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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세기 한시사 연구 - 5. 토론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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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세기 한시사 연구 - 5. 토론문

건방진방랑자 2022. 10. 2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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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토론문

 

정민(한양대)

 

 

1.

16세기 후반 당시풍으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해동강서시파의 공이 적지 않다고 했다. 해동강서시파 또한 두보에 대한 연구가 깊었던 점을 그 증거로 들었다.

 

그리고 박순, 백광훈, 이달 등과 해동강서시파 사이의 사승과 교류를 지적했다. 단순히 해동강서시파의 시인이 두보를 존숭한 사실과 16세기 후반 당시풍의 성향은 그 성격면에서 판연히 다르다. 우리의 관심은 그들이 강서시풍과는 전혀 다른, 두시풍과도 구분되는 낭만적 당시풍으로 선회했다는 점일 뿐인데, 단순히 강서시파와의 계기성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변별이 명확해지지 않는다. 공이 많았다는 말은 16세기 당시풍의 성립에 해동강서시파가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인가? 아니면 해동강서시파의 바탕을 딛고 그 극복과 계기선상에서 16세기 당시풍이 이루어졌다는 정도의 뜻인가? 후자라면 오해의 여지가 있고, 전자라면 문제가 있다.

 

 

2.

점귀부체나 여지지체의 시작(詩作), 강한 기세를 추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설명하였다. 오히려 이런 잡체 형식의 시체는 당시 널리 성행했던 잡체시의 형식 실험과 관련지어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잡체시에 몰두하는 것은 창작 역량의 제고에 따른 실험 정신의 확대, 혹은 과시 욕구가 맞물린 것으로 생각된다. 인명과 지명의 사용이 시의 기세를 어떻게 높일 수 있는지는 납득할만한 설명이 없고, 질문자의 생각에는 기세와 관련도 없을 것 같다. 그러기에 각주 36에서 홍만종은 이런 모방이 불필요하다고 따끔하게 지적한 것이다. 정두경사기의 구절을 인용한 결과 호방의 미학을 성취한 것이지, 시의 기세를 높이기 위해 지명을 인용한 것은 아니다. 순서가 거꾸로 된 설명 아닌가? 전반적으로 지명 부분의 논의는 껄끄러워 전체 논문의 논리에 부담을 주는 느낌이 있다.

 

 

3.

복고풍을 비판한 대표주자로 장유와 이식을 들었는데, 실제 복고풍의 시는 뒷날의 논의에서도 확인되듯 정두경 이후에야 비로소 비판의 도마에 오른다. 시기로 보아 장유와 이식은 정두경보다 선배이니, 선후에 도착이 생긴다. 즉 후배의 시가 비판의 대상이 되기 이전에 논한 논의를 복고풍에 대한 비판으로 끌어당겨 기술한 듯한 인상이 든다. 기술 순서상의 문제일 듯도 한데, 재고가 필요하다. 복고풍 비판의 대표주자는 장유와 이식이 아니라 농암 형제 쪽이라야 맞다.

 

 

4.

17세기 후반에 주목된다는 조선적 당풍의 실체가 모호하다. 각주 67에 나오는 임제의 패강가16세기 후반의 것이다. 실제 이 시기 작품 속에서 이른바 조선적 당풍계열에 속할 수 있는 작품의 구체적인 예와 작가의 적시가 있어야 한다. 또 이 부분에 와서 선명하던 논문의 구도가 흔들리는 느낌을 갖게 된다. 16,7세기 한시 문학의 구도를 강서시풍, 만당풍, 복고풍의 흐름으로 잡아오다가 갑자기 삼연 계열의 송시풍과 정체가 모호한 조선적 당풍이 혼효하는 양상으로 기술되고 있는데, 이 송시풍과 조선적 당풍의 역학 관계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논리적 배려를 하지 않아 아쉽다. 사실 이 조선적 당풍의 개념 문제는 발표자가 지닌 독특한 시각을 반영하고 있어, 경우에 따라 이 논문의 가장 정채로운 부분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이상 지적한 몇 가지 외에 전체 논문의 논의에 대해 질의자는 전적으로 의견을 같이 한다. 단편적인 정보들을 통해 한 시대 문학사를 세밀하게 분절해내고, 나아가 입체적 전망과 구도를 제시한 것은 이 논문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이다.

 

 

 

 

 

 

인용

목차

한문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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