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담은 한시의 유형들, 그리고 여행을 기록할 수 있는 정신
이 시는 대흥동으로 가는 도중에 쓴 시다. 이런 식의 여행 도중에 써낸 몇 편의 시의 내용을 살펴보자. 유몽인이 쓴 「양양도중(襄陽途中)」이란 한시에선 유종원이 쓴 「포사자설(捕蛇者說)」처럼 현장에서 직접 본 그대로 세금문제로 핍박받는 민심을 드러냈으며, 성간이 쓴 「도중(途中)」이라는 한시에선 마치 내가 같이 여행을 하는 듯이 핍진하게 여행 도중의 풍경을 그려냈으며, 이곡이 쓴 「도중피우유감(途中避雨有感)」이라는 한시에선 길에서 만난 비를 피하러 큰 저택에 들어갔다가 뜻밖의 인생무상을 맛본 경험담을 서술했으며, 권필이 쓴 「도중(途中)」이라는 한시에선 당시풍의 대가답게 여행 도중의 한 상황을 그대로 눈에 보일 듯이 펼쳐냈으며 신채호가 쓴 「백두산도중(白頭山途中)」에선 단순히 여행의 정취를 노래하지 않고 그 당시 일제강점의 상황에서 애끓는 통곡을 펼쳐냈다.
이렇듯 여행 도중에 지은 시는 여러 유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우린 이 분류를 크게 묶어보면 세 가지 유형이 된다는 걸 알 수가 있다. 그 하나는 여행 도중에 민중의 실상을 드러내는 사회시 유형이 있으며, 다른 하나는 여행하는 풍경을 핍진하게 기술하는 여행시 유형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여행을 하며 깨달은 내용을 기술하는 철리시 유형이 있다는 것이다. 위의 시를 이 세 가지 계열로 배치를 해보면 다음 표와 같아진다.
도중시(途中詩)의 유형 | |
사회시(社會詩) | 유몽인의 「襄陽途中」 |
여행시(旅行詩) | 성간의 「途中」 / 권필의 「途中」 |
철리시(哲理詩) | 이곡의 「途中避雨有感」 / 신채호의 「白頭山途中」 |
나도 예전에 국토종단과 사람여행, 카자흐스탄 여행을 하며 여행기를 남긴 것을 시작으로 여러 곳을 다니며 많은 여행기를 남겼었다. 그러다 보니 여행을 하며 기록을 남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그걸 시라는 형식으로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확실히 알고 있다. 그래서 한시 중에서도 위에서 열거한 것과 같이 어딘 가를 향해 떠나는 도중에 쓴 시들은 더욱 특별하게 보이는 것이다.
어딘 가를 향해 떠나다 보면 일상 속에선 느껴지지 않던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어린다. 내 몸의 관성이 사라졌기 때문이고, 고집으로만 살 수 있던 인간관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격정적인 순간이 찾아오기도 하고 삶에 대해 매우 진지하게 고민해보게도 되며 나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되묻게도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럴 때 자연스럽게 무언가 표현하고 싶어진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글로, 대화하길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야기로,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시로,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음악으로 표현한다. 방식만이 다를 뿐 그 안엔 그 당시 무수히 스쳐 지나갔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담기게 된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여행 도중에 쓰여지는 한시들은 그게 단순히 여행 도중의 풍경을 묘사한 것이라 할지라도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지며, 민중의 비판에 빠진 삶을 표현한 것이라면 마치 눈에 보이는 현장을 스케치한 듯 절실하게 느껴지고, 깨달음을 담은 철리적인 내용이라 할지라도 그저 송나라 시대에 유행한 철리를 담은 한시에서 느껴지는 형이상학적인 깨달음이 아닌 몸소 해보고 부딪히며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 현실적인 깨달음이기 때문에 절절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지금처럼 여행이 대중화되고 어느 누구나 쉽게 떠날 수 있는 시대엔 더욱 그 당시의 느낌을 담아 적어볼 일이다.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여행기를 남기면 좋을 것이고, 긴 글이 부담스러운 사람은 짧은 시 형식으로 표현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며, 그 또한 부담스러운 사람은 사진에 코멘트를 달아보는 식으로 여행의 순간에 느껴졌던 생각을 기술해보면 좋을 것이다. 흔히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고도 한다. 어찌 보면 우린 삶이란 여행을 떠난 여행자들인지도 모른다. 여행의 길을 떠난 그대여, 맘껏 이 순간의 감상들을 끼적거려보고 어떤 방식으로든 담아보자.
▲ 길에서 쓰여진 여행기의 대표작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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