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사시에 담긴 서글픈 마음을 담아낸 성현
『소화시평』 권하 64번에 세 번째로 초대된 사람은 성현이다. 조선 초기에 서거정과 마찬가지로 세조의 왕위 찬탈과 같은 여러 사건들이 발생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일신을 잘 보전하여 부침도 없이 벼슬살이를 했던 관각문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살아 있을 땐 부침이 없었다 해도 죽고 나선 무오사화에 휘말리며 그의 시체에 매질을 가하게 되는 ‘부관참시’를 당하게 되었으니 이걸 다행이라 할까, 불행이라 할까.
鵠嶺凌空紫翠浮 | 송악산이 하늘을 침범해서 붉고 푸른 기운이 서려있고, |
龍蟠虎踞擁神州 | 용 앉고 범이 앉아 도성을 끌어안았네. |
康安殿上松千夫 | 강안전 위에 소나무 천 그루. |
威鳳樓前土一丘 | 위봉루 앞에 흙 만한 언덕이네. |
羅綺香消春獨在 | 여인 향기 사라진 채 봄만 홀로 있고 |
笙歌聲盡水空流 | 생황의 노랫소리 끊어진 채 물만 부질없이 흐르네. |
不須問訊興亡事 | 흥망의 일을 캐물을 것 없지. |
落日風煙滿目愁 | 석양에 바람과 안개, 보는 대로 시름이네. 『東文選』 |
이번 시는 고려의 정궁인 연경궁(延慶宮)을 다루고 있다. 이런 식으로 시를 통해 역사를 노래하는 시를 영사시(詠史詩)라고도 하며 회고시(懷古詩)라고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시가 이색의 「부벽루(浮碧樓)」라는 시가 있고 이전 권상 97번에서 봤던 시들도 있다. 그리고 이 시들을 통해 영사시가 어떤 뉘앙스를 담고 있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과거를 단순히 묘사하기 위해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그렇게 찬란했던 것들이 지금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의 정조가 짙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아쉬움의 정조는 당연히 인간의 삶이 부질없고, 인간의 영화(榮華)는 눈 깜빡할 새에 지나간다는 무상감을 자아낸다. 자연은 저리도 변화무쌍하게 남아 있지만, 그곳에서 한때를 호령했던 뭇 존재들, 만 대까지 위세를 펼칠 것 같던 영웅들은 사라진지 오래다. 그러니 유서 깊은 곳에 있으면 절로 서글퍼지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이고, 그건 곧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영사시는 바로 이와 같은 정조를 담기 위해 쓰여지는 것이다.
수련에선 연경궁이 놓인 자연환경을 묘사하고 있다. 연경궁은 송악산 밑자락에 자리하고 있었나 보다. 송악산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는데 그곳엔 붉고도 푸른 기운이 서려 있고 마치 용처럼 똬리를 틀 듯 연경궁을 안고 있다. 이 묘사만 보더라도 연경궁이 얼마나 길지(吉地)에 있었는지 그리고 그 느낌이 얼마나 신비하게 다가왔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함련에선 쇠락한 연경궁을 읊고 있다. 연경궁은 이자겸의 난 때 불에 탔으며 공민왕 때 마치 흥선대원군이 임진란으로 불에 탄 경복궁을 재건하여 조선의 정기를 다시 세우려 했듯이 연경궁을 재건했지만 다시 불에 탔다고 한다. 그러니 성현이 갔을 땐 연경궁은 터만 남았을 뿐 어떤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예전에 강안전이 있던 자리엔 소나무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고 위봉루엔 흙무더기만 가득했던 것이다.
건축물이 있던 자리가 그렇게 황폐해지게 된 데엔 그곳에 기거하던 뭇 사람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니 그곳에서 비단옷을 두르고 일을 하던 여인들의 향기는 사라져 봄만 덩그러니 있고 한때 여러 연회를 열며 생황소리 가득하던 곳에 그저 물만이 흐를 뿐이다.
함련과 경련을 통해 서글픈 정조는 치솟을 대로 치솟은 상태다. 과연 성현은 이 시를 어떻게 끝을 맺을까? 미련에선 이 정조를 그대로 이어받아 흥망에 대해선 말할 것도 없다. 흥망이란 얘기조차도 시간의 흐름 앞에선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느낌으로 보이는 모든 것은 시름에 겨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2009년 12월에 임용고시에 낙방하고 찾아갔던 변산의 바다가 생각난다. 낙방이란 비극을 끌어안고 바라보는 서해바다는 그것 자체로 나에겐 울분처럼 느껴졌으니 말이다. 객관적인 자연이 있는 게 아니라, 그런 자연에 나의 감정을 이입하여 바라보고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주관적인 자연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그처럼 성현 또한 연경궁의 옛 터에서 한껏 자신의 서글픈 감정을 이입하여 묘사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나간 것들, 사라진 것들을 생각하며 이렇게 서글프고 비관적이고, 인생무상한 감정만을 느껴야 하는 걸까? 이에 대해 다른 얘기를 들려줄 사람이 바로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 선생님이다. 그는 첫 수업에서 학생들을 박물관으로 집결시키더니, 그 사진에 걸려 있는 선배들의 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여준다. 학생들이 그 사진에 주의를 집중하자 키팅은 뒤에서 속삭이듯 “너희와 별로 다르지 않을 거야. 그렇지? 머리모양도 같고, 너희처럼 젊고 패기만만하고, 너희처럼 세상을 그들 손에 넣어 위대한 일을 할 거라 믿고, 그들의 눈도 너희들처럼 희망에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 당시 그들의 능력을 발휘할 시기를 놓친 것일까?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죽어서 땅에 묻혀 있는지 오래다.”라고 말한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영사시의 정조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어린 학생들에게 삶의 비극적인 면모를 부각시켜 ‘너희들의 삶도 부질없다’는 결론을 내릴 것만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키팅 선생은 그렇게 단순하고도 어른의 시각이 가득 담긴 결론을 섣불리 내리지 않는다. 어린 시기엔 꿈도 맘껏 꾸며, 삶이 나를 배신할지라도 그런 운명에 맞설 수 있는 도전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어찌 이런 자유분방하고 희망 가득 찬 아이들에게 ‘내가 살아봤더니 인생 별 거 없더라’라는 말과 같은 꼰대의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그러니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Carpe Diem(현재를 즐기라, 오늘을 즐기라)”이라 말했던 것이다.
그렇다 영사시엔 우울한 정조가 가득 담기고 인생무상의 서글픈 심정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걸 읽고 삶을 비관적으로, 인생을 무의미하게 바라볼 일은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읊을 수밖에 없던 심정에 공감하며 ‘그렇기에 지금 내가 살아 있는 이 순간이 귀중하다’고 느끼며 오늘을 살아낼 수 있으면 되니 말이다.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니 이 순간에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오늘 하루를 즐기며 살아가면 그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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