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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도올선생 중용강의, 26장 - 5. 중용적 사고방식의 크기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26장 - 5. 중용적 사고방식의 크기

건방진방랑자 2021. 9. 20.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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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 중용적 사고방식의 크기

 

 

今夫天, 斯昭昭之多, 及其無窮也, 日月星辰繫焉, 萬物覆焉. 今夫地, 一撮土之多, 及其廣厚, 載華嶽而不重, 振河海而不洩, 萬物載焉. 今夫山, 一卷石之多, 及其廣大, 草木生之, 禽獸居之, 寶藏興焉. 今夫水, 一勺之多, 及其不測, 黿鼈生焉 貨財殖焉.
저 하늘이라고 하는 것은 촛불 하나가 반짝이는 것 같은 밝음이 많을 뿐인데, 그 무궁한 데 이르러서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이 다 거기에 매달려 있고 만물을 덮고 있다. 땅이라고 하는 것은 단 한줌의 흙이 많이 모인 것일 뿐인데, 넓고 후박한 데 이르러서는 화악(華嶽)을 등어리에 싣고도 무거운 줄 모르고 하해(河海)를 가슴에 안고도 새지 않는다. 그러니 만물을 실을 만하다. 대저 산이라 하는 것은 한 뭉치의 돌로부터 출발할 뿐이지만, 그것이 광대한 대 이르러서는 초목이 다 거기서 살며, ‘보장(寶藏)’이 많이 나온다. 물이라는 것은 일작(一勺), 한 바가지의 물이 많은 것에 불과한 것인데, 그것이 불측(不測)한 데에 이르러서는 큰 자라, 악어, 교룡, , 물고기, 자라 등이 살고, 많은 화재(貨財)가 그 물에서 불어나게 된다.
 
昭昭, 猶耿耿, 小明也. 此指其一處而言之. 及其無窮, 猶十二章及其至也之意, 蓋擧全體而言也. , 收也. , 區也. 此四條, 皆以發明由其不貳不息, 以致盛大而能生物之意. 然天, 實非由積累而後大, 讀者不以辭害意可也.
소소(昭昭)는 밝디 밝음과 같으니, 작은 밝음이다. 여기서는 한 곳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급기무궁(及其無窮)이란 12장의 그 지극함에 이르면의 뜻과 같으니, 대체로 전체를 들어 말한 것이다. ()은 거두어들인다는 것이다. ()은 구역이란 것이다. 네 가지 조항은 모두 불이불식(不貳不息)’하여 성대함에 이르러 물건을 생성하는 뜻을 발명한 것이다. 그러나 하늘과 땅과 산과 냇가는 실제로 쌓이고 누적된 후에 커진 것은 아니니, 읽는 사람은 표현으로 속뜻을 해쳐선 안 된다.

 

 

동양인에게 하늘은 평면의 모습

 

동양인이 말하는 천()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 우주관으로 말한다면, 태양계의 태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에서 보이는 모든 우주공간을 말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천()을 오늘날처럼 무궁한 우주공간(boundless four dimensional time space)으로 구상한 것이 아니라, 공간을 좌악 펼쳐서 평면화시켜 버렸습니다. 일월성신이 모두 동일한 평면 위에 있다고 본 것이죠.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고 할 때, 모든 일월성신은 서로 근원지차(近遠之差)’가 없이 한 면에 좌악 배열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주자의 자연학이라는 책을 참고하면 옛날 사람들의 우주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나는 중용(中庸)을 처음으로 읽을 때, 재화악이부중 진하해이불설(載華嶽而不重 振河海而不洩)’라는 말을 읽고서 눈물을 주루룩 흘렸었습니다. 그때 받은 감격이라는 것은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없어요. 중용(中庸)의 생각의 스케일! 그건 대단합니다. 내가 밟고 서 있는 땅이 화악을 실고도 짜식이 무거운 줄을 모르고, 하해를 가슴에 안고도 하나도 새지가 않아! ! 이거 스케일이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참 멋있는 말입니다. 이 문장은 어렸을 때 내 감성을 지극히 자극한 그런 문장이예요. 여러분들은 그런 감상이 느껴지지 않는가? 뭔가 짜릿한 느낌이 없어요?

 

화악(華嶽)’이라는 것은, ‘오악(五嶽)’ 중의 하나로 지금 협서성의 동부에 있는 화산(華山)’을 일컫는다는 설도 있고, ‘화산(華山)’ ‘악산(嶽山)’이 따로 따로 있는데 그 중 하나라는 설도 있는데, 협서성 동부의 화산(華山)’일 것이라는 설을 받아들인다면 중용(中庸0은 노나라 사람이 쓴 것일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앞에서도 몇 가지 근거를 대면서 말하였지만, 중용(中庸)은 진시황의 대륙통일 이후의 문장인 게 틀림없습니다.

