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낸 후에야 알 수 있는 수업의 의미
노력이라는 것을 일종의 상거래쯤으로 여기는 사람은 이 같은 시스템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노력하게 만드는 이상, 노력한 이후에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사전에 보여달라. 그러면 노력하는 데 훨씬 인센티브가 될 것’이라고 말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착각입니다. 원래 ‘인센티브’라는 것은 수업과는 무관한, 본질적으로 ‘반수업적’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왜 반수업적인가 하면, 인센티브incentive(동기, 장려금, 보상, 격려 등을 의미)의 가치는 노력하기 전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만 비로소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노력하면 돈을 주겠다’는 제안이 효과적인 것은, 노력하기 이전에 ‘돈의 가치’를 미리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수업이라는 것은 그런 게 아닙니다. 수업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란, 수업하기 전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니까요. -19쪽
결승점을 알 수 없는 미지의 트랙을 달린다
달리는 동안에 ‘나만의 특별한 트랙’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새로운 트랙, 다른 코스를 계속하여 달립니다. 더불어 어느 수준에 다다르면, 또다시 새로운 트랙이 눈앞에 나타나지요. 그렇게 또 다른 트랙을 달리기 시작하는 것이죠.
트랙은 매번 길이도 감촉도 제각기 다릅니다. 본디 ‘어디를 향하는지’가 다릅니다. 불현 듯 정신을 차리고 보면, 아무도 없는 곳을 홀로 달리고 있습니다. 한때 트랙을 함께 달리던 경주 상대는 어디로 갔는지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수업이라는 건 그런 것입니다. -23쪽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의 본뜻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첫 단추를 잘못 채웠다’는 말도 역시 상처 입지 않은 완벽한 상태의 자신을 ‘표준적인 나’로 설정하고, 지금의 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건강이 좋지 않거나 장기 기능이 온전하지 않거나 기분이 우울한)을 ‘적에 의한 부정적인 간섭의 결과’로 설명하는 것이지요. -40쪽
내 신체를 지배한다는 만족감에 대해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다이어트가 가져오는 최대 희열은 자신의 노력이 즉각적으로 수치화된 데이터로 표시된다는 데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의지로 신체를 실제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 분명한 수치로 표시되었을 때, 그것이 가져오는 ‘나는 내 신체를 지배한다’는 자부심과 만족감은 실로 강렬하지요. 그 결과, 그들은 다이어트에 ‘중독’되어 버립니다. -75쪽
무지란 배우려는 것을 방해하는 힘
어느 철학자(롤랑 바르트)에 의하면, 무지란 지식의 결핍이 아니라 지식으로 머리가 빼곡하게 채워져 새로운 지식을 더 이상 받아들일 여지가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85쪽
무지를 막는 교육
대다수 사람들은 학생들의 무지를 두고 지식 부족 때문이라고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가르치는 입장이 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학생들은 지식이나 정보, 기술이 부족한 게 아닙니다. 인간은 내버려 둬도 놀랄 만큼 엄청난 기세로 지식을 익히고 정보를 받아들이고 기술을 습득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배움’에 대한 근원적인 충동이 분명 존재합니다.
무지란, 그것을 방해하는 힘이지요. 배움을 저지하고 억제하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대학 교육이란, 무언가 유용한 지식이나 기술을 ‘덧셈’으로 보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배움’에 대한 충동의 자연스러운 발로를 방해하는, 학생들 자신의 ‘무지에 대한 안주’를 해제하는 것이지요. -87쪽
상대의 성장을 방해하고 싶은 이유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은 어렵고 노고와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무언가를 ‘부수는’ 것은 용이할 뿐 아니라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0년에 걸쳐 정성껏 지은 건물이 하룻밤의 화재로 잿더미로 돌아가듯이, 혹은 10년에 걸쳐 쌓아 올린 신뢰관계가 건성으로 툭 던진 말 한 마디로 순식간에 무너지듯이, 만드는 것은 어렵고 부수는 것은 간단합니다. 따라서 상대적 우열ㆍ강약ㆍ승패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사람은 무의식중에 같은 길을 나아가는 수련자들의 성장을 방해하게 됩니다. -102~103쪽
액자에 도움을 받기도, 구속당하기도 한다
옛날 제우크시스와 파라시오스라는 두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누가 더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그 기술을 겨루게 되었습니다.
제우크시스는 벽에 진짜와 똑같은 포도 그림을 그렸습니다. 새가 날아와 그 포도를 쪼아 먹을 만큼 그림은 사실적이었지요. 그 완성도에 만족한 제우크시스는 기세등등하게 “자, 이번에는 당신 차례야”라며 파라시오스를 돌아봤습니다.
