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17세기 후반 조선적 당풍의 대두
송풍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등장한 복고풍
주자의 존숭이 생활되면서 큰 유행이 되었던 구곡가 계열이나 그 밖의 연작시 중 상당수가 주자학의 내재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거니와, 이 같은 근체시 자체가 성정(性情)을 자연스럽게 유로(流露)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들어, 고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17세기 후반 시단의 한 경향이었다. 물론 만당을 극복하고자 한 복고풍의 시인들에 의하여 가행체나 악부 등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과 또 다른 양상에서 『시경(詩經)』과 『문선(文選)』이 주자학적 문인들에 의하여 숭상된 것이다. 학자풍의 문인들은 17세기에 온유돈후(溫柔敦厚)의 시교를 다시 강조하게 되는데 이때 전범이 되는 시가 바로 『시경(詩經)』과 『문선(文選)』이었다. 이민서(李民敍)가 김만중과 함께 『고시선』을 엮은 것도 단순한 명시의 추종이 아니었다.
주자가 『시경(詩經)』에서 한위진(韓魏晋)에 이르기까지의 시를 모아 작시의 전범으로 제시하려 하였으나 책을 완성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 뜻을 잇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古詩選跋」, 『서하집』 권12). 김창협(金昌協)의 문하에서 나온 이의현은 주자가 한결같이 ‘고선체(古選體)’를 법으로 하면서 수양에 힘쓰는 학자로서의 생활감정과 도학의 깊은 뜻을 담아내어 천고에 없던 바를 개척하였다고 한 바 있다(「雲陽漫錄」, 『도곡집』 권27). 명시를 배운 이들이 한위(漢魏)의 시를 모의하려 하였기에 주자나 이들이나 모두 고시를 추종한 점은 유사하지만, 그러나 성정론(性情論)의 원론에서 다시 고시를 재평가한 것이라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박세당 역시 「백곡집서(栢谷集序)」(『서계집』 권7)에서 당 이하의 시를 부정하는 태도를 보인 것도 이와 유사한 논리다. 김창흡(金昌翕) 역시 그 형 김창협(金昌協)과 유사한 시학의 태도를 보여 주고 있거니와, 특히 일련의 편지를 통하여 조성기와 시도에 대한 토론을 벌인 글에서는, 『시경(詩經)』과 『초사』, 한대의 고시, 그리고 위진의 완곽(阮郭), 도연명(陶淵明), 유종원(柳宗元)의 시를 배워야 한다는 주자의 설을 이으면서, 당시와 송시, 명시가 차례로 문제가 있음을 따지고 또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되던 이안눌(李安訥)과 차천로(車天輅)의 시에 대해서도 극렬하게 비판하면서 18세 새로운 시풍을 예고하였다.
조선적 당풍: 조선시
이러한 다양한 시풍이 전개되는 17세기 후반의 한시단에서 가장 주목되는 시풍은 조선적인 당풍이다. 17세기에는 여전히 복고적인 당풍이 주류를 형성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모의 차원이 아니라 조선의 현실과 조선인의 정감을 바탕으로 한 조선적인 당풍이 대두하고 있었다. 당풍에 대한 추종과 조선적인 현실이 어우러지면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 짧은 절구 형식을 차용하되, 조선의 현실 공간을 배경으로 조선인다운 정감을 드러낸 시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계열의 작가로 김득신(金得臣)을 들 수 있다. 김득신(金得臣)은 송시(宋詩)를 배워 고음(苦吟)의 시학을 주창하면서 자구의 조탁을 중시하였지만, 그 결과는 기벽하고 난삽한 송풍(宋風)이 아니라 당풍(唐風)의 청신(淸新)을 드러내는 쪽으로 귀결되었다.
당풍이든 송풍이든 조선적인 색채가 강해지면, 곧 중국적인 냄새, 다른 한편 예스러운 맛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 의고풍의 한시를 즐겨 제작하였던 김만중(金萬重)은 『서포만필』에서 말류의 폐단이 고학을 전폐하여 공소하고 비루함이 소식을 존숭하던 시기나, 강서시파(江西詩派)를 배우던 시기, 혹은 삼당이 만당을 추구하던 시기보다 더욱 심하다고 하였다. 그는 당송의 유풍과 여향이 땅을 쓴 듯 없어져 시학의 액운이 더 심했던 적이 없었다고 개탄한 바 있다. 김만중의 탄식은, 곧 당시나 송시, 혹은 그보다 앞서 시경시나 고악부를 배우지 않는 세태를 지적한 것인데, 바로 조선적인 시풍이 17세기 후반에 강해짐을 역설적으로 말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인용
1. 서론
2. 16세기의 강서시풍(江西詩風)과 당풍(唐風)
2) 송시에서 당시로의 전환, 그리고 강서시파의 영향력
3. 16세기말~17세기 복고풍과 그 반발
1) 삼당시인의 한계
2) 만당풍을 극복하기 위해 두보와 한유의 시를 배우다
4) 명 복고파의 유행: 시경체 한시나 고악부체의 유행
5) 17세기 다양한 시풍을 추구하라(feat. 장유와 이식)
6) 17세기 후반에 등장한 의고주의 비판(feat. 김창협)
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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