 

중용(中庸)은 노()나라 같은 시골 어느 구석에서 쓰여졌다고 보기에는 스케일이 너무 커요. 노나라 촌놈이 이 정도까지의 스케일을 가질 수 없었다는 겁니다. 또한 하해(河海)’()’라는 말에서는 중용(中庸)의 성립 장소를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양쯔강 이북의 강에 대해서는 ()’라는 명칭을 쓰고, 양쯔강 이남에서는 ()’이라는 명칭을 씁니다. ‘황하(黃河)’가 그 용례죠. 따라서 ()’라는 용법은 중용(中庸)이 북방문화권에서 성립한 문헌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의 상고음(上古音)가르이고, ()의 상고음(上古音)가람으로서 우리말 강의 어원과 비교해 볼 수 있어요. 우리말의 이라는 말은 가르보다는 가람에서 온 것이며, 따라서 북방계열의 영향을 받은 말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도올논문집에 최교수의 논문에 이런 내용들이 상세하게 나와 있으니까 참고하세요.

 

 

 

 

 

동양인들에게 산()과 수()는 함께 한다

 

이 구절 전체의 구조를 보면, 천지(天地)가 나온 다음에 산수(山水)로 나가고 있죠? 이 산수(山水)의 문제는 석도화론(石濤畵論)을 읽으면 상세하게 알 수 있는데김용옥, 석도화론(石濤畵論)(서울: 통나무, 1992), 100-114, 산천장제팔(山川章第八)참고., 우리가 산화(山畵)’ 또는 수화(水畵)’라고 하지 않고 흔히 산수화(山水畵)’라고 하듯이, 동양인들의 공간관으로는 반드시 산()과 수()가 같이 껴있어야 해요.

 

대동여지도를 보면, 그 원칙이 산()과 수()를 기준으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대동여지도는 단적으로 말해서 조선반도의 산()과 수()를 그린 것이죠.

 

무슨 말이냐 하면, 대동여지도에는 아무리 작은 산이라고 해도 전부 다 표현이 되어 있는데, ()처럼 보이지 않더라도 그 산들 사이로 계곡이 끼어 있고 그 계곡을 따라서 물이 흐르고 있으면, 반드시 이 산수(山水)가 동시에 표현되어 있다니깐! 또한 마찬가지로 논리로 아무리 큰 산줄기라 할지라도 수()가 가로 막고 있으면 이 물줄기를 건너뛰지 못합니다. , 산줄기는 물이 합쳐지는 합수지점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멈추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산에서 물을 건너지 않고 다른 산으로 가는 길이 반드시 하나 있지요. 따라서 산줄기의 흐름은 조선 반도 끝에 와서야 비로소 멈추게 됩니다.

 

 

 

일본의 우리나라 지형 왜곡 행태

 

그런데 요즘의 지도를 보면, 지질구조를 기준으로 해서 무슨 산맥재생 : 일본인들에 의한 우리 강토의 왜곡과 유린은 조선지리학에는 그 족보가 없는 산맥(山脈)’이란 이름에서 부터 시작한다. 산맥이란 용어는 일제가 조선 강점을 기정사실화 해가던 무렵인 1903년 일본의 지리학자 코토오분지로(小藤文次郞)가 붙인 이름이고, 16세기의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地圖)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는 대간’, ‘정맥의 용어가 갖고 있는 내력에 비하면 그 역사가 하잘 것 없는 조작용어에 불과하다. ‘대간’, ‘정맥등의 용어가 16세기에 이미 쓰여졌다는 것은 그만큼 이 용어들이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지리 인식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전통적인 산수(山水)의 지리인식을 일본놈들은 고작 14개월 동안 단 두차례(1900년과 1902)의 조사만으로 무지막지하게 왜곡시켜 놓았고, 우리는 대부분 지금까지도 이 뒤틀려진 지리인식의 지배 아래에서 너무도 무덤덤하게(不仁하게) 살고 있다. 일본인들의 산맥지형도는 땅 위에 실존하는 산과 강에 기초하여 산줄기를 그린 게 아니라, 땅 속의 지질구조선에 근거하여 땅 위의 산들을 분류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규정에 의한 산맥선은 실제 지형과 일치하는 자연스러운 선이 아니라 실제 지형과 일치하지 않는 인위적으로 가공된 지질학적인 선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산줄기는 1대간(백두대간) 1정간(장백정간) 13정맥(낙동정맥, 한북정맥, 호남정맥) 15개의 산줄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들은 10개의 큰 강에 물을 대는 젖줄이자, 또한 이 강들을 구획하는 울타리이다. 조석필, 산경표를 찾아서(서울: 산악문화, 1993) 참고들이 즐비하게 듬성듬성 금을 그어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동여지도에는 그런 게 있을 수 없어요. 이런 것은 일본놈들이 완전히 왜곡한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산자락 물줄기를 따라서 지도에다가 산줄기를 표시한 게 아니라, 즉 실질적인 자연 형세로 지도에다가 산줄기여기서 말하는, 지도 위에 표시된 산줄기는 등고선으로 나타나는 기하학적인 모양을 일컫는 게 아니다를 표시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땅 속의 지질구조를 기준으로 하여 소위 산맥이라는 것을 마구 그려 놓은 거예요. 그래서 산줄기를 뚝뚝 잘라 놓게 되었죠. 산수(山水)가 흐르는 데 따라서, 백두산에서부터 쭈욱 백두대간이 뻗어 내려오는 것이 우리의 산수(山水)개념입니다.