그런데 파라시오스가 벽에 그린 그림에는 장막이 드리워져 있어 그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우크시스는 초조해하며 ‘그 덮개를 벗기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때 승패가 결정되어 버렸습니다. 파라시오스는 벽 위에 ‘장막 그림’을 그렸던 것이죠. 118~119
(…)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솜씨를 겨룰 때에 ‘그림을 덮은 장막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을 리 없다는 제우크시스의 ‘상식’이, 실제로 다가가 자세하게 살펴보면 서툰 붓질에 세밀한 곳의 데생이 잘못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파라시오스의 장막 그림을 ‘장막 그 자체’로 오인하게 했습니다.
결국 가까이서 잘 보면 오인할 리 없는 장막 그림에 압도적인 현실감을 부여한 것은 제우크시스 자신입니다. 119~120쪽
‘지금 여기 나’에서 벗어나기
명상이란, 예비적 고찰에서 살펴보았듯이 ‘액자 설정’에 관한 기법입니다. ‘지금 여기 나’라는 부동의 정점에서 벗어나 ‘지금’이 아닌 시간, ‘여기’가 아닌 장소, ‘내’가 아닌 주체의 자리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지금 여기 나’가 조우한 사태를 관찰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이해하고,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을 합니다. 그것이 무도적인 의미의 명상입니다. -130쪽
가장 효율적인 수업법이란
나의 이 해석은 잘못입니다. 나 정도의 수련 단계에서 내린 해석이기에 분명 잘못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서는 이 이론을 끝까지 철저히 밀고 나가고, 그 해석에 근거한 수련법을 궁리하고, 시간을 들여 잘못된 점을 몸소 깨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번거로운 문장 해석이지만, 경험적으로 나는 그것이 가장 효율적인 수업법이라 생각합니다. -139쪽
비상시에는 ‘자아’가 문제가 된다
경상단계(생후 6개월~1년 반에 이르는 유아 발달단계)에 있는 유아가 ‘자아’ 개념을 획득하는 것은 자아라는 게 있는 편이 살아가는 데 유리하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아는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지요.
따라서 자아가 있어 사는 게 불리해지는 상황과 만나면 ‘살아가는 힘’은 자아의 기능을 정지시킨다는 판단을 내립니다.
이야기는 극히 계량적입니다. 승패를 다투지 않고 강약에 구속받지 않는 것은 정신론도 현학적인 韜晦도 아닌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살아가는 데 유리한 선택지’ 중 하나로 제시된 것입니다.
물론 평시에는 ‘자아 기능의 정지’ 같은 긴급지령은 좀처럼 발동하지 않습니다. 평시에는 이기든 지든, 강하든 약하든 죽을 리 없는 생활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지요. 승패를 다투고 강약에 구속당하고 얽매여 있어도 특별히 곤란하지 않은 상황을 ‘평시’라 말합니다.
그러나 그 같은 평시의 마음가짐밖에 모르는 사람은 비상시 적절히 대응할 수 없습니다.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은 물론 집단의 존속을 위협하는 최악의 위험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141쪽
자아를 고집하는 자가 초래하는 재앙
그 경우(파국적인 상황- 천재지변, 공중납치 등 위급한 상황)에 홀로 있는 것과 다수의 사람이 함께 있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생존 확률이 높을까요?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과 함께 위기 상황에 던져지는 편이 혼자 있는 것보다 연명할 확률이 훨씬 높지요. 그것은 보이는 것, 들리는 소리, 냄새, 촉각은 사람이 많을수록 정보량이 많아지기 때문이지요. 정보 수집에 대한 참고자가 많은 만큼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이해는 깊어집니다.
바꿔 말하면, 그때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가져온 감각 정보를 종합한 ‘통일 감각’을 지닌 하나의 협동신체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혼자서는 듣지 못하던 소리가 들리고, 혼자서는 감지하지 못하던 것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은 ‘그 자리의 모든 이를 구성요소로 한 키마이라적 신체’가 그곳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142쪽
자아를 고집하는 자는 파멸을 자초한다
병법자의 일을 방해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을 ‘반-병법자’라 말할 수 있습니다. 승패를 다투고 강약에 구속당하는 것을 평소 일로 삼는 사람입니다.
그는 키마이라적 신체라는 게 있다는 걸 모르고, 그 기능도 유용성도 알지 못합니다. 반-병법자는 자아를 고집합니다. 자기만의 오감이나 가치 판단에 머물고, 자기만의 생존을 우선하고, 타자와의 협동신체 구성을 거부합니다.
