妃)다.
劉侍讀以爲子無臣母之義,
유시독은 자식으로 어머니를 신하 삼는 뜻은 없다고 했으니
蓋邑姜也.
대개 무왕의 아내인 읍강일 것이다.
九人治外, 邑姜治內.
아홉 사람은 외치를 했고, 읍강은 내치를 했다.
或曰: “亂本作乿, 古治字也.”
혹자는 말했다. “‘난(亂)’은 본래 ‘치(乿)’이니 ‘치(治)’의 옛 글자다.”
孔子曰: “才難, 不其然乎? 唐ㆍ虞之際, 於斯爲盛. 有婦人焉, 九人而已.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재주 있는 이 얻기 어렵다는 게 그렇지 않은가? 요순 교체기에 이에 성대하였지만 열 사람 중 부인이 있었으므로 아홉 사람일 뿐이다.
稱孔子者, 上係武王君臣之際,
공자라고 말한 것은 위에서 무왕과 연계지어 군신 간이기에
記者謹之.
기록한 사람이 삼간 것이다.
才難, 蓋古語, 而孔子然之也.
재난(才難)는 대개 옛날 말일 것이다. 공자는 그렇다고 여겼다.
才者, 德之用也.
재(才)는 덕의 쓰임이다.
唐虞, 堯舜有天下之號.
당우(唐虞)는 요와 순이 천하를 소유했음의 칭호다.
際, 交會之間.
제(際)는 사귀며 만나는 사이다.
言周室人才之多,
주나라 왕실은 인재가 많아
惟唐虞之際, 乃盛於此.
오직 요순 교체기에 곧 주나라 때보다 성대하였다.
降自夏商, 皆不能及,
하나라와 상나라로 내려오면서는 모두 미치질 못했다.
然猶但有此數人爾,
그러나 오히려 다만 이 몇 사람이 있었을 뿐이니
是才之難得也.
이것이 재주 있는 이를 얻기 어렵다는 말이다.
三分天下有其二, 以服事殷. 周之德, 其可謂至德也已矣.”
삼등분 된 천하에 그 둘을 소유하셨는데도 복종하며 은나라를 섬겼으니, 주나라의 덕은 지극한 덕이라 이를 만하다.”
『春秋傳』曰: “文王率商之畔國以事紂”,
『춘추전』에서 말했다. “문왕이 상나라를 배반한 나라를 통솔하고 주왕을 섬겼다.”고 하니,
蓋天下歸文王者六州, 荊ㆍ梁ㆍ雍ㆍ豫ㆍ徐ㆍ揚也.
대개 천하에 문왕에게 귀의한 나라는 여섯 나라로 형, 양, 옹, 예, 서, 양이다.
惟靑ㆍ鬪ㆍ冀, 尙屬紂耳.
오직 청, 투, 기만이 아직도 주왕에 속해 있었을 뿐이다.
范氏曰: “文王之德, 足以代商.
범조우(范祖禹)가 말했다. “문왕의 덕은 상나라를 정벌할 만하여
天與之, 人歸之,
하늘이 주고 사람이 귀의했지만
乃不取而服事焉, 所以爲至德也.
곧바로 취하지 않고 복종하며 섬겼으니 지극한 덕이 된 까닭이다.
孔子因武王之言而及文王之德,
공자는 무왕의 말을 인하여 문왕의 덕을 언급했고
且與泰伯, 皆以至德稱之, 其指微矣.”
또한 태백과 함께 다 지극한 덕으로 칭찬했으니, 그 맛이 은미하다.”
或曰: “宜斷三分以下,
혹자는 말했다. “마땅히 ‘삼분(三分)’ 이하의 문장은 잘라내
別以孔子曰起之, 而自爲一章.”
별도로 ‘공자왈(孔子曰)’로 시작하여 스스로 한 장이 되도록 했어야 한다.”
○ 인재의 얻기 어려움을 재난(才難)이라고 한다. ‘논어’ ‘태백(泰伯)’의 이 장(章)에서 나왔다. 공자의 말은 더 이어지지만 일부만 들었다. 고종 8년(1871년)의 삼일제는 음력 3월 3일에 치러야 할 것을 3월 16일에 치렀는데, 그때 고종은 시제(詩題)로 이 첫 구절을 내걸었다.
순(舜)은 선양(禪讓)의 방식으로 요(堯)임금의 뒤를 이은 성스러운 천자다. ‘서경’에 보면 우(禹)는 치수(治水), 후직(后稷)은 농정(農政), 설(契)은 민정(民政), 고요(皐陶)는 사법, 백익(伯益)은 수렵을 맡았다. 한편 무왕은 아버지 문왕을 이어 주나라 군주가 되어 쇠망한 은나라를 타도했다. ‘서경’ ‘태서(泰誓)·중’에서 무왕은 “내게는 다스리는 신하 열 명이 있는데, 그들과 나는 마음이 같고 덕이 같다[予有亂臣十人, 同心同德]”고 했다. 난신(亂臣)은 어지러운 상황을 잘 다스리는 신하라는 뜻이다. 그 열 명은 주공(周公) 소공(召公) 태공(太公) 필공(畢公) 영공(榮公) 태전(太顚) 굉요(굉夭) 산의생(散宜生) 남궁괄(南宮括) 문모(文母·문왕의 비)이다. 문모 대신 무왕의 왕후 읍강(邑姜)을 꼽기도 한다. 불기연호(不其然乎)는 ‘그것이 정말로 그렇지 아니한가’라는 뜻의 반어적 표현이다.
재난(才難)이란 말은 예부터 전하는 말이다. 성호 이익은 “오늘날에는 인재를 구하기 어려움이 더욱 심하여, 천하를 아울러 구제하는 방법은 차치하고 구구하게 책에 씌어 있는 것에 힘쓰는 사람도 드물다”고 했다. 우리 시대는 어떤가, 되물어볼 일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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