 

그런데 묘향산맥, 차령산맥, 태백산맥 이런 식으로 뚝뚝 끊어 놓았어요. 자기네들이 인위적으로 정해 놓은 산맥을 마치 사실상의 산줄기인 것처럼 억지로 규정해 버린 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지도인 겁니다. 이건 완전히 우리 민족을 말살시킬려는 음모의 소산이었던 거죠. 완벽하게 땅부터 왜곡을 시켜버렸어요. 일본놈들의 식민지정책이 얼마나 악랄한지 모릅니다! 엄청나게 교묘한 짓이었거든요. 도대체 이놈들은 안 해 본 짓이 없어요. 우리 조선땅에 와서 현대 지질학을 핑계로 땅을 마구 갈라놓았던 것입니다.

 

 

 

대동여지도, 우리 산하를 파악하다

 

그런데 우리의 삶의 구조와 삶의 공간이라는 걸 보면, 마을과 마을 사이에 내가 흐르고 있을 때는 그 유수량이 아무리 작은 경우라 하더라도 두 마을 사이에는 어떤 격리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산수(山水)를 같이 봐야만 인문지리학이 나오는 거예요. 대동여지도를 보면 훨씬 더 리얼하게 우리 삶의 양식을 알 수 있습니다.

 

도대체 대동여지도를 안 갖고 다니면서 여행을 다닌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예요. 나는 반드시 대동여지도를 가지고 여행을 다닙니다. 대동여지도가 현대의 지도보다 훨씬 더 낫거든요. 지세(地勢)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훨씬 더 정확해요. 대동여지도를 꼭 사두시고 이 대동여지도를 통해서 우리 강산에 대한 본래의 인식을 깨닫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의 산천이 다 망가지기는 했지만, 대동여지도가 보여주는 것은 놀랍도록 정확하며 진짜 우리의 산수(山水)입니다. 우리는 우리들이 사는 이 따님(大地)을 볼 때 반드시 산수(山水)를 같이 봐야 한다!

 

 

금부산 일권석지다 급기광야 초목생지 금수거지 보장흥언(今夫山 一券石之多 及其廣大 草木生之 禽獸居之 寶藏興焉)’

여기서 일권(一券)’은 한 줌, 한 뭉치를 뜻하는데, 한 뭉치의 돌이 흙으로 되는 것이죠. 돌이 흙이 되기까지는 온갖 미생물의 엄청난 수고가 깃들어 있으며, 이외로도 모든 것이 다 작용해서 그렇게 되는 겁니다. 하나의 돌로부터 시작하여 광대함에 이른 산에서 모든 미네랄과 모든 유기·무기 물질이 나와서 초목이 거기서 살게 되고, 또한 금수(禽獸)가 거기서 살게 되는 거예요. ‘보장(寶藏)’이라는 것은 옥석, 보물들을 말합니다.

 

 

금부수일작지다 급기불측 원타교룡어별 생언 화재식언(今夫水一勺之多 及其不測 黿鼉蛟龍魚鼈 生焉 貨財殖焉)’

주자가 말하기를, “언뜻 보기에 이 글은 작은 데서 비롯하여 만물이 생장하도록 하는 지대한 데에 이르는 것을 말하고는 있지만, 마치 산천(山川)이라는 것이 단지 작은 것들이 쌓여서 되었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 달라는 재미있는 주()를 달고 있습니다. 마치 조그만 것들이 쌓여서 거대하게 된다는 뜻으로 오인하기 쉽지만, 이것은 표현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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