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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64. 정사룡이 한시로 쓴 용비어천가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64. 정사룡이 한시로 쓴 용비어천가

건방진방랑자 2021. 10. 29.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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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룡이 한시로 쓴 용비어천가

 

 

소화시평권하 64에 초대된 작가는 정사룡이다. 이 글은 권하 64에서 최치원의 등윤주자화사(登潤州慈和寺)를 발표한 이후 두 번째로 하는 발표다. 그래서 열심히 준비했지만 아쉽게도 완전히 포인트가 엇나갔고 해석도 많은 부분이 틀렸다. 아직도 한시를 보는 게 많이 서툴다는 게 느껴진다.

 

이번 시는 조선의 태조인 이성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려 말에 왜구가 금강으로 진출해서 몰리고 몰리다 남원지방까지 내려갔고 이성계가 출진하여 황산에서 왜구의 적장인 아지발도를 죽이고 왜구를 섬멸했다. 이번 시는 바로 이런 사실을 담고 있는 영사시(詠史詩)라고 할 수 있다. 이성계가 나오면 당연히 한나라 고조인 유방과 매칭시키곤 한다. 유방은 농민출신으로 이미 엄청난 세력을 유지하고 있던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건국했다는 점과 이성계는 무신출신으로 최영이란 기득권을 쥔 세력을 물리치고 조선이란 새로운 나라를 건국했다는 점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계의 본향인 전주의 객사엔 풍패지관(豐沛之館, 유방의 고향이 풍패다)’이란 현판을 주지번이 직접 써서 걸어뒀으며, 오목대엔 유방이 한나라를 건국하고 불렀다던 대풍가(大風歌)가 걸리게 된 것이다.

 

잠깐 다른 얘기를 하자면 소화시평을 하면서 여러 번 발표를 했지만 우연하게도 한나라와 관련된 내용을 많이 준비하게 됐다. 처음으로 준비한 권상 39은 한나라 건국의 절대적인 조력자인 한신에 대한 얘기였고, 권상 47은 유방을 피해 오호도라는 섬으로 들어간 전횡에 대한 얘기였으며, 권하 92은 유방에 대한 얘기였다. 전혀 의도된 상황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한시를 배우며 중국역사에 관심 가지게 됐고 정리까지 하게 됐으니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공부는 참 재밌다고 할 만하다.

 

 

 

 

 

昔年窮寇此殲亡 옛적에 궁지 몰린 왜구를 여기서 섬멸할 적에
鏖戰神鋒繞紫芒 격전지의 신령한 칼날엔 자망운(紫芒雲)이 감돌았네.
漢幟豎痕留石縫 한나라 깃발 세워진 흔적이 바위틈에 남아있고
斑衣漬血染霞光 호피가죽 적신 피 노을빛을 물들였네.
商聲帶殺林巒肅 가을바람이 살기를 띠어 숲은 스산하고,
鬼燐憑陰堞壘荒 도깨비불은 음지에 붙어 성가퀴가 황량하네.
東土免魚由禹力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육신세(魚肉身世) 면한 건 우임금 같은 태조의 힘 덕분이니
小臣摹日敢揄揚 소신이 태조를 더듬어 감히 찬양해보았네.湖陰雜稿卷之一

 

이번 시를 해석하며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는 이성계를 위한 시다라는 전제가 있어야만 한다. , 이성계 찬양가라는 관점으로 해석하고 이해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시를 해석하면서 그냥 황산이란 전쟁터를 묘사하고 있을 뿐, 이성계 찬양가는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해석을 했으니 포인트가 엇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이런 관점의 차이는 미련(尾聯)을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그건 미련을 설명하면서 구체적으로 하도록 하겠다.

 

수련은 황산이란 곳에서 일어났던 전쟁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이곳에서 왜구를 물리쳤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된 건 바로 아래의 구절이다.