그 같은 이기적 개체는 어떤 위기적 상황에서든 반드시 출현합니다. 그리고 모든 할리우드 재난 영화가 가르쳐 주는 것은 그런 인간이 가장 먼저 죽는다는 것입니다.
(…) 이토록 집요하게 공포담이나 파국을 극복해 내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때마다 위기와 만났을 때 자아를 놓지 않는 이기적 인간이 초래하는 재앙과 파멸에 대하여 끊임없이 묘사하는 것은, 정말로 위험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인간이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143~144쪽
평시에 익숙해지면 생기는 일
자기 이익의 추구를 최우선하고, 승패를 다투고 강약에 집착하는 이기적 개체는 평상시 자원 배분의 경쟁에서는 유리합니다. 따라서 평시가 계속 이어지면, 사람들은 자기 이익의 안정적인 확보를 추구하여 점차 반-병법자가 되어 갑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평시는 오래도록 이어지지 않습니다. 어디에선가는 반드시 파국이 찾아오고야 말지요. 그떄에 반-병법자적인 사람들은 파국을 더욱 파국적인 상태로 이끄는 최악의 위험요소가 됩니다. -145쪽
명상, 자아를 벗다
자아라는, 평시에는 유용하지만 위기 시에서는 유해한 ‘액자’ 장치의 탈착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위기에 처했을 때 즉시 ‘자아’를 벗어던질 수 있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명상이란, 앞에서도 말하였듯이 ‘지금 여기 나’라는 정점에서 머무는 자신을 해방하는 것입니다. -146쪽
자아란 목숨을 건 비약으로 성립된다
그런 식으로 거울에 비친 상의 운동을 모방하면서, 거울 속 상의 ‘내면’에 동화해 가는 동안에 어느 날 거울 속의 상과 나의 동화 밀도가 어느 閾値를 뛰어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 순간에 거울 속의 상과 유아는 하나가 됩니다. 거울 속의 상과 유아가 ‘하나가 된 상태’를 ‘자아’라 부르는 것이지요.
자아는 ‘나’가 외부에 있는 타자를 자신이라고 착각하여 인정함으로써 성립합니다.
왜 착각하여 인정하다고 표현하는가 하면, 그곳에 있는 것이 거울이 아니라 유아의 움직임을 완전하게 흉내 내도록 설계된 곰 인형이었다면 유아는 ‘곰 인형으로서의 자아’를 획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152~153쪽
레비나스의 유아적인 신을 바라는 사람들에 대한 연설
당신들은 이제까지 어떤 신을 믿어 왔는가? 선행하는 자에게 상을 주고, 악행하는 자에게는 벌을 내리는 ‘권선징악의 신’인가? 그렇다면 당신들이 믿고 있었던 것은 ‘유아의 신’이다.
권선징악의 신이 완전히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선행은 상을 받고, 악한 일은 곧 처벌받을 것이다. 그러나 신이 모든 인간사에 기적적으로 개입하는 세계에서 인간은 달성해야 할 어떠한 것도 없어진다.
비록 눈앞에서 어떤 악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도 우리는 팔짱을 낀 채 신이 개입하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신이 모든 것을 대행해 주기에 우리는 부정적인 고통 받는 사람이 있어도 꺼림칙하게 생각하지 않고 약자를 도울 의무도 면제받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그처럼 인간을 영원히 유아인 채로 머물게 하는 신을 갈구하고 믿고 있었던 것인가?
보리스의 건물 건축에 담긴 의미
앞에서도 언급한 보리스는 선교사이기도 하여 그가 설계한 건물은 당연히 ‘신앙으로 인도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건물을 실제로 보면 잘 알 수 있는데, 보리스의 건물에는 무수한 어둠이 존재합니다. 생각지 못한 곳에 감춰진 문이 있고, 숨겨진 계단이 있고, 비밀의 방이 있지요. 각각의 방 구조는 제각각 다릅니다.
호기심에 이끌려 문고리를 돌려 낯선 공간에 발을 들여놓은 학생은 그 탐구 과정 끝에 반드시 ‘생각지 못한 곳으로 통하는 문’이나 ‘생각지 못한 경관을 향해 열려 있는 창’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 점에서 보리스는 매우 철저합니다.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 결단한 뒤에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른 자는 ‘생각지 못한 곳으로 통하는 문’이나 ‘그곳 외의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경관’이라는 보상을 반드시 받게 됩니다. -170쪽
인용
우리에겐 한 명의 영웅이 아닌, 다양한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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