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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이종묵, 16~17세기 한시사 연구 - 3. 16세기말~17세기 복고풍과 그 반발, 6) 17세기 후반에 등장한 의고주의 비판 본문

한문놀이터/논문

이종묵, 16~17세기 한시사 연구 - 3. 16세기말~17세기 복고풍과 그 반발, 6) 17세기 후반에 등장한 의고주의 비판

건방진방랑자 2022. 10. 23.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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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17세기 후반에 등장한 의고주의 비판

 

 

김창협의 의고주의 비판

 

장유(張維)이식(李植)에 이어 17세기 후반 무렵 본격적인 의고주의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강서시(江西詩)의고주의에 대한 비판의 공통점은 에 있거니와 이러한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은 17세기 말엽 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에 이르러 논리화된다.

 

김창협(1561-1708)은 진시(眞詩)를 주장하면서 자연(自然)천기(天機)를 거듭하여 강조하였다. 김창협(金昌協)이반룡이 당나라 이후의 시어를 쓰지 못하게 한 것을 비웃었다. 그는 이반룡이 옛것을 배운다면서 언어의 모방만 하여 당시를 배우고자 하면서도 당시의 시어만을 썼으니, 당 이후의 것으로 용사를 하면 그 말이 당시와 같지 않을까 금제하였다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의고주의가 문제는 참됨을 잃은 데 있다고 보고, 시라는 것은 성정(性情)을 그려내므로 느끼고 부딪치는 모든 것이 시의 질료가 될 수 있다고 하고, 또 용사의 정교함과 추졸함, 언어의 우아함과 비속함을 굳이 따질 필요가 없으며, 옛 시와 지금의 시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잡지34).

 

 

17세기엔 의고주의가 성행했다

 

김창협(金昌協)의 비판은 물론 명의고파를 겨냥한 것이지만, 17세기 만연한 조선의 의고파들에게도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득신(金得臣)이 자기의 작품을 정두경(鄭斗卿)에게 보이니 정두경이 김득신이 당시를 배운다면서 송시의 말을 썼다고 하였다. 이에 그 근거를 묻자 정두경은 자신이 평생 읽고 외운 것은 당나라 이전의 시인데 김득신 시의 글자 중에 보지 못한 것이 있다고 한 일화(현호쇄담(玄湖瑣談)14)에서 정두경이 보여준 태도는 바로 이반룡의 것과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이다. 김창협은 또 당시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어서 당시를 배워야 하지만, 그러나 반드시 당시와 같은 필요는 없다고 하고, 당시가 성정과 흥기에 주로 하고 고실과 의론을 일삼지 않는 것은 배울 만하다고 하였다. 이 같은 태도에서 정두경의 시가 사기와 고악부의 말을 사용하기를 좋아하여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지만 사실은 솜씨조차 둔한 도적일 뿐이라 폄하하였다(잡지34).

 

 

 

 

인용

목차 / 지도

1. 서론

2. 16세기의 강서시풍(江西詩風)과 당풍(唐風)

1) 송풍(강서시풍)의 전개 양상

2) 송시에서 당시로의 전환, 그리고 강서시파의 영향력

3) 삼당시인, 강서시풍 넘어서기

3. 16세기말~17세기 복고풍과 그 반발

1) 삼당시인의 한계

2) 만당풍을 극복하기 위해 두보와 한유의 시를 배우다

3) 기세를 높이기 위해 복고풍을 차용하다

4) 명 복고파의 유행: 시경체 한시나 고악부체의 유행

5) 17세기 다양한 시풍을 추구하라(feat. 장유와 이식)

6) 17세기 후반에 등장한 의고주의 비판(feat. 김창협)

7) 17세기 말에 다시 등장한 송시

8) 17세기 후반 조선적 당풍의 대두

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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