 

繞紫芒
칼날에 붉은 기운이 에워쌌겠지. 紫芒雲이 감돌았네

 

나는 정사룡이 황산에 올라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보았고 수많은 왜구를 죽였기에 칼날에 핏빛이 감돌았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하지만 김형술 교수님은 회상이 아닌 마치 현재에 보는 듯한 느낌으로 정사룡이 묘사하고 있다고 보았으며, 그 칼날엔 제왕이 거쳐하면 모여든다는 자망운이 감돌았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그건 정사룡이 그 당시의 이성계는 왕이 되지 않았음에도 마치 왕이 될 걸 알았다는 듯 제왕을 상징하는 자망운이 있었다고 본 것이다. 하긴 정사룡은 조선 초기의 관각삼걸(관리로서 문학에 재주가 있는 세 사람)’로 이성계가 왕이 되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를 이렇게까지 띄워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시작을 했으니 이 시가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 거라는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하긴 나는 그걸 간파하지 못해 이 시를 엉뚱하게 해석했지만 말이다.

 

함련에선 치열한 전장터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성계를 유방과 동일시하며 시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한나라(조선)의 깃발이 황산의 바위틈에 남아 있고 한나라 장수들이 입는 호피가죽을 물들인 피가 노을빛을 더욱 붉게 물들이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여기서 나오는 한치(漢幟)’반의(斑衣)’를 한나라를 상징하는 소재라는 걸 알 수 있어야 하고, 그건 한나라=조선이란 생각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걸 몰랐으니 이걸 해석할 때만 해도 왜 한나라 얘기가 갑자기 나오지?’라고 어리둥절해했으며, ‘반의(斑衣)’를 찾아봤을 땐 노래자가 어버이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하여 입었다는 색동옷으로, 노친을 극진히 모시는 효자를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라고만 나왔기에 황당하기만 했다. 그런데 한나라에 대한 얘기가 왜 나왔는지, 그리고 반의(斑衣)’가 한나라 병사들이 입던 홑옷이란 걸 알게 되니 모든 게 명확해지더라.

 

경련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죽였기에 지금도 그때의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는 표현을 썼다. 그래서 가을바람마저 스산하고 죽은 영들이 산의 음지에 있어 황량하기까지 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문제의 미련은 정말 많은 고민을 하게 했다. 수련부터 경련까진 전쟁터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미련에선 우임금의 이야기로 완전히 뒤바뀌기 때문이고, 갑자기 해를 본뜬다라는 표현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엔 너무 전쟁을 찬양하고 있어 미련에서 그걸 무마시키려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조선은 문치(文治)의 나라다. 그러니 무력보단 문학을 더 중시하며, 칼의 논리보단 붓의 논리를 더 중시한다. 그러니 미련에서 우임금을 운운하며 그래도 우리가 어육신세가 되지 않은 건 어디까지나 전쟁을 통한 것이기보다 우임금의 통치 때문이다라고 마무리를 지은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스터디를 진행하며 이 시가 태조 찬양가라는 걸 알게 되니 미련부분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을 하게 되더라. 그건 태조를 한껏 띄운 게 부끄러운 나머지 우임금을 운운하며 용비어천가가 되는 걸 막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여러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이건 어디까지나 마지막까지 이성계를 칭송한 표현이라는 걸 알겠더라. 김형술 교수님은 아예 우임금=이성계를 전제로 하며 이성계를 통해 우리가 이렇게 어육신세를 면했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 구절에선 의견이 분분했다. 해를 본뜬다는 표현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이다. 교수님도 좀 더 생각할 부분이 있다며 다음에 얘기해준다고 했기에 나도 정리를 하며 생각해봤다. 해라는 게 임금에 대한 다른 표현이란 걸 알게 됐고 해를 본뜬다는 것 자체가 임금을 표현하겠다는 의미로 쓰인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니 여기는 임금을 감히 이 시로 표현하며 감히 칭송해보았다는 표현 정도로 마무리 지은 거라 정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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