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세를 벗어나 사찰에 들어가야만 보이는 것을 노래한 박은
『소화시평』 권하 64번에서 네 번째로 초대된 인물은 박은이다. 이번 시에서 박은 복령사라는 사찰을 노래하고 있다. 재밌는 점은 조선시대를 생각하면 ‘억불숭유(抑佛崇儒)’가 떠오르며 스님이나 사찰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있을 것 같고 배제하려는 마음이 있을 것 같지만 그러진 않았다는 사실이다. 조선이 건국되기 이전에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엔 국교가 불교였을 정도였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심상에 불교는 깊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마치 지금 우리나라가 자본주의 사회가 되었고 합리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회가 되었지만 그 안엔 유교관이 자리하고 있는 것과 같다. 600년 이상을 유교국가의 이상 속에서 살았으니 그게 다른 사상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순식간에 사라지진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타짜』에서 정마담이 하는 말처럼 “사람이 쉽게 변하나요?”라는 말과 같지 않을까.
사찰시의 특징에 대해선 작년 6월 6일에 교수님과 아이들과 함께 내소사로 떠난 여행기에서 말을 했었다. 그런 사찰시에 특징을 염두에 두면서 이번 시를 읽으면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다.
伽藍却是新羅舊 | 가람은 곧 신라의 옛 것인데, |
千佛皆從西竺來 | 천개의 불상은 다 서축에서 왔다네. |
終古神人迷大隈 | 예로부터 신인도 대외(大隈)를 찾다가 길을 잃었다는데 |
至今福地似天台 | 지금의 복된 땅은 천태산 같다네. |
春陰欲雨鳥相語 | 봄구름은 비 내릴 듯하니 새들이 서로 지저귀고 |
老樹無情風自哀 | 늙은 나무 정이 없으니 바람이 절로 애처롭네. |
萬事不堪供一笑 | 만사는 한바탕 웃음거리도 못 되니, |
靑山閱世自浮埃 | 푸른 산도 세상을 겪느라 스스로 먼지 속 위에 떠있구나.『容齋先生集』 卷之七 |
수련에선 복령사의 역사와 특징을 담아내고 있다. 절은 신라시대에 만들어져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며, 그곳에 놓인 불상들은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에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은 곧 이 사찰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며 이곳에 놓인 불상도 유서 깊은 곳에서 왔다는 걸 말함으로 이 사찰이 그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사찰은 아니란 것을 밝히고 있다.
함련에선 사찰시의 특징에서도 말했다시피 이 사찰이 얼마나 세상으로부터 멀고도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지를 묘사하고 있다. 바로 이게 시에서 허용되는 과장법인데, 이런 과장법을 통해 먼지 풀풀 날리는 속세와 완전히 격절된 사찰의 본맛을 느낄 수 있다. 3구에선 장자의 구절의 ‘황제가 대외를 만나기 위해 떠났다가 길을 잃었다’는 내용을 인용함으로 사찰이 얼마나 깊숙하고도 감춰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4구에선 그렇게 복령사가 들어선 장소가 신선들이 사는 신성한 장소인 천태산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신비적인 느낌을 잔뜩 담아내도록 신선들의 일화를 사찰에 덧씌운 것이다.
수련과 함련은 복령사에 대한 얘기였다면 경련에선 말하고자 하는 대상을 확 바꾼다. 그건 바로 사찰에서 보이는 것들을 노래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찰에 들어앉아 있으니 그제야 비로소 자연이 보인다. 봄 구름이 일어나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하니 새들도 그런 낌새를 알아 챈 듯 지저귀고 늙은 나무는 무정하니 바람은 홀로 서글플 뿐이다. 이에 대해 교수님은 비가 올 듯하면 제비들이 낮게 난다는 얘기를 해줬다. 낮게 나니 아까 전까지는 들리지 않던 제비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늙은 나무가 무정하단 말은 무슨 뜻일까? 이에 대해 어떤 아이는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거 아닐까요? 그러니 바람이 불어도 아무런 소리조차 나지 않았던 거지요.”라고 말했다. 그 아이의 상상력에 홀로 감탄하며 ‘이 시 정말 맛있다’라고 느끼고 있었는데 교수님은 “물론 그런 상황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단 꽃이 없다는 것으로 보는 것도 좋습니다.”라고 알려주신다. 꽃이 없는 나무에 부는 바람, 그 바람은 꽃이 없다는 걸 슬퍼했다는 뜻일까?
미련에서 사찰시에 으레 담길 법한 세상을 관조하는 듯한 뉘앙스가 담겨 있다. 세상살이는 한바탕 웃음거리조차 제공해주질 못한다. 그건 그만큼 삶이란 새옹지마 같기에 일희일비하며 휘둘릴 것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8구에서 열(閱)이란 한자는 처음으로 많은 걸 느끼게 해줬다. 보통 ‘본다’라는 의미로 해석하며 우리도 ‘검열(檢閱)’과 같은 단어로 쓰고 있는데 이 한자엔 ‘겪는다’, ‘경험한다’와 같은 의미도 있었으니 말이다. 사찰에서 바라보니 밖에 보이는 푸른 산도 속세의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에 들어와 자신이 여태껏 살았던 세상을 보니 그곳의 아름다운 산조차도 속세의 먼지를 뒤집어 쓴 자기와 하등 다르지 않게 보였던 것이고, 이 말을 통해 속세와 완벽하게 떨어진 사찰의 풍취는 더욱 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홍만종은 이 시의 경련에 대해 ‘일찍이 신령스럽고 기이함을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未嘗不歎其神奇].’라고 평가했는데, 그건 단순히 경련에 대한 평어 이상으로 이 시를 관통하는 평어라 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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